중증장애인인 김씨는 입을 이용해 자판을 치며 공부를 한다.ⓒ에이블뉴스

“공부를 너무나 하고 싶었지만, 여건이 안돼서 포기한 이후 15년 만에 책을 폈어요. 앞으로 대학에도 꼭 진학할 거예요.”

지난 15일 고입·대입 검정고시 합격 발표날. 떨리는 마음에 마우스를 클릭해본 김율만(31세·뇌병변1급)씨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결과는 ‘합격’. 60점의 커트라인 점수를 뛰어넘는 82.33점이었다.

김씨는 전신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이다. 집에서만 생활할 수밖에 없는 그는 어렸을 적 놓을 수밖에 없었던 공부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다. 김씨는 삼육재활원에서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생활해 왔다. 하지만 그 뒤 철원에 위치한 요양시설에서 불의의 사고로 인해 모든 것을 놓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던 것.

생계유지를 위해 어머니가 밤늦게까지 집을 비운 공간, 김씨가 할 수 있던 것은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에 불과했다.

<위>김씨가 공부하는 모습 <아래>김씨는입으로 일일이 컴퓨터 자판을 이동하며 사용한다.ⓒ에이블뉴스

다행히 지난 2007년 활동보조서비스 시행으로 활동보조인을 얻었고, 2009년에는 복지관으로부터 컴퓨터 보조기구를 지원받았다. 하지만 처음 만져보는 컴퓨터에 입만으로 컴퓨터를 작동해야 하는 그로써는 너무나 힘겨운 과정이었다.

“처음 컴퓨터를 다뤘을 땐 너무나 힘들고 어려웠어요. 그렇지만 컴퓨터로 인해 세상과 만나게 됐고,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는 욕망이 올라왔어요. 그렇게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됐고, 야학에서, 인터넷으로 열심히 공부했어요.”

다시 공부를 시작한 김씨는 지난해부터 서울 안암동에 위치한 야학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고려대 학생들로 이루어진 선생님들로부터 김씨는 영어, 수학 등 과목을 일주일에 2번 정도 배우고, 돌아와 일일이 강의내용을 입으로 메모장에 적었다.

하지만 야학에서 봉사하는 대학생들이 개인사정으로 그만두고 바뀌는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김씨는 올해부터는 인터넷 온라인 강의를 시작했다. 온라인을 통해 보이는 강의내용을 반복해서 끊임없이 들었으며, 교재는 활동보조인이 일일이 한 장씩 스캔을 해줘 메모장에서 필기를 했다.

이후 메모장에 저장해둔 것을 다시 공부할때마다 열어 읽어보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다시 강의를 들으며, 공부해 나갔다. 그것이 꼬박 3개월간 지속됐다.

김씨가 가장 어려운 과목은 다름 아닌 수학. 과목 특성상 일일이 손으로 필기하며 계산해야 하지만, 모든 것을 머리로 암산을 해서 풀어나가야 하는 김씨에게는 힘겨운 과목일수 밖에 없다. 대신, 그만큼 암기력이 발달돼, 사회과목에는 자신 있다고 웃었다.

시험 당일은 힘들지 않았냐라는 질문에 김씨는 “하마터면 시험을 못 볼 뻔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 5시30분에 고사장에 가기 위해 장애인콜택시를 불렀으나, 전화를 받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어머니의 차를 급하게 타고 아슬아슬하게 시험 장소에 도착했던 것.

김씨가 공부한 책들. 이 책들을 일일이 컴퓨터 스캐너로 스캔받아 공부했다.ⓒ에이블뉴스

처음 치르는 시험에 긴장했다는 김씨는 누워서 대필 해주는 감독관과 함께 문제를 풀어나갔다. 대필자는 시험지를 누워있는 김씨에게 보여주고, 오지선다형 문제를 하나씩 가리키며 김씨가 “예”라고 하는 부분에 답 표시를 했다. 그런 방법으로 6교시까지 풀어나갔다.

“특수학교에서 시험을 봤는데, 다른 분들은 거의 전동휠체어를 타시는 지체 장애인이셨어요. 아무래도 손으로 푸시는 분들보다 저는 더 힘겨울 수밖에 없었어요. 시간이 아슬아슬했지만 다행히 제시간에 맞춰서 시험지를 제출했어요.”

야학에서 1등으로 시험에 붙었다는 김씨는 앞으로 대입 검정고시(고졸 검정고시)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 몸이 아픈 장애인을 위해 보조기기를 만들고 싶어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싶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해 심리치료도 겸하고 싶어 심리학과에도 진학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김씨는 “주변에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장애인이 많지만 사실 장애인이 공부할 만한 야학 같은 것이 너무나 적어요. 지역별로 장애특성에 맞는 야학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저를 보고 꿈과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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