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지도수근력검사로 인해 전동스쿠터를 처방받은 서동엽씨. 지급받아도 무용지물인 전동스쿠터 대신 내구연한이 지난 낡은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다 . ⓒ에이블뉴스

“6년 넘게 쓴 전동휠체어, 언제 어디서 갑자기 설지도 모릅니다. 목숨을 걸고 밖에 다니고 있는거에요. 도대체 제도 만들 때 보건복지부는 뭘 했나요.”

충청북도 충주시에 거주하는 서동엽(지체장애 1급, 58세)씨는 오늘도 언제 멈출지 모르는 전동휠체어에 몸을 싣는다. 그는 전동휠체어가 오늘 하루종일 아무일 없이 달려주길 바랄 뿐이다. 내구연한이 훌쩍 지난 서씨의 전동휠체어 바꿀 법도 한데 그는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다”고 토로한다.

전동스쿠터로 교체하면 '기어다녀야 할 판'

지난해 10월 26일자로 서씨의 발이 되어 준 전동휠체어가 6년의 내구연한이 끝났다.

현재 건강보험가입자에 한해 6년의 내구연한이 지나면 전동휠체어 또는 전동스쿠터를 새 것으로 교체 받을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한 후 의사의 처방전을 발급받아야 가능하다.

서씨도 지난해 내구연한이 지남에 따라 전동휠체어 처방전을 받기 위해 인근 대학 재활의학과로 향했다.

당시 그는 자신이 전동휠체어가 아닌 전동스쿠터를 받게 되리라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의사로부터 ‘상지도수근력검사를 했더니 전동스쿠터 밖에 처방해줄 수 가 없네요’라는 말을 듣게 됐고, 큰 걱정에 휩싸였다.

만약 서씨가 전동스쿠터를 타게 된다면, 건물 입구에서 집 현관까지 기어 움직여야 한다. 전동스쿠터는 전동휠체어 보다 커 건물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문제 때문이다.

현재 매일 출퇴근을 위해 전동휠체어를 이용, 현관문 안까지 전동휠체어가 들어오지만 바닥까지 내려 오는 것도 홀로 30분 이상 소요된다. 서씨는 안에서 기어나가 건물 밖의 전동스쿠터를 타기까지 무려 1시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목소리 냈다.

더구나 전동스쿠터를 건물(빌라) 입구 밖에 놓아, 도난의 위험 발생 가능성도 높아진다. 무엇보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전동스쿠터에 대한 두려움도 포함돼 있다.

현재 이용하는 전동휠체어의 경우 집 현관문 안쪽에 놓을 수 있어 이동하기에 한결 수월하고, 6년 이상 이용해 온 요령도 있어 훨씬 편리하다.

그렇다면, 서씨가 왜 전동휠체어가 아닌 전동스쿠터 처방전을 받게 됐을까? 지체장애 및 뇌병변장애인은 전동휠체어 및 전동스쿠터의 처방전을 받기 위해 의사로부터 상지도수근력검사를 필히 받아야 한다.

두 보장구 모두 장애유형에 따라 충족기준이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은 평지에서 100m이상 보행이 어려워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상지도수근력검사 결과에 따라 지급받는 보장구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서씨 같이 지체장애인이라면, 평지에서 100m이상 보행이 어렵고, 상지도수근력검사가 3등급 이하여야 전동휠체어 처방전을 받을 수 있다.

쉽게 말해 상지도수근력검사 3등급 이하가 나오면 전동휠체어, 4, 5등급 나오면 전동스쿠터를 처방받게 된다. 상지도수근력검사는 근력을 도수로써 측정하는 방법의 검사로, 근력의 강도가 높을수록 비장애인의 근력과 동일하다.

서씨의 경우 비장애인에 비해 양팔 힘은 약한 편이지만, 타 장애인들 보다 상지 힘이 우월해 전동스쿠터를 처방받게 된 것이다.

검사에 따른 일괄적인 보장구 지급 ‘불만’

서씨는 이 같이 상지도수근력검사로 전동보장구 적합 여부를 판단하는 현재의 ‘전동보장구 지급 기준’에 대해 강하게 불만을 나타냈다.

“실제 이 사람이 전동스쿠터를 탈 수 있는지 아님 전동휠체어를 탈 수 있는 지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이 기준으로 일괄적으로 처방해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전동스쿠터 받아도 전 무용지물이에요. 이 사람한테 실제 필요한 게 뭔지 알고 줘야죠. 넌 힘 있으니까 전동스쿠터, 넌 못 쓰니까 전동휠체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이 기준을 만들 때 당시 담당자들이 실사도 하지 않은 채 제도를 만들고 그 피해는 나 같은 장애인들이 입는거에요.”

이 기준 자체가 장애인의 개개인 특성이나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채 만들어진 정부의 ‘탁상행정’이라는 것이 서씨의 주장이다.

이 같은 문제는 지난 ‘제18대 국회’에서도 제기 됐었고, 본지는 지난 2011년 6월 17일 서씨와 비슷한 사례에 대해 <전동보장구 처방전 때문에 ‘골머리’> 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당시 박민수(가명, 53세, 지체장애1급)씨도 상지도수근력검사에 따라 사용해 온 전동스쿠터가 아닌 전동휠체어 처방전을 받았고, 결국 인근 복지관의 기증 된 중고 전동스쿠터를 이용하고 있었다.

내구연한이 지나기도 전에 전동휠체어의 잔 고장으로 이미 수차례 수리를 받은 탓에 서씨의 재정적인 부담은 더욱 커졌다.

결국 애타는 마음에 서씨는 보건복지부 기초의료보장과에 전화해 전동스쿠터 사용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우선적으로 전동휠체어를 지급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문의했지만, 담당자로부터 들은 말은 역시나 ‘권한 밖’이라는 말 뿐이었다.

“담당자는 제도를 바꾸려고 해도 시간이 걸린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해 말하더라구요. 물론 제 문제가 제도가 바꿔야 가능하다는 얘기지만 우선적인 구제책을 확보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바뀔지도 모르는 이 제도, 기한 없이 계속 기다려야하나요? 내구연한 지난 이 전동휠체어도 낡아 언제 서버릴지 모르는데요.”

빠듯한 생활 형편 탓 자부담으로 전동휠체어 구입 ‘힘들어’

전동휠체어의 구입 비용은 최소 300여만원에 달한다. 건강보험에 따라 서씨는 전동휠체어 209만원을 지원받아 초과금액만 자부담하면 되는 상황이지만, 전동스쿠터 처방전 발급에 따라 전동휠체어를 구입하려면 전액을 자부담해야 된다.

서씨는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 생활하는 형편으로, 전동휠체어를 자부담으로 구입할 생각 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새 전동휠체어로 교체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서씨의 마음은 애가 타들어간다.

본지가 박민수씨의 사례를 갖고 취재 했을 때 복지부 관계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장애인보장구 전체의 지급 적정성 여부에 대한 연구용역이 실시되고 있고, 이후 관련 단체의 의견 수렴 후 제도개선안 마련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1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장애인보장구 지급 기준에 대한 장애인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당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실시한 연구용역은 (장애인보장구 지급 기준 개정을 위한 연구가 아닌) 지난해 도입 된 전동보장구 품목별 가격고시제 도입을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내구연한이나 기준금액을 위한 연구과정이였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보장구 지급 기준으로 포함 된 상지도수근력검사는 2008년 도입 당시 장애인 운전자의 안전을 위해 도입 됐었다. 그 당시 도입을 위한 기준 개선안 회의에 (2008년 초) 장애인 단체 분들도 참석했었고, 안전사고 위험에 동의해 (상지도수근력검사가) 포함이 된 거 였다”이라면서 “현재 (복지부 내에서) 보장구 세부 인정기준 개정을 위해 고민하는 건 없지만, 관련 단체에서 좋은 의견을 주시면 검토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댓글열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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