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동희 소장(왼)과 인턴 성종수씨(오).ⓒ에이블뉴스

중증장애인의 새로운 고용지원시스템으로 떠오른 IL인턴제 시범사업이 실시된 지 벌써 1개월이 흘렀다. 지난 10월초 전국 장애인자립생활센터 36개소에서 시작된 IL인턴제는 중증장애인 1명을 12월말까지 인턴으로 배치, 직장 및 직무경험을 통한 취업역량 향상을 도모하고자 마련됐다.

그렇다면 IL인턴제의 실제 인턴 중증장애인은 1달 가량의 직장생활을 잘 해내고 있는 걸까? 19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마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인턴 성종수(뇌병변1급, 32)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겉모습만 장애인이었던 제가, 이제 장애인 복지사업에 ‘척척박사’가 되가는거 같아요!”

지난 10월 16일 첫 출근, 오는 12월22일까지 오전 9시면 어김없이 센터로 향해야 하는 종수씨는 언어장애가 심한 뇌병변 장애청년이다. 마을버스와 지하철을 통해 15분정도의 출근시간을 가진다는 종수씨는 IL인턴제 전만 하더라도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존재조차 몰랐다.

학창시절 일반학교와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종수씨는 사실 글을 좋아하는 시인 지망생이었다. 겉모습 외에는 비장애청년과 다를 바 없던 그는 취업시장에서 비로소 ‘장애인’임을 실감했다. 언어장애를 가진 그에게는 취업 벽이 너무나 높았던 것.

“정치외교학과를 10년 동안 다녔어요(웃음). 이후 ‘직장을 가져야겠다’ 생각하고,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너무 힘들더라구요. 요즘 취업하기도 힘든 세상이잖아요. 알아보다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원서를 등록해봤어요. 삼성SDS에도, 한진에 면접을 볼 기회가 생겼지만, 실패했죠. 그러다가 운 좋게 이런 IL인턴제라는 것이 있다고 해서 지원하게 됐구요.”

그렇게 종수씨와 인연을 맺은 마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부여에 계신 그의 부모님은 첫 취업소식에 너무나 기뻐했다. 총 8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 센터에는 종수씨와 같은 장애인이 5명. 낯선 환경에 처음에는 적응하지 못했지만, ‘장애’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다보니 한 달이 지난 이제는 농담도 나누는 사이가 됐다.

“예전에 사회복지사 2급자격증을 따고 다문화센터에 실습을 나간 적이 있어요. 대부분 비장애인이다 보니 장애특성을 인정해주지 않더라구요. 말에도 배려가 없어서 상처도 받았어요. 그래도 이해하니까 어떻게든 넘겼는데 힘들었던 점이었어요. 근데 지금의 센터는 아무래도 장애 특성들을 잘 알고 일에도 분담을 해주니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그게 장애인의 직업에 대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종수씨가 처음 출근한 날, 직원들이 가장 처음 말을 걸어준 것은 “무엇이 안되니”였다. “커피 심부름 할 수 있니?”, “아니요. 손 떨림이 심해서 못 해요.”, “문서작업 가능하겠어?”, “네. 가능해요.” 이는 종수씨에게 잊을 수 없는 고마움이었다.

"이 정도는 이제 기본!" 인턴 한 달째, 점점 직장생활에 적응해가는 종수씨의 모습.ⓒ에이블뉴스

현재 종수씨가 하고 있는 일은 주로 컴퓨터를 이용한 행정업무로, 자료검색, 사업계획서 작성, 보고서 작성 등이다. 장애로 인해 키보드 치는 것이 조금은 서툴지만,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내려 노력한다. 최근에는 다양한 업무를 체험해보고자, 휠체어청소, 파크골프, 조례 서명전에도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장애인계에 전무했던 종수씨에게는 ‘IL인턴제’가 장애를 바라보는 인식부터 바꾸게 된 계기가 됐다.

“최근에 사업계획서를 1주일 만에 작성했어요. 원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 소설을 쓰는 것과 사업계획서를 쓰는 것은 천지차이더라구요. 또 조례 제정을 위해서 법규를 살펴보기도 했구요. 활동보조, 장애인콜택시, 보장구지원제도 등 센터에서 일하면서 장애인복지사업이 이렇게 많다는 걸 알았어요.”

하지만 그가 한 달 꼬박 일해 손에 쥐는 돈은 80만원 수준이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작은 금액이지만, 그에게는 ‘첫 월급’이라는 기대가 크다. “월급으로 뭐 할거냐”라는 질문에 곧 첫 월급을 받는다는 종수씨의 얼굴에 금방 웃음이 퍼졌다.

“전 국민이 하는 거, 바로 부여에 계신 부모님에게 빨간 내복을 사드리고 싶어요. 취업이 어렵다보니까 빨간 내복을 사는 친구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거든요. 그리고 2살 어린 제 동생에게도 용돈을 주면서 형 노릇을 해보고 싶구요. 기회가 된다면 여자 친구도 사귀어서 데이트 비용으로도 사용하고 싶네요.”

하지만 그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1달 정도 뿐이다. 아직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IL인턴제가 내년도 정식제도로 도입될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앞서 한 달 동안 직장 내 분위기와 센터 사업을 파악하는데 썼다.

이제 남은 한 달은 이 업무가 종수씨 자신에게 맞는지 판단할 수 있는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12월22일 이후로 종수씨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제 사업이 어떤 건지 파악하고, 계획서를 작성하는 수준이예요. 일을 해나가면서 이 사업을 계획서만 작성하지 않고, 더 나아가 직접 사업을 이끌고 싶은 마음인데 시간이 너무 짧은 거 같아요. IL인턴제를 더 길게 해서 센터의 정직원이 되고 싶어요. 제가 지금 인턴제가 끝나면 공무원 시험쪽으로밖에 내몰릴 수 없거든요. 장애 때문에 받아주는 곳도 없고, 시험밖에 남는 게 없어요. 막막해요.”

마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동희 소장도 “IL인턴제가 시범사업으로 끝나지 않고 정식제도로 도입해야 되요. 센터 차원에서도 장애인 직원을 뽑고 싶은데 면접으로 가늠할 수 없잖아요. 1년 정도의 인턴제를 통해 지켜보고 그 후에 채용할 수 있어야 되요”라며 “임금도 80만원에서 100만원 대로 높여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센터 내 작은 회의가 열렸다. 직원들이 모여 현재의 업무수준을 체크하던 시간. “종수 정외과 나오니까 사업계획서에 온통 설득하려고해!”, “종수는 강하게 키워야돼! 갈구면서 키우고 있어요!” 깔깔 웃는 화기애애한 장면이었다.

겉모습만 장애인이었던 종수씨가 새로 꾸게 된 소박한 꿈, ‘오랫 동안 이 센터에서 일할 수 있을까?’ 취업시장에 첫 발을 내딘 한 중증장애청년이 더 이상 절망하지 않길 기도한다.

종수씨가 그의 정신적 지주 박재현 사업팀장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에이블뉴스

마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회의 모습.ⓒ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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