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축하 화분과 함께 ‘오체투지’로 지하철을 탑승한 모습.ⓒ에이블뉴스

10일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 국회 광장에서 공식 취임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무려 35번이나 언급한 ‘자유’에는 장애인의 권리가 포함되지 않은 모양이다. 같은 시간, 장애인들은 특별경호구역으로 지정된 여의도공원 진입이 막혀 도로에서 “자유롭게 지역사회에서 살고싶다”고 부르짖었다.

이날 윤 대통령의 취임식에는 4만여 명이 참석했지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초대받지 못했다. ‘불청객’이 된 그들은 취임을 축하하는 화분 3개와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장미꽃 100송이를 들고 지하철을 기었고, ‘경호’를 이유로 뙤약볕 아래 아스팔트에 내동댕이 쳐졌다.

10일 오전 8시, 서울 5호선 광화문역(방화방면 1-1)에서 윤석열 대통령 취임 기념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장미꽃 100송이를 들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에이블뉴스

■축하 화분·장미꽃 100송이, ’그‘를 향해 기었다

전장연은 이날 오전 8시, 서울 5호선 광화문역(방화방면 1-1)에서 윤석열 대통령 취임 기념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하루 일정을 시작했다.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대표로 윤 대통령의 취임 축하 인사를 전했다.

“모든 국민의 권리가 보장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주시길 간절히 바란다”고 운을 뗀 그는 “대통령님이 가장 먼저 지켜줘야 할 문제는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대한민국”이라고 강조했다.

21년째 지켜지고 있지 않은 이동권, 초등학교 의무교육에도 소외된 교육권, 노동할 기회에서도 배제된 노동권, 그리고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된 탈시설까지. 그동안 전장연이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투쟁을 통해 알려왔던 내용을 차례로 언급하며 “장애인 권리예산이 2023년도 기획재정부 예산 가이드라인에 반영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5호선 광화문역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장애인활동가들.ⓒ에이블뉴스

그리고 오전 9시경, 곧장 윤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리는 국회 인근 여의도역으로 향하는 방화행 열차에 기어서 탔다. ‘윤석열 대통령님 장애인 평생교육권리 보장하십시오’ 축하 화분과 ‘장애인 권리 4대 법안 통과시켜라’ 깡통을 힘겹게 밀며 몸을 실은 박 상임공동대표의 뒤를 이어 중증장애인 10명가량이 역시 ‘오체투지’로 지하철을 탔다.

저마다 장애 정도와 유형에 따라 무릎으로 기거나 바닥을 하나씩 짚으며 시민들에게 관심을 호소했다. 장애인들의 오체투지로 인해 열차는 약 10분 정도 지연됐고, 박 상임공동대표는 여느 때와 같이 지하철을 탄 시민들에게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이형숙 회장은 바닥에 누워 “이동하고 교육받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고 싶어서 21년간 외쳤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21년간 외친 장애인 기본권리를 보장하겠다고 예산으로 답해달라"고 말했다.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국회의사당 인근 여의도역에 도착했지만, 경호문제로 가로막혔다. 장미꽃이 꽂힌 전동휠체어 앞에 취임식이 열리는 국회의사당 돔이 살짝 보인다.ⓒ에이블뉴스

■험난한 ‘그’에게 가는 길…결국 도로에 ‘털썩’

일곱 정거장을 지나 도착한 ‘여의도역’. ‘그’에게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오전 9시 27분경 여의도역에 도착했지만, 엘리베이터 앞에 기다란 줄이 생겼다. 휠체어를 탄 중증장애인 활동가 20여명이 모두 지상으로 올라오기까지 무려 50분이나 걸렸다.

휠체어에는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고 싶습니다’가 쓰인 장미꽃이 저마다 꽂혔다. 곳곳에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장 가는 길”이라면서 3번 출구 안내 문구가 빼곡했지만, 무사히 갈 수 있을지 눈앞이 아득해졌다.

여의도공원 입구 앞 여의대로에 대형현수막이 펼쳐졌다. 현수막 위에서 장애인 활동가가 투쟁을 외치는 모습.ⓒ에이블뉴스

결국 ‘불청객’ 전장연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인사를 전하지도 못한 채 행진을 시작한 지 20분도 안 돼 경찰 기동대 방패에 막혔다. 저 멀리 취임식이 열리는 국회의사당 돔이 보였지만, 여의도공원이 특별경호지역이라는 이유로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여의대로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표 취임 축하식이 열렸다. ‘차별 그만해’ 노래에 맞춰 율동 중인 전장연 활동가들.ⓒ에이블뉴스

어쩔 수 없이 뙤약볕이 쏟아지는 여의대로에 털썩 주저앉았다. 전장연의 요구가 들어간 대형 현수막이 펴지며, 그 위로 사다리를 목에 건 장애인들이 ‘투쟁’을 외쳤다. 전달되지 못한 축하 화분과 장미꽃도 바닥에 모두 내려놓은 채, 전장연만의 취임 축하식이 펼쳐졌다.

“21년 외쳤다. 이제 차별 그만해

21년 외쳤다. 차별 그만해

시설에 쳐박혔다. 이제 격리 그만해

시설에 쳐박혔다. 격리 그만해

지하철 탑니다. 이동권을 보장해

버스를 탑니다. 이동권 보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0일 여의도공원 입구 앞 여의대로에서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맞이 행진 후 마무리 구호를 외치고 있다.ⓒ에이블뉴스

■‘그’에게 바란다…“이동하자” “시설 짓지마라”

여의대로에 둘러앉은 전장연 활동가들은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한 번이라도 오체투지를 하는 장애인들의 마음을 생각해본 적 있는지’ 말이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수미 활동가는 “특히 이동권은 21년간 외쳤다. 리프트 사고가 날 때마다 장애인들이 온몸으로 절실하게 외쳤다”면서 “사람은 이동해야 살아간다. 이동하면서 살고 싶다”고 ‘이동권’ 보장을 외쳤다.

노들장애인야학 김명학 교장은 윤 대통령에게 “5년 동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장애인평생교육법이 통과돼 장애인도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장애인교육은 생명권과 같다”고 ‘교육권’을 호소했다.

전달되지 못한 축하화분과 장미꽃들.ⓒ에이블뉴스

탈시설 당사자인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문석영 활동가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발달장애인을 감옥 같은 시설에 들어가게 하지 말라’,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라’, ‘지원주택을 많이 지어달라’, ‘발달장애인을 무시하거나 약한 존재로 보지 말아라’. ‘발달장애인을 학대하거나 폭력을 쓰지말라’, ‘더이상 시설을 만들거나 짓지말라’고 총 6가지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그렇게 행사 시작 3시간 반만인 오전 11시 30분께 전장연표 윤석열 대통령 취임 축하식이 끝났다. 초대받지 못한 장애인들이 가는 길은 참으로 험난 그 자체였다. 장애인들은 집회가 마친 후 여의도공원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국회의사당을 등진 채 돌아서야 했다. 앞으로 윤 대통령의 임기 5년간의 장애인 삶도 험난한 여정이 될까?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언급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에 장애인은 없었다.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국회의사당 인근 여의도역에 도착했지만, 경호문제로 가로막혔다.ⓒ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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