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8시, 서울 3호선 경복궁역 승강장(7-1)에서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한 인수위 답변을 촉구하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삭발 투쟁에 나선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박현 조직실장이 삭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에이블뉴스

8일 오전 8시, 서울 3호선 경복궁역 승강장(7-1)에서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한 인수위 답변을 촉구하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삭발 투쟁에 나선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박현 조직실장은 벌써 오늘로 3번째 머리를 밀었다.

부산에서 골형성부전증으로 태어난 박 조직실장의 어린시절은 집안 형편으로 제대로 된 재활치료도 받지 못한 채 ‘온실 화초’처럼 보호의 대상이었다. 미용실 가는 것도 어려워 아버지가 직접 머리를 깎아준 기억에, ‘언젠가는 마음대로 머리를 길어보고 싶었다’는 것이 한때 소원이었다고.

학교에 다녀보지 못하고 또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당했던 그는 18세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부양할 가족이 마땅치 않아 장애인 그룹홈에 들어가게 됐다. 박 조직실장은 그것을 “첫 자립생활의 시작”이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부산 장애인야학에 입학했고, 20살이 갓 넘어 그룹홈을 퇴소한 후 자립생활과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역까지 수동휠체어를 열심히 굴러갔습니다. 비장애인이 걸어서 10분이면 갈 거리를 전 혼자 30분 정도 소요가 됐지요. 문제는 저의 집 앞 지하철은 지상 2층에 있었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갈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처음에는 뭣 모르고 도와달라고 사람들에게 부탁했지만, 이상한 눈빛으로 그냥 지나갔습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30분을 그냥 있어 본 적도 있습니다. 하루 중 가장 힘들고 긴 시간으로 기억됩니다.”(박현 투쟁결의문 中)

삭발을 하는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박현 조직실장을 지켜보는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이형숙 회장.ⓒ에이블뉴스

몇 년 후 서울에 올라와 노들장애인야학을 다니며 자립생활과 동료상담을 접하고, 야학 동지들을 따라다녔던 집회 현장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도와주는 착한 시민들에게 감사하고 내 장애를 감당할 것이 아니라, 분노하고 바꿔야 한다’는 것을.

박 조직실장은 “열심히 살면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새빨간 거짓말이었고 내 어리석음이 비참했다”면서 “그것을 깨닫게 된 순간 소중하게 여긴 긴 머리를 짧게 깎고 장애인운동을 하게 됐다. 장애인교육권 투쟁, 활동보조 제도화 투쟁의 과정에서도 삶을 깎는 마음으로 두 번의 삭발을 더 하게 됐다”고 말했다.

8일 오전 8시, 서울 3호선 경복궁역 승강장(7-1)에서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한 인수위 답변을 촉구하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삭발 투쟁에 나선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박현 조직실장이 삭발을 마친 후,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에이블뉴스

그런 그가 또다시 삭발에 나선 이유는 ‘모두를 위한 자립생활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는 “머리를 깎는다는 행위가 아무렇지 않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 머리조차 내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했던 중증장애인들이 길렀던 머리를 깎는 것은 내 신체 일부를 자르는 것과 같다”면서 “장애인으로 태어나 다른 사람에 의해 제 삶이 더 이상 토막 나는 걸 원치 않는다. 제 삶을 제가 온전히 선택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

“오늘 31개월인 아들에게 제 짧은 머리를 보이며 당당히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아빠는 지금부터 아빠의 자립생활을 위해 모든 장애인 삼촌, 이모들의 자립생활을 위해 다시 싸울 거다’라고 말입니다.”

삭발을 마친 박 조직실장은 “몇 년 전에 정당 대표가 ‘선천적 장애인은 후천적 보다도 의지력이 약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준석 대표를 보면서도 장애인 삶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는지 모르겠다”면서 “장애인은 방구석에 처박혀 살고 밥만 먹고 시설에 가는 게 삶이라고 생각하냐. 장애인도 똑같이 부대끼면서 살고 싶다. 함부로 장애인의 삶을 이야기 말라”고 피력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장애인권리예산 요구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에이블뉴스

한편, 전장연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내년도 장애인권리예산 반영과 장애인권리민생 4대 법안(장애인권리보장법,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장애인평생교육법,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 대한 책임있는 답변을 요구하며, 4월 20일까지 삭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날 8번째 삭발 투쟁 결의식이 끝난 후,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인수위에 요구하는 장애인권리예산 중 ‘자립생활 권리 보장’에 대한 구체적 요구안을 설명했다.

먼저 올해 24억원의 탈시설 자립지원 시범사업 예산을 내년도 807억원으로 늘려 편성할 것을 요구했다. 구체적으로 탈시설장애인 대상 인원 1000명에 대해 장애인거주시설과 동일한 단가를 적용한 주거서비스 제공인력, 서비스 기관 운영비 등을 포함한 금액이다.

장애인활동지원 예산은 올해 1조7000억원에서 내년 2조9000억원으로 총 1조2000억원 증액을 요청했다.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발달장애인 등 24시간 활동지원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에게 24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라면서 “노동자들의 수당, 가산수당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예산”이라고 말했다.

또한 박 상임공동대표는 “우리는 인수위에 요구한 예산을 한 푼도 깎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 중에서 얼마나 가능한지에 대한 답을 달라는 것”이라면서 “어느 정도 가능하고, 이후 어떤 계획을 갖겠다는 답을 진심으로 촉구한다. 19일 밤까지 답을 주지 않으면 20주년을 맞이하는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오전 8시 이 자리(경복궁역)에서 지하철을 타겠다”고 경고했다.

8일 오전 8시, 서울 3호선 경복궁역 승강장(7-1)에서 열린 제8차 삭발 투쟁 결의식.ⓒ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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