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서울 종로구 인수위원회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권리예산 총 6224억원을 요구하고 있다.ⓒ에이블뉴스

참으로 오래 걸렸습니다. 21년의 울분이 섞인 윤석열 대통령 당선 축하 난(蘭) 화분을 전달하기까지.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첫 인수위원회 출근 날에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왔습니다. 당선인은커녕, 담당자 하나 나오지 않은 채 이들을 맞은 건 이제는 너무나 친숙한 경찰들뿐이었습니다. 20분째 경찰에게 제지당하자, 6만원 짜리의 난 화분을 내동댕이쳤습니다. 자료도 북북 찢어버렸습니다.

화분을 던지고 자료를 찢은 건 장애인이지만, 오히려 이들의 권리가 찢기고, 무시당한 것 같았습니다.

(위)지난 14일 인수위 앞에서 경찰로부터 제지 당하자, 축하난 화분을 던졌다.(아래) 22일 다시 축하 난 화분을 들고 인수위원회를 찾아왔다.ⓒ에이블뉴스

그리고 일주일 하고 하루를 지난 22일, 다시 왔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72일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4호선 혜화역 5-3 승강장에서 간단한 선전전을 마친 후, 충무로역에서 환승해 인수위원회가 있는 3호선 경복궁까지요. 오전 8시 20분경 혜화역에서 지하철을 타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욕설과 혐오 발언은 사정없습니다. 아니, 더 커진 것 같습니다.

“강남 가서 해라”, “장애가 벼슬이냐. 이 씨”, “우리가 낸 세금으로 복지혜택 다 받잖아”, “너네 때문에 우리가 왜 맨날 지각해야 하냐.”

페이스북 중계로 받아적은 내용만 이 정도, 실제로 이를 직접 들은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또한 “혐오 발언이 더 커진 것 같다. 왜 시민들에게 세금 축내는 나쁜 장애인으로 찍혀야 하냐”고 토로했습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묵묵히 요구안이 적힌 종이를 온몸에 붙이며, ‘언론에 나오지 않아도, 우리의 목소리가 전달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22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서울 종로구 인수위원회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권리예산 총 6224억원을 요구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의 몸에 붙은 요구안.ⓒ에이블뉴스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인수위원회 인근 도로에는 많은 취재진들이 전장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무릎, 휠체어, 그리고 마스크 위까지 붙인 요구안은 카메라 세레를 받았습니다. 요구안 또한 업그레이드됐습니다. ‘청와대 용산 이전보다 장애인이동권 보장 먼저’란 문구가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옵니다.

앞서 지난 일요일인 20일 윤석열 당선인은 직접 인수위 첫 기자회견을 갖고, 집무실을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는 계획을 확정해 발표했습니다. 이를 위한 예산은 496억원으로 추산했습니다.

500억원이 말 한마디에 ‘뚝딱’ 결정 나는, 그리 쉬운 거였나요?

전장연은 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리고 21년간 끊임없이 정부 부처와 국회를 향해 길바닥에서 오랜 세월 동안 장애인예산을 확대해달라고 싸웠습니다. 그렇게 말 한마디로 ‘초스피드’로 500억원의 예산이 결정되는데, 장애인 정책 속도는 왜 이렇게 ‘초슬로우’ 일까요?

요구안이 담긴 종이를 들고 설명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에이블뉴스

전장연의 요구안은 총 6224억원의 장애인권리예산 확보입니다.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탈시설 예산을 788억원 보장, 10명 중 3명의 장애인이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해 평생교육시설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장애인평생교육시설 운영비 국비 책임, 장애인의 완전한 이동권 보장을 위한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지원까지 모두 담겼습니다. 총 예산의 기준은 올해 장애인거주시설 운영비 예산 6224억원과 동등하게 잡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을 ‘비용’으로 계산하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 정책에 무관심한 사이, 장애인이 시설에서 죽어갔고, 이동하다 죽었고, 부모에게 죽임당하는 현실이 잊혀지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장애인들도 지역사회에서 사람과 만나고 같이 교육받고 소통할 수 있도록, 용산 이전 비용보다 장애인권리예산을 ‘먼저’ 결정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는 비용 500억원도 세금이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이동하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가 담긴 예산도 세금”이라면서 “세금 축내는 인간이라는 욕을 먹고 싶지 않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22일 인수위원회 관계자에게 장애인권리예산 요구안을 전달한 모습.ⓒ에이블뉴스

요구안이 들은 봉투는 또다시 인수위 관계자에게 전달됐습니다. 이미 윤 당선인의 후보 시절 유세 당시 서울 대학로에서, 그리고 선거본부를 통해서도 여러 차례 전달된 내용이기도 합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검토’말고 ‘된다’ ‘안 된다’만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검토’나 ‘각 부처와 이야기해 보아라’는 것은 ‘안하겠다’는 말과 같다며, 더는 기다리지 않겠다고도 경고했습니다.

이 화분은 내일(23일)까지 인수위 답변이 없을 시 ‘펑’ 터집니다.

전장연은 하루 더 인수위 답변을 기다리겠다고 물러섰으며, 24일 오전부터 인수위를 향한 투쟁을 시작합니다. 오전 8시 출근길 지하철을 타며 시민들과 또 만날 것이고, 인수위 인근에서 노숙 1박 2일 투쟁까지 이어갑니다.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출근길에서 만날 시민들에게 “욕은 듣겠으나, 욕 100번 중 1번은 윤석열 당선인에게 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윤석열 당선인의 국정 밑그림이 담긴 국정과제는 5월 초 발표될 예정입니다. 이 안에 장애인 정책은 얼마나 담길까요? 지난 21년간의 투쟁이 윤석열 정부 5년이 추가된 26년으로 이어지지 않길 바랍니다.

인수위앞 폴리스라인에 붙여진 장애인권리예산 요구안 내용.ⓒ에이블뉴스

인수위앞 폴리스라인에 붙여진 장애인권리예산 요구안 내용.ⓒ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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