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0일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연내 개정 촉구’ 지하철선전전을 진행한 장애인활동가가 휠체어에서 내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방화행 열차 문을 붙잡고 시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2021년 결산]-③장애인 이동권

2021년 신축년(辛丑年)은 지난해 발생한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고 더욱 기승을 부린 한해였다.

장애계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최고치를 경신하고 최고 단계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운영되는 상황에서도 장애인의 권리 보장을 위해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장애인 등록 사각지대, 장애인 탈시설,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 장애인 이동권 등 정부와 사회에 장애계의 요구를 알리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에이블뉴스는 올해 '가장 많이 읽은 기사'를 토대로 한해를 결산하는 특집을 진행한다. 세 번째는 '장애인 이동권'이다.

‘오이도역 추락 참사 20주기 특별열차’에서 내리며 소감을 밝히는 활동가 모습.ⓒ에이블뉴스DB

올해 1월 22일 낮, 4호선 오이도역에서 출발하는 당고개행 열차에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열차가 다시 경적을 울렸습니다. 20년 전 오이도역에서 있었던 추락참사가 있던 지 딱 2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동권은 자유권이다!”, “모든 장애인 이동할 권리가 100% 보장될 때까지!”, “20년 전 죽음이 다시 나오지 않도록…” 휠체어를 탄 장애인활동가들의 목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힘이 실렸습니다. 언론에도 여러 차례 보도됐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로 열차 지연’이라는 쏟아지는 보도도 많이 보셨을 겁니다. ‘왜 불편하게 하냐’, ‘사회에 기여도는 제로면서 바라는 것은 왜 그리 많냐’, ‘덕분에 지각했다’는 날카로운 댓글도 덤이고요.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들어는 보셨나요? 지하철을 가로막고 이동권을 외치기전 휠체어를 탄 활동가들은 눈부터 질끈 감고 ‘죄송합니다’부터 외치고 시작합니다. ‘너도 같이 망하자’가 아니라, ‘우리 같이 살자’는 싸움입니다.

지난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 제3조에는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며 이동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2001년 오이도역 장애인리프트 추락사망사건 이후, 장애계는 ‘장애인이동권연대’를 결성해 지하철 선로, 버스를 점거하며 이동권 투쟁을 펼쳤다.ⓒ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 법을 만들고, ‘이동권’이라는 단어를 얻기 위해 장애인들은 오랜 시간 쇠사슬을 몸에 감은 채 지하철과 버스를 점거하고, 이순신 장군 동상에 가서 붉은 카드를 내려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요? 국토교통부는 이 법에 따라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이행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3차 계획을 이뤄질 동안 단 한 차례도 목표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2011년까지 31.5%를 도입하기로 약속한 저상버스는 2020년 9월 기준, 28.4%(9791대)에 불과합니다.

장애인들이 수많은 시간 욕을 먹어가며 만들어졌던 저상버스지만, 정작 ‘저상버스 편하다’며 반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정작 장애인들은 승차 거부를 당하는 찬밥 신세를 겪고 있습니다.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전윤선 대표는 “저상버스 발판이 고장 나서 반나절까지 기다려본 적이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마을버스나 공항버스의 저상버스 도입은 아직도 ‘감감 무소식’이기만 하네요.

휠체어 리프트에 탑승한 중증장애인 모습.ⓒ에이블뉴스DB

‘띠리리리리~’ 사랑이 가득한 ‘엘리제를 위하여’ 휠체어용 리프트가 울리면 지나가는 시민들 눈동자가 한 곳에 꽂힙니다. 장애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이 리프트를 타며 떨어질 수 있겠단 위험성과 더불어, 빤히 쳐다보는 시선들에 수치심까지 느낍니다. 하루빨리 엘리베이터가 설치됐으면 하는 마음뿐이죠. 이 리프트 위에서 20년 전, 장애인 노부부가 추락해 사망했습니다. 뉴스 한 줄로 끝난 허무한 죽음이었습니다.

장애인 휠체어리프트 추락사망 사고가 발생한 1·5호선 신길역 환승구간에 설치해 2020년 2월 28일부터 운행을 시작한 경사형 엘리베이터(승강기)를 장애인 당사자가 이용하는 모습(좌측), 2020년 2월 28일 엘리베이터 완공을 기념하며 설치한 고 한경덕 씨의 추모동판(우측). ⓒ에이블뉴스DB

너무나 오래된 사건이라고요? 4년 전인 2017년 10월에는 신길역에서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하려던 중증장애인이 계단 아래로 추락해 숨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 2002년, 2008년, 2012년에도 휠체어 리프트 사고는 계속됐습니다.

분노한 장애인들의 멈추지 않는 싸움 결과, 20년 전 당시 서울시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 13.74%에서 90% 이상까지 끌어올렸습니다만, 서울시가 지난 2015년 약속한 내년까지 엘리베이터 100% 설치는 여전히 지지부진합니다.

그래서 모두를 위한 싸움을 매일같이 하고 있는 겁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불편도 커졌다고요? 혐오감만 생긴다고요? 나중에 모든 지하철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로 바뀌고 나서야 알게 되겠죠. 장애인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처절한 싸움이었음을.

국회의사당 전경 사진.ⓒ픽사베이

결국 질긴 자가 승리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서도 역시나 통하나 봅니다. 상임위에 계류돼 있던 대․폐차시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등이 담긴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지하철 집중투쟁 이후, 최근 국회 상임위 교통법안소위를 통과했습니다.

물론,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지원에 대한 국비 지원에 대해서는 아쉬운 부분으로 남았지만, 일단 이동권 투쟁 끝 달콤한 결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달 상임위를 거쳐 법제사법위원회, 그리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만 가능합니다. 그 때까지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은 이어갑니다.

크리스마스이브인 오늘(24일) 오전 8시에도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는 장애인활동가들이 나와 ‘장애인 이동권’을 외쳤습니다. 당신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기 위한 싸움, 법 조항 한 줄을 만들기 위해 질긴 싸움을 이어가는 장애인들에게 ‘엄지척’을 보내줄 순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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