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보궐선거일인 7일 청운효자동 제2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곽남희 씨.ⓒ에이블뉴스

“아직 시각장애인 참정권 보장의 갈 길은 먼 것 같아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날, 서울 종로구 서울농학교 1층 강당에 마련된 청운효자동 제2투표소를 나오며, 중증 시각장애인 곽남희 씨(남, 30세)가 이같이 토로했다.

흰 지팡이를 짚고 아버지와 투표소를 찾은 곽 씨는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위생 장갑을 끼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형 투표보조용구를 활용해 선거에 임했다. 위생장갑을 낀 후, 본인 확인을 거쳐 투표보조용구를 받기 위해 2분가량 대기했다.

곽 씨는 이 부분 또한 아쉬웠다고 했다. 당사자에게는 멍하니 옆에서 기다리는 2~3분의 대기시간이 길게만 느껴진다고. “투표보조용구가 바로 배치되지 않아서 기다려야 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많아요. 5분까지도 기다렸다고 하고. 곧바로 지급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서울 종로구 서울농학교 1층 강당에 마련된 청운효자동 제2투표소에서 시각장애인 곽남희 씨가 아버지와 투표를 하기 위해 대기 중이다.ⓒ에이블뉴스

시각장애인 유권자들은 점자가 박힌 투표보조용구 안에 일반 투표용지를 끼워 넣고 기표한다. 칸과 칸 사이 간격이 좁아 정확한 곳에 기표하기 쉽지 않아, 가족이나 활동지원사 등의 도움을 받는다고. 곽 씨 또한 아버지와 함께 기표대로 향해 기표를 마친 후,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고 나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문제점이 발견됐다. 점자형 투표보조용구를 스스로 폐기하려고 했지만, 직원이 ‘알아서 폐기하겠다’고 답한 것.

곽 씨는 “투표보조용구를 활용하다 보면 옆에 인주가 묻는 경우가 있다.시각장애인에게 폐기하는 장소를 알려줘 스스로 폐기하게 해야하는데, 알아서 폐기한다고 하니 눈으로 확인 못 해서 찝찝하다”면서 “시각장애인들 사이에서는 몇 년째 문제 제기를 해왔지만, 여전히 이뤄지지 않은 것 같아서 씁쓸하다”고 말했다.

'여전히 동등하지 않는 점자공보물' 피켓을 들고 있는 시각장애인 곽남희씨(오).ⓒ에이블뉴스DB

1948년 5월 10일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라는 민주적 선거제도의 4원칙을 도입해 최초로 국회의원 선거가 시행된 이후 수천 번의 선거가 치러지고 있지만, 70여 년의 시간 속에서 장애인의 한 표를 지켜내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현실이다.

앞서 지난 2일 사전투표 첫날에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6개 단체가 모인 장애인 참정권 대응팀은 청운효자동 사전투표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모든 장애인의 완전한 참정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인 곽 씨도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시각장애인 참정권 현실을 발언하기도 했다.

곽 씨는 이와 더불어 점자공보물을 받아보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있다고 짚었다. 그는 “이미 열흘 전쯤에 모든 점자형 선거공보물을 받아봤는데, 지난주 금요일부터 어제까지 낱개로 하나씩 또 왔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확인을 제대로 안 했는지, 묵자 보시는 분에게는 한 번씩만 오지 않냐”고 지적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일인 7일 청운효자동 제2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곽남희 씨.ⓒ에이블뉴스

또한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점자형 선거공보 제작 면수 확대, 디지털 파일 저장매체(USB)를 통한 발송 등이 이뤄졌지만, 이 역시 아쉬운 점이 많다고.

곽 씨는 “점자형 선거공보 면수가 늘어났지만, 종이가 얇아졌다. 그 전에는 두툼했는데, 이번부터 종이가 얇아져서 넘길 때 페이지가 한꺼번에 넘어간다”면서 “후보자 별로 종이가 다르니까 좀 규격화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공보가 담긴 USB가 제공됐는데, 의무화가 아니다 보니 서울시장 후보의 경우 총 15명 중 4개 후보한테서 왔다. 어떤 것은 포맷해야 한다는 등 제각각”이라면서 “동등한 정보 제공을 위한 의무화 등의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7년 대통령선거 때부터 매번 투표소를 찾았다는 곽 씨는 “모든 장애인이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 와닿는 정책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유력후보인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각각 장애인 공약을 내세웠지만, 크게 와닿는 부분이 없었다고. 특히 시각장애인 당사자인 만큼 시각장애인도 정책에서 소외되지 않길 소망했다.

“시각장애인은 혼자 버스 타는 데 어려움이 많아요. 정류소에서 버스 번호를 알려주는 것은 올바르지 않고, 다시 또 기사님에게 재차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거든요. 버스 위에 스피커가 달려 번호를 알려주는 시스템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예전에 한 운수회사에서 사용했었는데, 2년 정도 후에 없어져서 많이 아쉬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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