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심회 노만호 씨가 30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수어로 “신축년(辛丑年) 연두 기자회견장에 문재인 대통령 옆에 수어통역사를 배치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에이블뉴스

“새해를 맞으며 제가 바라는 소망은 신축년(辛丑年) 연두 기자회견장에 문재인 대통령 옆에 수어통역사가 서 있는 것입니다”

2020년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둔 30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농인당사자인 원심회 노만호 씨가 수어로 자신의 소망을 전했다. 그의 소망은 간단했다. 자신의 자부심인 수어가 소외계층을 지원하는 언어를 넘어, 대한민국의 언어라는 것을 문재인대통령이 먼저 보여주는 것. 즉, 새해 첫 기자회견에 수어통역사를 배치해달라는 소망이다.

노 씨는 지난 5월 뉴스전문채널을 통해 문재인대통령 취임 3주년 연설방송을 시청하다, 수어통역이 없어 농인으로서 자괴감을 느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중계방송을 했던 방송사 12곳 중 가운데 5곳(KBS, MBC, SBS, MBN, KTV)만 수어통역을 했다는 내용만 들었다고.

“한국수어법에는 수어가 국어와 동등하다고 명시되었는데, 대통령이 왜 법률을 지키지 않는지…. 저는 자라면서 많은 차별은 받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수어를 사용한다고 놀림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제 소원은 자라면서 받았던 차별을 농인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농인으로서 수어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싶습니다. 후배 농인들에게 그러한 자부심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노 씨는 대통령이 연설하는 옆에 수어통역사를 배치한다면 수어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고, 수어에 대한 위상도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부터 한국수어법을 지켜 기자회견, 대국민 연설시 반드시 수어통역사를 배치해달라고 요구했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등이 30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청와대 기자회견 등에 수어통역사를 배치해달라고 요구했다.ⓒ에이블뉴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장애벽허물기)은 공공기관의 수어통역사 배치 운동을 진행, 올 한해 코로나19 정책 브리핑, 국회 기자회견장 수어통역사 배치 성과를 냈다. 청와대 수어통역사 배치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지만, 성사되진 못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8일 “청와대의 주요연설을 중계하거나 영상을 청와대 홈페이지에 게시할 때 농인(聾人)의 실질적 정보 보장을 위하여 수어통역을 제공하기를 바란다”는 입장 표명을 내기도 했다.

즉, 대통령이 연설을 할 때 방송사에서 수어통역을 알아서 하라고 일임하는 것이 아닌, 청와대가 주체적으로 통역사를 섭외하고, 통역에 대한 관리감독을 통한 수어통역을 제공하라는 의미다. 또한 인권위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대통령의 연설 등 동영상에도 수어통역을 제공하라고 담았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등이 30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청와대 기자회견 등에 수어통역사를 배치해달라고 요구했다.ⓒ에이블뉴스

이날 장애벽허물기는 청와대가 인권위의 입장표명을 수용해 청와대 춘추관에 수어통역사를 배치, 중계를 하는 모든 방송사에, 같은 내용의 수어통역을 내보내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또한 청와대 홈페이지 영상물 등에 수어통역을 제공할 것을 함께 제안했다.

장애벽허물기 김철환 활동가는 “개중에는 대통령 옆에 수어통역사를 배치할 필요가 있느냐고 할 수 있을 것이지만, 2016년 제정된 '한국수화언어법'에 수어는 한국어와 동등하다고 명시되어 있고,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수어통역 제공의 책무는 정보를 내보내는 이에게 있다고 하고 있다”면서 “청와대가 정보제공자로서,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원천적으로 수어통역을 제공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만일 대통령이 연설하는 옆에 수어통역사를 배치한다면 국민들의 수어에 대한 인식이 더 높아질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수어에 대한 위상이 올라가고 농인들의 자부심도 높아질 것이고, 당연히 수어지원 정책도 개선되어 농인들의 사회참여도 확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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