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계양구에 거주하는 근육장애인 이재익 씨 모습.ⓒ에이블뉴스

“24시간의 활동지원을 받고 있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24시간 지원이 아니에요. 빨간 날이 많은 달에는 특히 두렵습니다. 돌봐 줄 사람도 없고….”

인천 계양구에 사는 이재익 씨(50세, 지체장애)가 에이블뉴스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해왔습니다. 인공호흡기를 24시간 착용하는 근육장애인인 그는 손가락 하나로 컴퓨터 마우스를 움직여 블루투스 이어폰을 연결, 어렵사리 전화를 걸어온 겁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그가 당장 다음 주 설 연휴로 인해 활동지원 공백이 생긴다는 우려에, 그가 독거로 거주하는 아파트에 방문했습니다.

올해 50세가 된 그는 전동휠체어 조종조차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최중증 장애인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일주일 2~3번 정도는 지하철을 이용해 서울로 나가 활동을 하는 정도고요.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활동지원서비스’는 제도 초기부터 받아왔고요. 정부 지원 월 391시간의 활동지원급여를 받습니다. 종합조사가 아닌, 기존 인정조사에 따른 점수로, 약 13시간 수준이죠. 부족한 시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그는 2018년 12월 지자체의 ‘최중증장애인 대상 24시간 활동지원 서비스 사업’ 대상에 포함돼 한시름 놨습니다.

그가 거주하는 인천시는 지난해 기준 인정점수 400점 이상 독거, 와상 장애인 10명에게 24시간 활동지원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는데요. 시에 문의한 결과, 매일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8시간, 사실상 밤 시간 활동지원을 보장해주는 목적이라고 합니다. 이 씨가 받는 시 추가 시간은 465시간으로, 국비와 시비 포함해 총 856시간을 받습니다.

(위)이재익 씨 집안에 걸린 2020년 1월 달력(아래)이 씨가 직접 계산한 ‘바우처 계산기’. 1월의 경우 76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다.ⓒ에이블뉴스

24시간은 720시간이니까, 모두 보장되는 거 아니냐고요?

‘22시 이후 6시 이전 심야에 제공하는 경우’, ‘공휴일과 근로자의 날에 제공하는 경우’ 1.5배 할증이 붙기 때문에, 720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즉, 31일까지 날짜가 있는 1월을 대입해보면, 신정과 설 연휴 등 할증이 적용돼 24시간 지원을 위해선 총 932시간이 필요한 겁니다. 이 씨는 ‘바우처 계산기’란 제목의 엑셀 파일을 만들어서 올해 달력 속 활동지원 시간을 모두 체크해 놓은 상태입니다. 이달의 경우 76시간이 부족한 상황이죠. 빨간 날이 주말밖에 없는 11월에도 24시간이 부족한 건 매한가지입니다.

물론 8시간 중 1시간 휴게시간을 적용하면 약 90시간의 공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현재 사실상 휴게시간은 적용되고 있지 않고, 휴게시간에 따른 정부의 대책 또한 없기에 최중증장애인은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이것 보세요. 이번 달의 경우 공휴일이 많잖아요. 제가 계산해보니까, 76시간 정도 모자라더라고요. 모자란 시간은 하루에 한, 두 시간씩 시간을 빼는 수밖에요.”

(위)이재익 씨의 집안에 있는 전동휠체어 모습(아래)이재익 씨는 마우스를 이동시키는 정도 외에는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에이블뉴스

현재 이 씨는 총 6명의 활동지원사에게 활동보조를 받습니다. 0~6시, 6시~13시, 13~22시, 22시~다음날 6시 등으로 나눠서 스케쥴 조정을 하고 있는데요. 주․야간 할 것 없이 1시간씩 조금씩 시간을 빼서 활동지원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6시에 오실 분에게 7시에 오시라고 이런 식으로 조정하고 있어요. 혼자 있을 때는 그냥 가만히 침대에 앉아서 기다리죠. 누워있으면 아파서 언제 체위변경 할지 모르니까요.”

이 씨는 달력에서 ‘빨간 날’ 보이면 한숨부터 나온다고 합니다. 인공호흡기가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는 정전으로 인한 위기도 겪은 바 있습니다. 인천시에 여러 번 “완전한 24시간 보장을 해달라”고 몇 번이고 요구도 해봤지만, 2020년 새해 역시 시간 추가는 없습니다.

“야간순회를 받다가 24시간 보장을 해준다고 해서 너무 좋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실상은 24시간 지원이 아니에요. 달마다 들쭉날쭉한 부족한 시간을 모두 메워줘야 하는데, 어떤 기준으로 해주는 건지 모르겠어요. 답답하고 불안해요. 저는 활동지원을 받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거든요.”

‘최중증장애인 24시간 활동지원’ 내용이 담긴 지난해 2월 인천시 보도자료.ⓒ인천시청

이에 대해 인천시청 관계자 또한 이 씨의 어려움에 공감했습니다.

시 관계자는 “시 추가지원은 심야시간에 부족한 활동지원을 채워주는 목적으로 최대한 공백을 보장하려고 하지만 빨간 날이 많을 경우, 8시간 중 1시간의 휴게시간을 줘야 하는 경우가 있어 당사자 입장에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면서 “예산을 확대해서 시간 확대 부분도 더욱 늘려가겠다”고 답했습니다.

또 올해는 예산을 3배 가까이 늘려서 24시간 활동지원 대상자를 10명에서 30명으로 확대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지난해 예산 6억5000만원에서 올해 23억4000만원으로 약 3배가량 늘렸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대상자 확대와 함께 시간 확대 부분도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차라리 안락사 시켜주세요’ 피켓이 걸린 침대에 누운 근육장애인 모습.ⓒ에이블뉴스DB

이 씨와 같은 척수손상, 루게릭병 등으로 인한 사지마비 와상 장애인, 24시간 인공호흡기 착용 장애인들은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8시간 동안 화재 등 각종 사고 위험이 매우 커 24시간 활동지원이 절실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제공하는 최대 활동지원 시간은 현재 월 최대 480시간, 즉 1일 평균 16시간 정도이며, 그마저도 종합조사표 만점을 받기 힘들어 이 시간을 받는 장애인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이에 복지부는 지자체에 추가적인 활동지원 제공을 권고하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의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17개 시·도 중 24시간으로 확대한 곳은 단 9개에 그칩니다.

전국적으로 261명이 지원받고 있지만, 그들이 꼭 ‘행운’은 아닙니다. ‘빨간 날’이 많은 달에는 그 시간도 부족해 이 씨와 같이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있으니까요.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 17개 시·도 중 9개에서 활동지원 24시간을 지원하고 있다.ⓒ윤일규 의원실

“올해는 대상자를 30명으로 늘린다고 하는데, 당연히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는 것은 맞지만, 제대로 해야죠. 1명이라도 제대로 된 24시간 지원이 돼야 합니다. 예산 규모에 맞춰서 몇 명이라도 제대로 해주는 게 맞아요. ‘대상자 3배 확대’ 라는 보여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거든요.”

이재익 씨는 내년 활동지원 등급 재갱신을 받아야 합니다. 이재익 씨가 종합조사표를 통해 모의적용한 결과, 현재보다 월 130시간이 깎이는 것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호흡기 사용 등 근육장애인들의 장애특성을 반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죠. 이 씨는 국비 시간이 더 떨어진다면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것 같다고 한숨을 ‘푹’ 내쉬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누구한테 말해야 할까요. 시에도 말했는데 반영이 안 된다면, 언론사에 얘기할 수밖에요. 저만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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