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천 조각에 ‘진짜’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을 요구를 내용을 쓰고 있다(기사내용과 무관).ⓒ에이블뉴스DB

“이 땅의 장애인 가족에게는 두 가지 선택만 있습니다. 장애인을 버리든지, 내 삶을 버리든지”

전남 광주에 사는 이민영(34세, 여, 가명)씨의 목소리에서는 고됨이 느껴졌습니다. 벌써 이 말을 몇 번째 반복했을지 모릅니다. 민영 씨의 동생 민주(31세, 여, 가명)씨는 1.6세 영아 수준의 인지능력을 가진 발달장애인입니다. 말을 할 수도, 글을 쓸 수도, 뇌전증장애까지 함께 갖고 있는 동생을 두고, 언니 민영 씨의 돌봄 ‘족쇄’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자매의 아버지는 오래전 가출해 소식이 끊겼으며, 어머니는 암으로 지난해 3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2살 터울의 큰 언니는 결혼 후 인천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는 동생과 셋이 함께 살다, 이후 남겨진 동생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민영 씨가 그 해 9월 결혼하며 더 이상 동생을 품에 안을 수 없었죠.

“신혼 살림을 차린 후, 동생을 근처 원룸에 독립시켰어요. 그마저도 걱정돼서 집과 3분 거리로 아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습니다.”

가족의 돌봄 부담을 완화해준다는 활동지원제도는 제도 시행 초기부터 쭉 사용했습니다. 지난해의 경우 월 89시간에서, 올해 4월 다시 198시간, 너무나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가 이야기 되고, ‘장애등급제 폐지’에 대한 기대감에 꾹꾹 눌렀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31년 만에 장애등급제 폐지! 하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전히 민영 씨의 가족의 고통은 그들만의 것에 불과했습니다.

다시 활동지원 등급을 받았지만, 1~15등급 중 9등급, 월 240시간에 불과했습니다. 부족한 시간으로는 민영 씨의 돌봄 ‘족쇄’는 결코 풀리지 않습니다.

“저는 제 가족을 뒤로하고 동생을 돌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제 가정은 이제 파탄의 지경에 이르렀고 남편은 지쳐서 제게 이혼을 이야기 합니다. 법적으로 자매는 부양의무자가 아닙니다. 헌데, 왜 저에게 이런 고통을 홀로 계속 안고가라고, 네 일이라고 하십니까?”

장애등급제 폐지가 되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민영 씨의 가족은 고통이다.ⓒ픽사베이 이미지

1.6세의 인지수준을 가진 동생 민주 씨의 일상은 평일 아침 기상과 주간보호센터 차를 타는 시간까지 2시간을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이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간보호센터에서 활동 후 집에 돌아옵니다.

잠들기 전까지 4시간을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는데, 주로 자신의 살을 뜯는 행동만 합니다. 오후 10시 가량 활동지원사가 퇴근해도 민주 씨의 하루는 끝나지 않습니다. 불면증까지 있어 3일에 한번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꼼지락’ 댑니다.

그런 동생이 걱정돼 핸드폰을 사서 위치추적 어플을 깔아줬지만, 전혀 이용하지 못합니다. ‘야간에 불이라도 난다면 내 동생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루하루 가슴 치는 고통입니다.

더 큰 문제는 주말입니다. 활동지원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주말에 모든 시간을 다 사용할 수 없습니다. 현재 활동지원급여는 매일 일반 시간의 경우 시간당 1만2960원의 수가지만, 오후 10시 이후 심야에 제공할 경우나 공휴일의 경우 1만9440원으로 할당이 붙습니다.

9등급 311만1000원(240시간)의 급여를 받는 민주 씨 입장에서는 할당이 너무 큰 산이죠. 더욱이 휴게시간 때문에 8시간 연속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주말은 신혼집에 민주 씨가 지내는 방법 뿐입니다.

"인천에 언니가 2주에 한번정도 주말 이틀정도 봐주는데, 그렇지 않으면 저희 집에 있어요. 신혼이다 보니까 갈등이 생기고, 신랑도 많이 힘들어하고…. 그래서 토요일 오후까지 활동지원사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어요. 그래도 힘들긴 마찬가지죠. 작년에 뇌수술을 받은 후 자기 뜻대로 안되면 안경을 뜯는다던지, 자해를 한다든지 하는 공격행동 있고….”

종합조사표 ‘인지행동 특성’ 부분.ⓒ보건복지부

현재 민영 씨는 동생이 24시간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이의신청을 준비 중입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녹록치 않습니다. 장애유형별 특성이 잘 반영되지 않은 종합조사표 탓에 신체의 불편함이 없는 민주 씨는 기능제한 점수를 받을 수 없습니다. 점수 배점이 큰 이동(48점), 배변(36점), 옮겨앉기(30점) 등에 대해서는 0점.

그나마 ‘인지행동 특성’에 해당하는 주의력(20점), 위험인식(18점), 환각환청망상(4점), 조울상태(4점), 돌발행동(8점), 공격행동(8점), 자해(8점), 집단부적응(24점) 등에서 점수를 받아야만 하지만, 국민연금공단 조사 시 제대로 된 점수를 받지 못했습니다.

“국민연금공단에 신청하고 또 신청하고, 우리 삶이 어렵고 동생이 돌봄을 받지 못해 위험에 처해있으니 도와달라고 올해만 2번 신청했지만, 답변은 똑같았습니다. ‘체크리스트 점수에 들지 못한다.’

이에 정신과적 소견을 통해 다시 이의신청을 할 예정입니다. 물론, 그때까지 민영 씨네 가족의 고통은 이어지겠지요. ‘위험하다’는 인지가 되지 않는 1살 수준의 민주 씨가 밤에 혼자 불이라도 난다면, 끔찍한 고통과 함께 언니들은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겁니다. 언제 어디로 튀고 어떤 안전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는 발달장애인의 특성이 종합조사표에 담기지 않는다면 말이죠.

장애유형별 활동지원 월평균 지원시간.ⓒ보건복지부

앞서 8월 보건복지부는 서비스 지원종합조사가 도입되면서 발달장애인의 활동지원 서비스 시간이 지적장애인 89.1시간에서 106.1시간, 자폐성장애인은 92.1시간에서 108.5시간 증가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루 30분 수준이죠.

민주 씨 또한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활동지원 시간이 42시간 늘어난 것은 사실입니다만, 하루 기준으로 보면 1.4시간입니다. 혼자 거주하며, 1살 수준의 인지능력을 가진, 자해와 공격행동이 있는 민주 씨의 도전적 행동이 개선됐을까요?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가 10월 14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31년 만에 변화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에이블뉴스DB

지난 10월 14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주최 정책 토론회에 참석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윤진철 국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루 30분 늘어서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이 개선되고, 복지사각지대가 근본적으로 개선할 가능성을 봤다고 해서 순간 하느님 오신 줄 알았습니다. 가능한 사고방식입니까?

물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바로 건져내야 하는데, 복지부의 행태는 10미터 빠진 사람을 1미터로 올려놓는 것에 불과합니다. 결국 건져내지 못했고, 숨이라도 쉴 수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숨을 못 쉬게 만들어놨습니다. 발달장애인 돌봄에 대한 부담은 결국 가족에게 전가되고 있습니다!”

취재를 다니며,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을 만나게 되면, 민영 씨 가족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반응은 같습니다. “아..또..”, “정말 이런 말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너무 많거든요.” 장애등급제가 폐지돼도 왜 가족들의 돌봄 ‘족쇄’는 여전할까요?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정도가 33.9%인데 비해, 발달장애인 지적장애 78.9%. 자폐성장애 87.3%로 타인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2011년 서울시복지재단의 발달장애인가족 복지 욕구조사‘에서도 성인 발달장애인의 돌봄 기간은 평균 34.4년으로 조사됐습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소속 회원들이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며 행진을 하는 모습. ⓒ에이블뉴스DB

“탈시설화 이야기 하고 계시고 발달장애인국가책임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왜 현장에서는 여전히 발달장애인들을 그들 가족들만의 고통으로 몰고 나몰라라 하십니까?”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올해 3월 ‘죽어도 해결 안 되는 장애인자녀문제’ 정책리포트를 통해 “활동보조는 지체장애 중심으로 설계된 제도로 움직임이 비교적 자유로운 발달장애인은 많은 시간을 받을 수 없게 돼 있다”면서 “발달장애인 특성에 맞는 활동보조 심사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 바 있습니다.

현재 복지부는 제도개선위원회를 통해 내년 6월 종합조사표 개선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국회에 넘어간 활동지원예산은 대폭 인상이 필요함에도 여야 간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의결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자칫 정부안 그대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로 넘어간다면 증액 또한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당장 종합조사표 개선도, 예산 확대도 기약 없는 상황에서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요?

민영 씨의 호소가 그저 메아리로만 끝나지 않도록, 그 가정에 비극이 없도록, 언니 민영 씨도 본인의 삶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정부의 정책이 수요자들의 피부로 와 닿을 수 있도록, “예산 확대하겠다”는 여야 의원들의 말이 말로만 끝나지 않도록. 장애인 가정의 고통이 그들의 것만이 아닌, 우리 사회가 함께 안아야할 문제임을 예산과 제도로 보여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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