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랑구에 거주하는 근육장애인 안준영 씨(30세, 지체1급)는 작년 연말 29년 만에 부모로부터 자립에 성공했다. 5살에 근이양증이 발병해 25년째 투병 중인 준영 씨는 인공호흡기를 착용 중인 최중증장애인이다.

병원에서 만난 지인들과 한강 유람선, 영화 보기 등 여러 자조모임을 통해 집 밖 생활을 꿈꿨던 준영 씨는 ‘장애가 심하다’며 자립을 반대하는 아버지와의 갈등 끝에 중랑구 근처 원룸을 구해 독립했다.

이제 서울시 의료안심주택 입주를 앞두고, ‘꽃길’까지 꿈꿨지만 준영 씨는 요즘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다. 바로, ‘휴게시간’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인해 오는 7월부터 사회복지사업이 근로·휴게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된다. 활동지원기관은 활동지원사의 근무시간에 따라 4시간일 경우 30분, 8시간일 경우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무시간 중에 부여해야 한다.

이 휴게시간은 무급으로, 휴게시간 위반 시 할동지원기관은 2년 이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저는 너무 중증이라서 활동지원사를 구할 수가 없어요. 휴게시간 자체가 두려움으로 다가와요.”

준영 씨는 지난 2011년 활동지원서비스를 처음으로 이용했으며, 그 전까지는 어머니가 24시간 동안 케어했다. 아버지는 정신적인 문제로 그를 돌보기가 불가능했고, 형제도 없어 돌봄은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었다. 손가락으로 겨우 마우스를 클릭할 정도의 최중증인 준영 씨의 모든 생활을 책임졌다.

근골격계 질환 등으로 몸이 쇠약해진 어머니는 주변의 도움으로 활동지원서비스를 알게 됐지만, 준영 씨는 1인 가구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 않았기에 활동지원 시간은 월 118시간에 불과했다. 여전히 나머지 몫은 어머니의 책임이었다. 그때 준영 씨는 자립을 결심했다.

우연히 알게 된 신세계중랑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지난해 2월부터 권익옹호활동가로 일하며, 센터의 도움으로 활동지원시간이 218시간으로 늘었으며, 지난해 말 본격적으로 독립하며 총 651시간으로 늘었다. 민철규(40세, 남) 활동지원사가 준영 씨의 주중을 책임지고 있다.

민 씨는 “처음에 호흡기낀 장애인을 케어하기가 겁이 났고, 근육장애인의 경우 쉽게 다친다”면서 “케어하다가도 신경이 많이 쓰여서 24시간을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공호흡기를 착용하거나 위기 대처 능력이 없는 근육장애인은 10분 간격으로 자세를 바꿔주지 않으면 극심한 통증을 느낀다.

민 씨는 준영 씨가 독립한 지난해 말부터 6개월가량 동안 2시간 정도만 잠을 청한다. “잠을 깊이 잘 수가 없어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항상 긴장해야 하고,”

준영 씨는 당장 7월이 너무 두렵다고 했다. 활동지원사인 민 씨가 거의 24시간을 책임지고 있는 상태에서, 매일 3시간의 휴게시간은 ‘공포’ 그 자체다.

지난 2014년 6월1일, 평소 알고 지내던 고 오지석 씨가 어머니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인공호흡기에 이상이 생겨 사망했던 일이 자기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인공호흡기 호스가 빠지거나 고장이 났을 시 3분 내로 조치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공호흡기 호스가 빠져 사망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지석 씨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3명이나 호흡기가 빠져 사망했어요. 10분만 자리를 비워도 그렇게 되는 거예요. 항상 불안하죠. 내가 안 그럴 거란 보장이 없잖아요.”

이에 정부에서는 준영 씨와 같은 고위험 최중증장애인 800명을 대상으로 휴게시간에 대한 대책을 내놨지만, 이마저도 ‘탁상공론’이라는 지적이 빗발친다.

복지부는 대안으로 가족이 휴게시간 동안 근무하거나, 두 명의 활동지원사가 교대 근무, 다른 활동지원사에 의한 대체근무 지원금 지급 등을 내놨다. 가족 대체 근무의 경우 활동지원 교육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준영 씨의 경우 가족 활동지원은 어렵다. 아버지는 정신적인 문제로 그의 돌봄을 책임질 수 없으며, 어머니는 몸이 좋지 않다. 29년동안 그를 위해 희생해온 어머니에게 또다시 모든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는 것이 준영 씨의 생각이다. 형제도 없는 외동이라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교대근무의 경우 다른 활동지원사를 구할 수 없어 힘들다. “케어가 힘들어서 1년 단위로 활동지원사가 그만 뒀는데, 누가 와줄 수 있겠어요.” 1시간 휴게시간을 대체하기 위해 준영 씨를 찾아올 활동지원사도 당연히 없다. “신변처리 뿐 아니라 인공호흡기 등의 전문적인 케어를 필요로 하니까 많이 기피하죠.”

현재 최중증 근육장애인들이 고위험희귀난치근육장애인생존권보장연대를 꾸리고 ‘중증장애인 말살하는 휴게시간 거부’ 국민청원을 진행 중이다. 22일 현재 6000여명이 서명했다. 준영 씨도 동참했다. 그는 휴게시간 적용 추진을 중단하고, 특례업종에 다시 포함되길 원한다.

“활동지원은 공장근무와 엄연히 다른 돌봄서비스 잖아요. 휴게시간이란 것이 이해가 안 돼요. 정부가 너무 대책 없이 적용한 게 아닌가 싶어요. 내 생존권의 문제잖아요. 어렵게 자립했는데, 다시 집으로, 아니면 시설로 가란 소린가요.”

활동지원사 민철규 씨 또한 공감한다. “이용자 입장에서도 휴게시간은 위험합니다. 저 또한 준영이에게 눈을 뗄 수 없는데 어떻게 휴게시간을 따로 가지란 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공장노동과 활동지원 노동과 차이는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또 돈을 많이 벌고 싶으신 분도 있을 거고.”

현재 준영 씨의 활동지원 중개를 맡은 신세계중랑센터의 경우, 당장 7월 휴게시간 적용이 힘들다고 했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신세계중랑센터 최현식 소장은 “아무런 대안 없이 휴게시간을 적용할 수 없지 않겠냐. 현재로서는 기존 대로 가는 방법 뿐”이라고 말했다.

윤선경 코디네이터도 “센터를 통해 활동지원을 이용하시는 분 총 79명 중에 최중증이 18명정도 된다. 가족이 대체근무할 경우 바우처 예외 결제라서 누가 언제 쉴지 모른다”며 “실시간으로 코디들이 모니터링해야 하고, 따로 서류도 만들어야 한다. 휴게시간만 생각하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준영 씨는 인터뷰 도중 내내 절실한 최중증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대신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당사자들만 나서고 있지, 장애계 내부에서도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우린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데. 국민청원 많이 동참했으면 좋겠어요. 20만명이 넘어야 청와대에서 답변도 주고, 이슈도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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