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도 부자의 세상걷기 모습.ⓒ에이블뉴스DB

1992년, 첫 아들 균도를 얻었다. 균도는 발달장애 1급의 자폐아였다. 하루는 너무 힘들어 균도 손을 잡고 바다로 갔다. 함께 하늘로 간다면 다른 가족들은 편히 살 수 있으리라. 그런데 균도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아빠 살려주세요!”

평범한 아버지의 인생이 달라진 그 날. 균도 아빠 진섭씨로 다시 태어난 날이기도 하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장애인운동을 하기로 결심한 진섭씨는 사회복지학과 대학생이 되고 다섯 차례에 걸쳐 3000킬로미터 국토대장정을 완료했다.

‘균도 아빠’ 진섭씨가 지은 ‘우리 균도’는 장애인 당사자의 불굴의 의지나 부모의 억척스러운 교육을 통해 장애를 극복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름답게 꾸미지 않은 우리의 진짜 이야기”. 균도부자의 23년간의 육아일기, 눈물로 적어간 웃픈이야기다.

지난해 10월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한 갑상선암 발병피해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하며 탈핵운동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진섭씨. 1992년, 고리원전 근처에서 태어난 균도는 올해 24살 청년이지만 다섯 살 지능에 과잉행동 장애를 일으키는 발달장애 1급의 자폐아다.

아버지 진섭씨는 균도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2011년, 복지관과 집 말고는 갈 곳이 없는 아들을 보다 못해 길을 나섰다.

균도와 같은 발달장애인법 제정과 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치며 40일을 걸어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었다. ‘균도와 세상걷기’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도보시위는 이후 사람들의 성원과 관심이 더해지며 다섯 차례에 걸친 3000킬로미터 국토대장정이 됐다.

“걸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스쳐가는 사람도 붙잡고 우리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느덧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몸자보 글귀를 확인하러 다가오는 사람, 아침 첫 손님에게 공짜로 밥을 퍼주는 식당 주인, 같이 걷고 싶다고 찾아오는 부모들이 생겼다. 하지만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었다. 물집이 터진 발바닥이 아파 우는 아이를 얼르면서 나도 울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응원과 바람이 더해지면서 어느덧 여행은 균도와 나만의 여행이 아닌게 되어있었다. 나는 돌아갈 수 없었다.”

'우리균도' 책 표지.ⓒ출판사

‘우리 균도’는 균도가 태어나서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동기와 학령기 발달장애인의 삶과 그 가족의 애환을 담고 있다.

말은 좀 느렸지만 여느 아이 못지 않은 재롱둥이였던 균도가 발달장애 진단을 받으면서 느낀 부모로서의 절망과 이후 느리게 나라는 과정을 지켜보며 겪은 심적 고통, 그리고 과도한 치료비 부담으로 인한 경제적 고충을 이야기한다.

지렁이를 먹고 온 사건을 계기로 장애를 받아들이고 장애 등급을 받기 된 사연, 학교와 일대일로 싸우던 목소리 큰 학부모가 부모 운동을 만나게 되면서 사회복지사가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균도를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펴 준 학교 선생님까지.

이들 부자가 1차 세상걷기를 끝내고 난 2011년, 장애아동복지법이 제정됐고 5차 세상걷기를 끝내고 난 지난해,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됐다. 또 강원도 원전들을 따라 걸은 4차 세상걷기 전에 제기한 갑상선암 소송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은 녹록치 않다. 장애아동복지법에서는 여러 조항들이 강제조항에서 임의조항을 수정됐고 발달장애인법은 소득 보장 조항이 빠진 채 통과됐다. 균도는 여전히 복지관과 집 말고는 갈 곳이 없으며 시시때때로 과잉 행동 장애를 일으켜 복지관조차 못 갈 때가 있다.

진섭씨는 갈 곳 없는 균도와 다시 ‘부양의무제 폐지’를 내걸고 걸을 계획이다. 자식보다 하루만이라도 더 살기를 소원하는 한 많은 아버지에서 사회에 그 책임을 묻는 장애인 활동가로 변신한 진섭씨, 그는 오늘도 균도의 손을 잡고 길 위에 서있다.

<우리 균도, 이진섭 지음, 304쪽, 출판사 후마니타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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