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선화학교 고등학교 과정 2학년 박우람 학생이 수화를 통해 자신의 꿈을 말하고 있다.ⓒ에이블뉴스

교복을 입은 청각장애인 학생들이 긴장 속 원고를 손 끝과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읽어나갔다. “나..의..꿈이..더..커졌습니다..” 발음은 뭉개지고, 음성은 전달되지 않았지만 10명의 학생들의 원고 속에는 자신의 꿈이 가득했다.

22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제7회 장애아동 청소년 독후감대회’에서의 모습이다.

10명의 학생들은 모두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특수학교 학생들이다. 서울, 충주, 대구 등 지역은 모두 달랐지만 꿈을 향한 희망의 목소리는 같았다.

시작 전 ‘11시에 시작하겠습니다’라는 대회 관계자의 말이 수화통역사의 손 끝으로 전달되자 준비해온 원고를 읽어보느라 정신없었다. 수화로 할지, 구화로 할지 걱정하는 친구들, 원고 빼곡이 밑줄과 빨간 줄이 그어져 있는 친구들 각자의 방식대로 10분간의 휴식이 주어졌다.

빼곡한 원고가 인상 깊은 서울삼성학교 고등부 2학년 김진세 학생은 ‘사진작가’가 꿈이다. 또래 친구들보다 큰 키, 교복이 어색한 모습의 김군은 알고 보니 또래 친구들보다 15살이나 많은 나이에 진로를 준비하고 있었다.

김진세 학생은 “사정이 있어서 또래들처럼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에 있었는데 사진을 찍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거웠다”며 “사진 속에는 산, 들, 꽃, 노을 등 다양하고 재밌는 것들로 가득했다. 나는 사진을 찍으며 외로움을 달랬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잊지 않았던 사진작가의 꿈. 그는 다시 학교에 입학하며 진로를 결정할 시기가 오자, 아무런 망설임 없이 사진작가를 선택했다.

'제7회 장애아동 청소년 독후감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대회에 앞서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에이블뉴스

김진세 학생은 “책 읽고 감명 깊어서 준비했는데 이렇게 본선까지 진출할지 몰랐다”며 “입시를 준비하는 다른 학생들보다 15년도 더 늦었지만, 꿈을 이루는데 나이는 관계없다”고 빙그레 웃었다.

본격적인 본선 대회 시작. 긴장감 속 서울삼성학교 고등학교 과정 2학년 권예지 학생이 원고 앞에 섰다.

이름이 호명되자 ‘어떡해, 어떡해’ 긴장하던 그녀의 꿈은 ‘배우’. 쑥쓰러워하는 모습에도 그녀는 자신의 꿈을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더듬 더듬, 구화로 말이다. 그녀의 더듬거리는 목소리는 옆 수화통역사가 분명한 문장으로 전달해줬다.

권양이 읽은 책은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 중학교 시절 문제아였던 책의 저자 김수영이 중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로 상고생으로, 골든벨을 울리고 연세대에 입학했던 내용. 결국 김수영은 세계 최고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 입사하게 됐다.

권양은 “나도 김수영씨처럼 열정을 갖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떨어지거나 잘 안될때면 암울한 표정을 하고 다녔다”며 “김수영씨는 국내 50여개 회사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는데도 좌절하기는커녕 항상 일어서서 또 다시 지원했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탄했다”고 말했다.

이어 권양은 “건청인들은 귀가 잘 들리니까 무조건 다 되는 줄 알고 왜 나는 불편하게 태어났는지 원망만하고 살았다. 장애가 있는 내가 뭐든 시도하려면 사람들이 안 되겠다, 부족하다고 했기 때문”이라며 “나는 어릴 때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청각장애인이 배우가 된다면 모두 비웃을까봐 말 못했다. 하지만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난 꼭 배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주선화학교 고등학교 과정 2학년 박우람 학생은 ‘1리터의 눈물’을 읽고 느꼈던 부분을 수화로 표현했다.

1리터의 눈물은 척수소뇌변성증에 걸린 키토 아야가 14살부터 21세까지의 생활들을 보여주고 있다. 아야는 몸이 점점 굳어져가는 이 무서운 병 때문에 히가시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도중에 양호학교로 옮겨가게 되고 휠체어까지 타게 됐다.

그녀는 더욱 더 몸이 굳어져 발음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 됐지만 포기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와병 생활을 하던 아야는 25세 10개월의 젊은 나이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잠들고 만다.

박군은 "내가 제일 감동 받았던 부분은 아야가 힘들어서 기어갈 때 엄마가 뒤를 따라 기어가는 모습이었다. 엄마의 마음 속에는 아야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구나 하고 깨달았다"며 "내가 뭐라도 아야의 엄마처럼 마음 속에 깊은 사랑과 따뜻함을 갖고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군은 "내가 비록 청각장애가 있지만 건강한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했다. 특별한건 없지만 건강하고 평범하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주어진 내 삶을 열심히 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장래희망은 어려운 친구들을 도울 수있는 사회복지사다. 아야 엄마의 헌신하는 모습처럼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컬링선수가 꿈인 서울삼성학교 고등부 2학년과정 정은실 학생.ⓒ에이블뉴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서울삼성학교 고등학교 과정 정은실 학생의 꿈은 김연아 선수의 노력을 본받아 컬링선수가 되는 것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의 권유로 컬링을 접하게 된 정양, 당시에는 선수가 될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취미라고 생각했다. 그런 정양은 2년 만에 서울시 대표선수가 돼 수차례 대회를 치르게 됐다.

정양은 “우리팀 모두 청각장애를 갖고 있기에 소리신호는 한계가 있다. 서로 의논한 끝에 컬링용어마다 손짓 신호를 정하게 됐다. 스톤을 던지고 스킵이 ‘스윕!’ 강하게 소리를 치면서 신호를 하면 바로 브러쉬로 온 힘을 다해 닦는다”며 “신호를 시각적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조금만 늦으면 타이밍을 놓쳐 작전이 어긋난다”고 말했다.

이어 정양은 “힘들 때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즐겁다. 나무처럼 뻣뻣했던 내 몸이 갈수록 유연해지고, 컬링자세가 눈에 띄게 쑥쑥 발전하며 나 자신도 놀랐다”며 “김연아 언니처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피나는 노력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날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중,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었지만, 마음속 울림은 성인 못지 않았다. 청각장애로 인해 겪어야했던 의사소통 등의 어려움을 책으로 배우고 극복하고 있는 모습에 방청하던 관계자들도 저절로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장애로 인한 시련을 책으로 ‘힐링’하고 꿈을 향해 달리겠다는 학생들, 앞으로의 건투를 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제7회 장애아동 청소년 독후감 대회' 풍경.ⓒ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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