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1시 30분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승강장 앞. 추석을 앞두고 고향을 내려가는 승객들의 분주한 모습 속에 환한 웃음이 가득했다. 그들의 틈 사이로 좀처럼 볼 수 없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고속버스의 편의시설 미비로 탑승할 수 없어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 30여명이 경부선 15번 승강장 앞에 모여 떡, 과일 등 음식이 올려진 차례상 앞에 선 것.
이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고속버스를 타지 못하는 장애인들의 '이동권 차별' 현실을 알리고, 시급한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기획한 퍼포먼스 행사였다.
장애인들은 간소하나마 술을 따르는 등 제례를 올렸다. 고향에 가지 못하는 아쉬움, 지방에 있는 아버지 산소를 가지 못하는 불효의 마음 등. 하지만 이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몇 해 동안 개선을 요구해 왔지만 타고 싶어도 탈수 없는 고속버스의 현실이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서울에 거주하는 김정훈(남, 45세, 지체1급)씨는 "2005년 돌아가신 아버지를 경기도 안성에 모셨는데, 마땅한 이동 수단이 없어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다"면서 "사고로 장애인 됐을 때도 죄송스러웠는데 돌아가신 이후에도 챙겨드리지 못해 불효하는 것 같다"고 착잡해 했다.
이어 “1998년 독일에서 사고가 나 다쳐 치료를 받았을 때는 버스 탑승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버스타고 갈 수 없는 현실이 아쉽다”면서 “하루 빨리 이동편의가 마련돼 아버지를 찾아 뵐 수 있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유덕형(남, 37세, 지체1급)씨도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부모님 고향에 내려가 보지 못해 할머니에게 죄송한 마음은 매한가지였다.
유 씨는 “할머니께서 경상남도 합천에 살고 계시는데, 부모님만 고향에 내려가시고 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면서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할머니 얼굴도 궁금하고, 건강도 걱정되는데 내려가 보지 못해 참 죄송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마음”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한 “서울의 시내버스는 고속버스보다 비교적 편의가 잘 돼 있지만 장애인들이 시내 안에서만 이동하는 것도 아니고, 기차로 접근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면서 “언제든지 고속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장에서 만난 장애인들도 사연은 각각 달랐지만 정부, 국회, 지방자치단체, 회사 등이 모두 적극적으로 나서 하루빨리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에 내려갈 수 있는 마음만은 같았다.
차례를 마친 뒤 장애인들은 휠체어가 올라가지 못하는 고속버스의 현실을 알지만 그래도 다시 탑승을 시도했다. 미리 예매한 오후 2시 안성, 2시10분 아산, 2시20분 용인행 고속버스 탑승권 총 30장을 들고.
이는 일반 승객들에게 불편을 주기 위함이 아닌 장애인들의 '이동권 차별'을 알려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힘이 돼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결과는 예견된 것처럼 몇 개 되지 않는 고속버스 계단에 꽉 막혀, 탑승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아산행 버스 출발이 20여분 동안 지연되자 일부 승객들의 항의도 발생했다.
한 승객은 “버스가 출발하려는 데 왜 방해 하냐?”고 항의했고, 장애인들은 승객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고작 10분, 20분 지연되는 거겠지만 우리는 버스에 한 번도 타보지 못했다”고 항변하며 현실을 개탄했다.
시민들의 불만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조현수 정책국장은 “버스가 지연되게 돼 굉장히 죄송하다”면서 “장애인들이 이러는 이유를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 달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명절을 앞두고 매번 터미널에서 되풀이 되는 장애인들의 고속버스 권리 찾기 모습, 정부 등의 관심과 개선 노력이 없는 한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 지 모를 일이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