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우이동 동아고속 차고지에서 열린 국토교통부의 중저상버스 시승식.국토부 관계자를 가운데에 두고 장애계의 의견이 갈렸다.ⓒ에이블뉴스

국토교통부의 중저상버스 도입 추진을 놓고 장애인단체 간에도 의견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대부분 장애인단체들이 도입에 적극 반대 입장을 내비친 반면, 일부 장애인단체에서는 “나쁠건 없지 않냐”라는 반응이다.

4일 서울 우이동 동아고속 차고지에서 열린 국토교통부의 중저상버스 시승식. 이날 국교부는 한국교통장애인협회,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등 장애인 단체들을 모아놓고 중저상버스의 의견수렴을 묻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큰 소란을 빚었다. 지난2월 성명서를 통해 중저상버스 도입 반대 입장을 확실히 했던 장애인단체들이 중저상버스 도입 반대 의견을 들며, 시승식까지 거부하고 나선 것.

이 같은 문제는 지난해 10월 서울시가 대시민공개자료의 형태로 현행 저상버스의 보급 및 운영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저상버스를 저상버스 기준에 포함시키는 추진 검토 문건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서울시는 2015년 서울시 소재 버스 50%를 저상버스로 도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지난해 저상버스 도입목표인 522대 보다 한참 미달한 191대를 도입해 계획된 보급률에 크게 미치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정부는 구입비용이 일반버스의 1.2배 수준으로 낮다, 버스회사의 연료비 및 유지관리비 부담완화, 저상버스와 안정성 도입 등의 이유로 중저상버스의 필요성을 제시했지만, 이는 비용과 도입률만을 고려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안전성에서도 우려스러울 수 밖에 없다. 계단이 아예 없는 저상버스(저상면 높이 340㎜ 이하)는 계단 1칸이 있는 대신 휠체어 사용자가 타고 내릴 때는 발판이 설치되는 중저상버스(610㎜ 이하)와 차이가 있다.

저상버스의 경우, 낮은 차체에 경사로를 설치해 승하차를 가능하게 하는 반면, 중저상버스는 계단이 1개가 있고, 승강판에 의해 수직으로 승하차가 가능하는 리프트형 모델. 이는 경사진 도로에 설치된 정거장에서 이용할 경우 추락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

이날 국토교통부 권석창 자동차정책기획단장은 “현재 서울시 저상버스가 9년이 됨에 따라 60대를 교체해야 하는데, 예산이 만만치 않아서 저상버스의 비율을 올릴 수 가 없다. 서울시의 경우 400억원에서 370억원으로 예산이 깎여서 저상버스를 저상버스로 대체하기가 쉽지 않다”며 “중저상버스는 저상버스의 비용의 60%가 들기 때문에 2대 비용을 3대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장애계의 의견을 듣기위해 시승식을 연 것이지, 절대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럼에도 장애계의 반대는 거셌다. 중저상버스 도입에 대한 전면 거부 입장을 확실히 함과 동시에 일부 장애인 단체 측에서는 시승식도 거부하고 나선 것.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이문희 사무차장은 “중저상버스가 누구를 위한 차인지 모르겠다. 중저상버스는 휠체어장애인만 혜택을 받을 수 있지, 목발이나 임산부, 유모차, 노인 등의 교통약자를 배려하지 않았다”며 “예산의 문제로 저상버스 대신 중저상버스를 도입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중저상버스 10대보다 차라리 저상버스 1대가 좋다”고 피력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와 무장애연대 배융호 사무총장은 중저상버스 도입을 논하기 전에 저상버스 도입률을 지키지 못한 정부의 사과가 우선시 돼야함을 강조했다.

박 상임대표는 “제한된 예산으로 중저상버스 도입을 해야한다는데 앞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반성이 먼저 돼야 한다. 예산이 안되기 때문에 중저상버스를 도입한다는 것은 협박과도 같다”며 “저상버스를 언제까지 100% 도입하겠다 라는 내용을 법으로 먼저 규정을 해놓고 예산도 완벽히 된 상태에서 중저상버스를 이야기를 하자”고 지적했다.

배 사무총장은 “무장애연대의 경우 국토부 법인단체임에도 중저상버스에 대해 의견 수렴을 들은 적이 없다. 중저상버스는 교통약자가 이용하지 못한다. 리프트에 대해 고장이 난다면 불안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현재 저상버스가 갈 수 없는 지역이 있다면 그 곳에 대해서만 중저상버스를 도입하면 되지, 모든 버스를 인정할 순 없다. 중저상버스를 저상버스 도입률로 넣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 사무차장, 박 상임대표, 배 사무총장은 시승식을 거부했다.

중저상버스 자동형 탑승모습. (왼쪽위 시계방향)리프트가 내려오는 모습, 기사가 내려서 리프트의 손잡이를 세우는 모습, 안 쪽에서 리프트를 조정하는 모습, 리프트를 통해 탑승하는 장애인 모습.ⓒ에이블뉴스

반면, 한국교통장애인협회 김락환 회장은 “의견 수렴을 위한 자리고, 중저상버스를 시험하기 위해 온 자리가 아니냐. 시승식을 해보고 중저상버스에 대해 반대를 해야지, 타보지도 않고 거부를 하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에 불과하다”고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어 김 회장은 “중저상버스에 대해 반대나 찬성에 대한 입장은 아니지만, 검토할 단계는 됐다고 생각한다"며 "중저상버스는 단체에서 주장하는 위험성이 있지도 않고, 목발장애인도 충분히 탑승 가능하다. 오히려 저상버스보다 괜찮은 거 같다”고 말했다.

이어 벌어진 시승식에서는 리프트를 이용한 자동형 방식과 경사로를 까는 수동형 방식으로 진행됐다. 시승식에 참가한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소속 유진복씨(35세, 지체3급)는 전동스쿠터를 사용한다.

중저상버스에 시승하는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이찬우 사무총장(위)과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소속 회원 유진복씨.ⓒ에이블뉴스

유씨는 “그동안 저상버스를 타고 싶어도 한번도 탈 기회가 없어서 저상버스와 중저상버스를 비교할 순 없지만, 대체로 만족한다. 위험성에 대해서도 괜찮은 것 같다”며 “한가지 문제는 스쿠터 차체가 크기 때문에 버스 안에서 스쿠터를 돌리지 못하고 나올때는 뒤로 나와야 한다. 그런 부분만 해결된다면 중저상버스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반면, 수동휠체어를 사용하는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이찬우 사무총장은 “일단 중저상버스는 교통약자를 위한 법의 기본 전제부터 잘못됐다. 모든 분들이 편해야 되는데 목발이나, 임산부 등의 의견 없이 휠체어장애인들의 의견만 받았다면 그건 반쪽짜리 관점”이라며 “예산 문제로 중저상버스 도입을 한다는 것은 협박조와 같다. 절대적으로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이렇다할 의견 수렴없이 시승식이 끝나자 국교부 권석창 자동차정책기획단장은 “오늘 시승식에서 시승식을 거부하는 단체들도 있어서 이렇다할 장애계의 의견 수렴을 받지 못했다”며 “앞으로의 추진 일정에 대해서는 계속 검토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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