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른 채 8년이 넘게 갇혀있었어요”, “막 때려서 두개골을 함몰 시켰어요”, 타인에 의해 강제입원 당했던 정신장애인 피해자들의 처절함이 A4용지에 한 가득 빼곡히 담겼다. 사례를 읽어 내리는 그 순간에도 손을 들어 너도나도 피해를 당했다고 호소했다. 고통 속에 있던 이들의 울부짖음이 차가운 법의 잣대를 움직일 수 있을까.

대책위 출범선언을 하고 있는 한국정신장애연대 최영광 회원(왼)과 피해 당사자 이정하씨.ⓒ에이블뉴스

■“신체, 정신 말살당한 그곳, 정신병원”=정신보건법 폐지 공동 대책위원회는 20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정신보건법 폐지를 위한 강제입원 피해자들 198명의 집단진정서를 제출과 함께 헌법소원 청구 발표회를 가졌다.

현재 정신보건법 24조는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의 정신적 능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의사결정 능력을 박탈하고 타인에 의해 강제 입원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강제입원은 가족에 의한 고려장이 됐으며, 정신 의료기관에서 자행되는 비인권적인 감금, 강제약물투여, 폭력 등에 대해 면죄부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더욱이 피해자들은 강제적으로 투여되는 약물로 인해 신체와 정신을 말살당해 평생을 후유증으로 신음하고 있다.

이에 앞서 정신장애인지역사회생존권연대 등 단체는 ‘강제입원’ 조항을 폐지해달라고 보건복지부 측에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전혀 반영이 되지 않았다. 결국 국가인권위원회와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

이날 진정인들의 피해사례를 살펴보면 ▲불법적 응급호송과정에서 자타해 위험이 없는 사람에 대한 극심한 구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대면진단 없이 강제 입원 ▲보호의무자 1인 만의 입원 동의에 따라 강제 입원 ▲병실 내 폭행사실 인지하면서도 의료진 등이 침묵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구타와 폭언 ▲하루 종일 갇혀있으며 산책도 하지 못함 등이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손가락을 두 개씩 잡고 찢었다”, “성분 미상의 주사를 맞고 독방에 갇혔다”, “강제입원을 당해서 8년 9개월 동안 병원에 갇혀있었다”, “폭행으로 두개골이 함몰됐다” 등을 호소했다.

이들은 이번 인권위의 진정을 통해 정신병원의 강제감금, 약물투여, 통제, 감시에 대해 즉각적인 직권조사 실시와 정부의 정신보건법 폐지를 위한 정책 권고를 촉구했다.

가족에 의해 7번 정신병원에 감금된 피해자 이정하씨는 “한국의 정신병원은 정신장애인의 생산공장이다. 개 끌고 가듯 끌고 가고, 저항을 하면 폭행을 동반 한다”며 “전쟁포로소라고 볼 수 있다. 강제입원으로 나의 모든 기능이 상실됐다. 업계 최정상의 에이스였던 내가 지금은 수급자다. 가족이랑 끊고 살아도 전화 한 통이면 언제 끌려갈지 모른다”고 토로했다.

이씨가 설명한 정신병원의 실태는 참혹했다. 폐쇄병동에는 창살이 있고, 너머에는 간호사실이 있어 24시간 감시 중이다. 침대 옆에는 좌식변기가 있어서 밥을 먹고 싶어도 냄새 때문에 먹을 수 가 없다.

언젠가는 한 입원자가 플라스틱 머리끈을 삼켰다. 응급실에 가서 도망가기 위해서. 하지만 토하고 힘겨워 하는 입원자를 두고 병원은 응급실은커녕, 가둬놓고 머리끈이 대변으로 나오는 것을 끝까지 확인했다. 이 같은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어도 촘촘한 창살 밖은 아무것도 모른다.

대책위는 “정신병원에서 행해지는 강제감금, 강제치료는 결코 의료행위가 아니다. 포로수용소와 다를 바 없는 곳에서 행해지는 고문과 학대에 환자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고 죽어가게 된다”며 “정부 당국 무관심과 대다수 국민의 정신건강의학계에 대한 맹목적 신뢰 속에서 정신장애인은 인간 취급조차 받지 못하며 갇혀 살아야만 했다”고 지적했다.

예인법률사무소 김명철 변호사(왼)와 공익법재단 공감 염형국 변호사(오).ⓒ에이블뉴스

■“자기결정권 침해…위헌성 확인해야”=하지만 정신보건법 24조를 폐지하려면 ‘큰 산’을 넘어야만 한다. 법률 자체의 위헌성을 확인해야 하는 것, 바로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이다.

앞서 헌법재판소에는 1996년 시행된 정신보건법 강제입원 조항에 대해 위헌 확인을 구하는 청구가 총 6건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각하’로 문턱 조차 넘지 못했다. 강제입원이 발생했을 때 기본권이 침해되는 것으로 판단하면서도 헌법소원의 소송요건 중 하나인 ‘직접성’이 없다는 것.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예인법률사무소 김명철 변호사는 “장애인권리협약에서는 모든 장애인은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신체적 및 정신적 완전함을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하고 있지만 정신보건법에는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의 정신적 능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의사결정능력을 박탈하고 있다. 당사국으로 기존 법조항을 개정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법 자체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자유를 침해하고 있으며,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내용이다. 무엇보다 자기결정권이 인정되야 하는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고 있다”며 “헌법 소송을 통해 법의 위헌성을 국민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도록 여론을 환기시켜야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공익법재단 공감 염형국 변호사는 “너무나 관이한 절차로 사적인 방법에 의해서 인식구속이 된다. 인권국가에서 벌어지면 안되는 분노할 수 밖에 없는 내용”이라며 “입원치료는 간과할수 없지만, 한 사람이 강제입원되서 기약없이 병원에서 살아야한다는 것은 반드시 바뀌어져야 한다. 신체적 자유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염 변호사는 “입원되는 시점에서 반드시 제3의 기관에서 판단을 받아야한다. 그것은 바로 법원이 되야 한다.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에 대해서는 영장 심사를 걸치고, 변호사의 조력을 받으면서 아무런 죄도 없는 정신질환자들은 마구잡이로 인신구속되야 하냐”며 “더 많은 준비와 노력 거쳐서 헌법재판관들의 위헌 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책위는 헌법소원을 위한 준비 중이며, 다음 주 중으로 헌법재판소에 소송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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