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애인이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고 있는 모습(기사내용과 무관).ⓒ에이블뉴스D.B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이 있다. 이는 현재 활동보조인과 이용자 간의 끊이지 않는 갈등 문제에 대입 시킬 수 있다. 각자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울 게 아니라, 만일 서로의 처지를 바꿔 생각해 본다면 어떨까.

지난 5월 활동보조인연대에서는 이 같은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갈등해소를 위한 워크샵을 열었다. 활동보조인, 이용자 각 10명씩 각자 다른 방에서 갈등에 대한 원인과 해결법을 찾아봤다. 워크샵에서 나왔던 내용을 제공받아 이용자, 활동보조인으로 나눠봤다.

■이용자가 느끼는 갈등은?=이용자 10명에게 활보를 받으면서 겪는 어려움은 다양했다. 먼저 활동보조인의 수가 부족한 것이 원인이었다.

A씨는 “시간이 늘어나고 주말에 법정 수당을 다 지급한다고 활보가 안정적으로 공급될 것 같지 않다”며 “시간이 늘어났지만 밤에 이용자와 잠을 잘 사람이 없다. 근육장애인의 경우 자다가도 체위변경을 해야 하고, 밤에 잘 활보를 이성으로 쓸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또한 업무에 따라 활동보조인이 이용자를 가리는 경우도 있다. 시간이 적은 사람을 싫어하고 쉬운 것만 선호하니, 이걸 다 맞춰서는 연결 자체가 힘들다는 것.

특히 남성 활동보조인이 적어서 동성활보를 구하려면 대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이마저도 안 될 때가 많았으며, 체중이 많이 나가는 이용자도 활보가 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에 대한 갈등도 있었다. 활동보조인이 정해진 시간을 안 지키는 경우나, 활동보조인이 활동하는 시간에 자신을 맞춰야 하는 어려움 등이다. 이용자 B씨는 “나는 활보가 와야 일어날 수 있는데 시간을 너무 안 지킨다. 아침 8시나 그 이전에 올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올 사람이 없다”고 토로했다.

또한 외출을 해야 하는데 활보가 오지 않으면 외출을 할 수 없어 힘들다는 이용자, 연락도 없이 늦는 활보 때문에 큰 싸움 끝에 해고하고 말았다는 이용자도 있었다.

이외에도 “시간이 많이 늘어나서 활보를 세 명 쓰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어서 불안하다는 사람이 있다”, “나를 계속 커밍아웃 해야 하는 것. 나의 신체를 보이는 것이 힘들다”, “일을 하면서 말이 너무 많고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는 사람이 있다”는 등의 문제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활동보조인이 이용자를 대신해서 주체가 되려고 해 갈등이 생겨난 사례도 많았다. 급기야는 아이 취급을 하거나 의도치 않은 인권침해까지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

이용자 C씨는 “언어장애가 심하신 분들이나 언어장애가 없더라도 같이 다니면 사람들하고 접할 때 내가 주체가 돼야 하는데 활동보조인이 주체가 된다”며 “그 사람들도 활동보조인에게 전달한다. 활보도 장애인에게 직접 하라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자기가 다 한다”고 토로했다.

이용자 D씨도 “많은 활동보조인들이 내가 얼굴이 빨개질 만큼 아이 취급을 한다. 심지어 여자 이용인이 목 넘김이 안돼서 물을 뿜었는데, 옷을 들쳐서 닦아줬다. 공개된 장소에서 말이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심각했다”고 말했다.

그밖에도 “자신이 보호자로 착각한다”, “이용자에게 반말하고 하대하고, 애기 취급한다”, “나를 대하는 자세가 고자세다”, “정의의 용사가 돼서 대신 싸워주기도 한다” 등의 의견도 있었다.

■활동보조인에게 갈등은?=반대로 활동보조인 10인이 느끼는 이용자와의 갈등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앞서 이용자 측에서와 마찬가지로 ‘시간을 지키지 않을 때’ 였다.

활동보조인 A씨는 “이용자의 스케쥴 대로 활보 시간을 변경할 때 화가 난다. 내 일정은 무시하고 마음대로 자기 스케쥴을 잡는다”며 “나 때문에 스케쥴을 펑크낼 수 도 없고, 미리 얘기해주면 나도 미리 일정을 조정할텐데, 나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 화가 난다”고 토로했다.

또한 ▲담배 냄새가 너무 싫은데 재떨이를 들고 있으라고 할 때 ▲술냄새가 너무 싫은데 술을 따르는 활보를 요구할 때 ▲이용자가 퇴근 후에도 같이 있기를 원할 때 ▲친구처럼 지내자고 하지만 실제로 원하는 것은 활보 시간이 아닌데도 활보를 받고 싶을 때 쓰는 표현일 때 ▲나의 취향이나 문화적 취미와 무관한 호의를 베풀려고 하고 거절하면 화낼 때 등 정말 하기 싫은 요구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

활동보조인 B씨는 “이용자가 예배 중에 옆에서 활보를 하길 원했다. 그게 종교적인 강요처럼 느껴져서 다른 교인에게 교육을 받고 활보를 하시게 하라고 권했지만 오래하지는 못 하시더라”며 “나는 활보를 할 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주변의 자원을 많이 이용하는 편인데, 교육만 받는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털어놨다.

활동보조인의 역할 정리가 잘 되지 않아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많았다. 자기 이용자가 아닌 사람들의 활보까지 요구받거나, 한 가족 안에 활보 서비스 이용자가 여럿 일 때 생겨나는 문제가 바로 그 것.

활동보조인 C씨는 “식사 준비를 할 때 한 사람 분만 차려야 할지, 두 사람 분을 해야 할지 고민스러울 때가 많다. 심지어는 남성 이용자의 활보가 남성일 때는 그 활보조차 이용자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며 “남성 활보는 가사보조를 하려하지 않았다. 참다가는 설거지는 당신더러 하라 했더니 처음 몇 번 하더니 그만 두더라”고 지적했다.

홛동보조인 D씨도 “내 이용자는 직장의 말단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온갖 허드렛일에 이용자의 동료의 심부름까지 해야하는데 정말 자존심 상한다. 행사가 있어서 가면 시간이 적은 사람들은 활보를 데려오지 않으니까 그 사람들의 활보까지 다 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끊이지 않는 갈등, 해결점은?=그렇다면 이런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점은 무엇일까.

이용자들은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 뒷담화로 끝나지 않으면 좋겠다. 모두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입장 바꿔 생각할 문제다”, “애로사항에 대한 실질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등의 제언을 했다.

이용자 E씨는 “코디들이 여러 경험을 해봤으면 한다. 문제에 대해서 코디들이 인식이 돼 있지 않으니 고쳐질 수 없는 부분”이라며 “애로사항을 집단화해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해결했으면 한다. 복지부가 책임지지 않으려하니 이용자도 위축이 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활동보조인들은 특히 매뉴얼의 필요성을 해결점으로 들었다. 매뉴얼에는 ▲일 시작 전 필요한 정보와 해야 할 일 목록 작성 ▲서로 쓰지 말아야할 말, 조심해야할 말 ▲이용자의 특성과 필요한 서비스 인수인계 ▲이용자가 싫어하는 것, 활동보조가 못하겠다고 생각되는 것 등이 담겨야한다는 것.

또한 활동보조인 E씨는 “정기적으로 이용자와 활보를 교체할 필요도 있는 것 같다”며 “일정기간의 조정기간도 있으면 좋겠다. 일정기간 일하고 계속할지, 교체할지 정하면 좋을 것 같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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