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가 남긴 유서의 일부. ⓒ박종태

“죽는 한이 있어도, 국민연금공단이 장애등급 판정을 하는데 있어 서류만 보고 결정하는 잘 못된 관행을 대법원에서 판결 내려(바로잡아) 주시고, 대통령께도 부탁드립니다.”

국민연금공단의 장애등급 재판정에서 등급 외 판정을 받은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모(39세)씨의 유서에는 울분과 고통의 흔적이 가득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박 씨는 지난 3일 오후 5시 35분 경 경기도 의정부의 한 동주민센터 내에서 흉기로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사회복지 담당자에게 유서를 내밀며 ‘청와대, 의정부경찰서장, 의정부시장에게 보낼 것’이라며 3부를 복사해 달라고 한 뒤였다. 119구급차에 실려 인근의 성모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오후 8시 40분 경 끝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장애등급 재판정 결과가 참사를 부른 거다. 박 씨는 간질장애 4급을 유지하다가 지난 5월 고착화된 장애를 제외하고 3년 주기로 받아야 하는 재판정을 받은 결과 등급 외 판정을 받았다.

박 씨의 ‘장애등급 결정서’에 따르면 이유는 제출된 최근 1년 동안의 의무기록상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발작 증상이 1번 밖에 없어 간질장애 최저등급인 5급에도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5급의 경우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월 1회 이상 중증발작 또는 2회 이상 경증발작을 포함해 연 3회 이상의 발작이 있는 상태가 해당된다.

장애등급을 받지 못한 상황에 대한 박 씨의 심경은 유서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박 씨는 유서에서 “간질장애 4급으로 기초수급비를 받으면서 살았는데, 국민연금공단의 잘못된 판정 때문에 무급으로 처리되어 더 이상 싸우기도 싫고, 경기로 정신을 잃었다고 했는데 의사는 기록을 안했다”면서 “스트레스로 정신과 상담을 받을 생각도 했지만, 더 이상 살기 싫다”고 고통을 나타냈다.

이어 “서류만 보고 기록을 올리는 잘못된 관행을 고치고, 국민연금공단의 장애판정을 하는 사람들과 잘못 진료하는 의사들을 조사해 달라”고 억울함을 전했다.

5일 오전 박 씨의 빈소가 마련된 의정부 성모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서 만난 유족들은 동생을 자살로 내몬 장애등급 판정 결과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박 씨의 누나는 “간질로 약을 지금도 꾸준히 먹고 있는데 장애판정을 안 해 주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면서 4년 전부터 기초생활수급비로 생계를 이어 가고 있었는데, 장애등급을 받지 못해 수급비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아 힘들어 했을 동생 생각에 분통을 터트렸다.

또한 “두 번 다시는 이 같은 문제로 고통과 아픔을 겪어 목숨까지 끊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정부 성모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서 마련된 박씨의 빈소. ⓒ박종태

*박종태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일명 '장애인권익지킴이'로 알려져 있으며, 장애인 편의시설과 관련한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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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태(45)씨는 일명 '장애인 권익 지킴이'로 알려져 있다. 박씨는 고아로 열네살 때까지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서 자랐다. 그 이후 천주교직업훈련소에서 생활하던 중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고, 92년 프레스 기계에 손가락이 눌려 지체2급의 장애인이 됐다. 천주교 직업훈련소의 도움을 받아 직업훈련을 받고 15년정도 직장을 다니다 자신이 받은 도움을 세상에 되돌려줄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92년부터 '장애인 문제 해결사' 역할을 해왔다. 97년 경남 함안군의 복지시설 '로사의 집' 건립에서 부터 불합리하게 운영되는 각종 장애인 편의시설 및 법령 등을 개선하는데 앞장서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6월 한국일보 이달의 시민기자상, 2001년 장애인의날 안산시장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해결사'라는 별명이 결코 무색치 않을 정도로 그는 한가지 문제를 잡으면 해결이 될때까지 놓치 않는 장애인문제 해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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