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들의 언어인 수화를 국어와 동등히 여기는 (가칭)수화기본법에 대해 속히 제정돼야 한다는 장애계, 전문가 등의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졌다. 반면, 초안에 담긴 내용에 대해선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국농아인협회 주축으로 구성된 수화기본법제정추진연대는 18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수화기본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전문가, 장애계 등의 의견을 수렴했다.

추진연대는 이날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들을 수렴해 오는 하반기 또 한번의 공청회를 가진 뒤 의원 발의를 계획하고 있다.

수화기본법 초안을 설명하고 있는 한국농아인협회 최종진 총무부장.ⓒ에이블뉴스

■수화기본법, ‘수화는 언어다’=앞서 농아인협회는 지난 5일 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가칭)한국수화기본법 초안을 공개했으며, 수화를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대한민국 공용어로서 정의를 하고 있다.

초안 내용에는 수화통역을 제공받을 권리와 수화로 교육받을 권리 등 뿐 아니라, ▲5년 중장기기본계획 수립 ▲실태조사 실시 ▲수화책임관 지정 ▲교과용 교재 편찬 ▲수화 연구소 설치 ▲농학교 교사 소정의 자격 부여 ▲수어의 날 지정 ▲민간단체 예산 지원 등도 함께 명시돼 있다.

이날 초안 발표를 한 농아인협회 최종진 총무부장은 “이미 2008 장애인 인권 선언문을 통해 수화를 공식언어로 인정하라는 요구가 있었다. 장애인권리협약에도 수화의 사용을 인정하고 도모할 것으로 권고하고 있다”며 “뉴질랜드는 수화언어법을 제정했고, 헝가리,핀란드, 체코 등에서는 법적으로 언어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 등에서도 수화를 매개언어로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 부장은 “언어 없이 문화가 있을 수 없고, 언어와 문화는 민족으로서의 단위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 요인이 된다”며 “농아인이 당당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 위해서는 수화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의 공식언어임이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한국수화기본법 초안에 토론자들도 ‘수화는 언어다’가 인정돼야 한다면서, 속히 법 제정이 될 수 있길 기원했다.

중랑구 수화통역센터 김정환 센터장은 최근 한 농아인의 수화로 피해 사례를 설명하며, 법 제정을 통해 농아인의 권리가 확보되야 함을 피력했다.

김 센터장은 “며칠 전 농인 한 사람이 직장에서 이유 없이 해고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자식들은 어찌하랴 큰 고민을 하며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셨다”며 “그 뒤 주인에게 소주병을 한 손에 쥐고 한 손으로 한 병 더 달라고 주인에게 주문하는 과정에서 주인이 소동을 벌인 줄 알고 경찰에 신고했다. 농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100만원의 벌금을 내게 됐고, 나중 경찰에 알아보니, 그 농인이 2시간동안 경찰 순찰차를 막고 소동을 벌였다. 억지로 잡아가는 게 억울해서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라며 “소통이 잘 이뤄졌다면 이런 사례는 없었을 것이다. 법을 통해 인간다운 권리와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은 장차법 모니터링 내용을 설명하며 “통합공교육 학교에 모니터링을 하러가면 청각장애학생들이 수화를 모르고, 소통에도 힘들어하고 있다. 학습을 따라가기 벅차하고, 자신을 장애인으로 인정하기 힘들어하고 있었다”면서 “농아인들의 의사소통 어려움을 이제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수화를 하나의 언어로 인정되는 법의 제정은 이제 청각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도 수화를 배우고 소통을 하기 위한 문화로 만들어야 한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이라고 덧붙였다.

수화기본법 초안을 지적하고 있는 나사렛대학교 김칠관 교수.ⓒ에이블뉴스

■“수화기본법, 고려할 점도 있어”=반면, 법안 내용에 대한 아쉬운 점도 있었다.

나사렛대학교 김칠관 교수는 초안을 들며 ▲수화 책임관 개인이 아닌 담당부서 지정 ▲수화연구소 관련 공공기관 정확히 명시 ▲수화심의회 기본계획, 기본시책 바탕으로 사항 검토 ▲실태조사 중 수화능력 불분명 등을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용어에 문제에 있어서도 수화 관련법이므로, 당연히 수화를 이르는 고유명이 들어가야 한다. 수화와 수어는 택일돼야 한다. 농아인에 대한 용어도 농인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오스트리아에서는 헌법에서 수화를 독자언어로 인정을 하고 있다. 법 제정을 통해 농인들의 권리가 신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립국어원 조남호 실장은 “일단 법 제정이 필요하다. 미흡하거나 여건의 변화로 추가로 담을 수 있는 내용은 이후 개정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며 “기본계획에 포함될 내용이 10가지, 심의회에서 심의사항이 5가지다. 명시가 되면 강제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추진의 효과가 있지만 제약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 추상적인 표현으로 가다듬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별도로 수화기본법 발의를 추진 중인 장애인정보문화누리 김철환 활동가는 “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청각장애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의사소통은 ‘말’로 나타났다. ‘수화’는 4.6%에 지나지 않는다. 이 상황을 감안해 법률 제정의 당위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면서 “당사자의 욕구 반영을 충분히 해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본다면 권리적인 측면이 취약하다. 법에서 보완돼야 한다”며 “일본 법안 보면, 교육에서 아동기부터 수화를 강조하고 있다.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이다. 초안에도 관련 문구가 있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 수화를 교육받을 권리 바라본다면, 구체적으로 명시할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아쉬운 점은 법률 제정 과정에서 연대의 정신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청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을 회원으로 둔 단체는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 밖에 없다”며 “수화언어권공대위나 농아인협회가 지금이라도 연대의 정신으로 법률을 만들어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강미영 연구사는 “한국수화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야 하는 문제도 있지만 수화사용을 장려하고, 보호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기반 마련도 중요한 문제”라며 “문체부 주도로 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은 복지와 인권 차원의 정책을 넘어 수화를 한국의 언어 및 문화적 유산의 중요한 요소로 인정하고 가겠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강 연구사는 “현재 문체부는 한국수화기본법안을 준비중에 있으며, 오는 9월 공청회를 통해 한번 더 검토해서 하반기 발의를 앞두고 있다”며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초안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을 드릴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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