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서 ‘자폐(自閉)’란 '스스로를 닫는다.' 라는 말이다. 그러나 자폐증세를 살펴보면 스스로 닫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사회적, 언어적으로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이해 능력의 저하로 자기 자신만을 향해 행동하고 있다. 그래서 자폐증은 대인관계가 잘 안 되고 의사소통이 안 되며 타인과 어울리는 행동을 잘 하지 못한다. 우리말 자폐증을 나타내는 영어의 'Autism'은 '자아'라는 희랍어의 'autos'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하얀거짓말’의 강정우와 서은영. ⓒMBC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법 제2조 장애인의 정의에서 그동안 발달성장애인라고 하다가 법이 개정되어 장애인복지법 및 시행령(2008. 12. 31) 제2조 장애인의 종류 및 기준의 별표 1-7에서 ‘자폐성장애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복지법상의 자폐성장애인이란 ‘소아기 자폐증, 비전형적 자폐증에 따른 언어, 신체표현, 자기조절, 사회적응 기능 및 능력의 장애로 인하여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데 이를 담당의사가 장애등급판정기준에 의거하여 1급, 2급, 3급으로 판정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장애인은 그 원인을 모른 채 결과론적 증상만 가지고 장애를 진단 또는 판정하고 있으며 자폐성장애 역시 그 원인은 알지 못하고 결과에만 전전긍긍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자폐스펙트럼장애(자폐증)의 원인은 학습과 기억에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진 EIF4E 유전자의 결함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자폐증 치료에 새로운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연합뉴스 2009-06-27)

‘미국에서는 자폐성장애 아동과 관련된 치료 종류만 천 가지에 가까우며 자폐와 관련된 식이 보조식품 등 건강보조식품의 판촉이 눈살을 찌푸릴 정도이다. 무엇보다 자폐성장애의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최근에는 자폐성장애 아동의 치료에 오랫동안 사용되어 처방되어 왔던 항우울제 셀렉사(CELEXA)의 부작용을 알려주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어 장애아동 부모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에이블뉴스 2009-06-03)

‘자폐증은 어머니의 항체가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존스홉킨스 아동병원의 하비 싱어 박사는 임신 중 어머니의 항체가 태반을 타고 태아에 들어가 뇌에 염증을 일으켜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쥐실험을 통해 밝혀졌다고 발표했다.’(조선일보 2009-04-27)

그럼 우리나라의 드라마 ‘하얀거짓말’에서는 자폐성장애를 어떻게 나타내고 있을까. 그동안 방영되었던 MBC 아침 드라마 ‘하얀 거짓말’은 지난 6월 10일에 끝이 났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강형우(김태현 분)는 타인과 대인관계가 잘 안 되는 자폐성장애인으로 출연하는데 강형우의 장애는 그 원인이 너무나 분명하다.

드라마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강형우의 엄마 신여사(김해숙 분)는 형우가 어렸을 때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남편은 백화점 사장으로서 둘째부인인 작은댁과 큰아들 강정우(김유석 분)와 오순도순 잘 살고 있다. 남편이 돌아보지도 않는 신여사는 삶에 지쳐 몸부림치는데 사사건건 아들 형우가 걸림돌이 된다. 그래서 신여사는 아들을 때리고 야단치며 닦달하고 이에 견디다 못한 아들 형우는 바지에다 오줌까지 지리며 어쩔 줄 몰라 하는데 그것도 모자라 신여사는 아들과 자살을 결심한다. 지난 시절 가장 많았던 방법의 하나인 연탄가스 중독으로.

‘하얀거짓말’의 강형우(김태현). ⓒMBC

신여사는 다시 살아나 강정우의 장인과 합작하여 남편을 죽이고-남편을 자살하게 만들고- 백화점을 차지하여 돈과 권력을 한손에 움켜쥔다. 강형우는 목숨만은 건졌지만 자폐성장애인이 되고 많다. 그러나 신여사는 자신이 가진 돈과 권력으로 아들 형우를 치장하여 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준다. 형우가 병원에 입원했다가 마음에 드는 간호사 서은영(신은경 분)을 원하자 신여사는 은영도 형우와 결혼을 시키고, 형우가 은영의 아들 비안이를 원하자 비안이도 형우에게 데려다 준다.

형우가 타인과 대인관계가 잘 안되기는 하지만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고, 그리고 형우는 은영의 도움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신여사가 형우의 그림 공부를 못마땅해 하자 형우는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던 어린 날의 추억들을 아프게 끄집어낸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엄마의 애증에 찌든 모진 욕설과 손찌검, 그리고 숨이 막혀오던 연탄가스 등.

신여사는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형우에게 모든 것을 해결해 주려고 했지만 형우는 알아버린 것이다. 이 세상에는 돈과 권력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형우는 말한다. “엄마, 나 조금만 사랑하지 왜 그렇게 많이 사랑했어요?”

신여사는 형우를 사랑했다. 아들 형우가 자폐증에 걸릴 만큼 멈출 수도 없고 끊을 수도 없이 너무나 지독하게 아들을 사랑했던 것이다. 아들에 대한 집착과 애착은 누가 대신 할 수도 없고 대신해서도 안 되는 ‘자식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라 불리는 비뚤어진 모성애로 얼룩진 신여사만의 사랑이었던 것이다.

결국 지독한 모성애로 인해 신여사는 죽고 대신 형우가 살아나는데 형우는 멀쩡하게 그림을 그려서 전시회를 하고 있다.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아서.

MBC 아침 드라마 ‘하얀 거짓말’은 어디까지나 드라마이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 자폐성장애 또는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원인이 분명하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연탄가스 중독이나 교통사고 등 원인이 분명한 경우도 많다. 그 많은 장애인들이 정말 드라마 속 강형우처럼 자고 일어나서 멀쩡해져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화 한도막이 생각난다. 소와 사자가 죽도록 사랑해서 결혼을 했다. 둘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을 했었다. 소는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풀을 사자에게 대접했다. 사자는 날마다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고기를 소에게 대접했다.

소와 사자는 풀과 고기가 맘에 안 들어 괴로웠지만 서로가 참았다. 그러나 참을성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어느 날 소와 사자는 대판 싸우고 헤어졌다. 소와 사자가 헤어지면서 서로에게 소리쳤다. “난 최선을 다 했어!” 그것은 최선이 아니라 최악에 불과했다. 신여사의 지독한 모성애처럼.

* 이 내용은 문화저널21(www.mhj21.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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