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추련이 지난 28일 단식농성에 돌입하기 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에이블뉴스>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이하 장추련)가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지난 28일 국가인권위원회 조영황 위원장실 앞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왜 이들은 하필이면 국가인권위를 찾았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추련이 국가인권위를 압박하고 나선 것은 국가인권위가 준비 중인 다양한 영역의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을 통해서는 장애인 차별문제를 시정하는데 역부족이라는 입장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현재 장추련은 장애인 차별의 특수성을 고려해 ‘차별금지법’과는 별도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권위 차별금지법만으로 안 된다"

장추련은 지난 28일 단식농성에 돌입하기에 앞서 국가인권위 정문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사회적 ‘차별금지법’에 담긴 시정명령제도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같은 권리구제 수단에 대해서는 우리의 장애인차별금지법안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강화된 측면이 있어, 일면 반갑고 다행스럽다. 또한 다른 영역에서의 차별금지가 법제화되는 것도 환영한다”면서도 “장애인과 관련한 차별의 영역은 전생애주기에 걸려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매우 포괄적이고 전문적이며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어, 결론적으로 재차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차별시정기구가 필요함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추련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가 무엇인지, 차별이 무엇인지, 장애인의 권리가 무엇인지, 우리 사회에 제시하는 척도가 될 수 있으나 차별금지법으로 모든 차별의 영역과 한꺼번에 다룰 경우 그 의미는 힘을 잃고 퇴색할 것이며 당사자인 장애인들은 또다시 차별 앞에 무기력하게 당하면서 살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추련은 특히 “현재 국가인권위의 기능을 고려했을 때 차별금지법만으로는 장애인차별금지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과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는 설립 필요성을 인정하라”고 국가인권위에 요구했다.

인권위, 차별금지법안 막바지 작업

현재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금지법안 마련 작업은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상태다. 지난 2월부터 학계 및 차별전문가, 인권단체, 일반 국민 등을 상대로 차별금지법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며 법안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권위는 차별금지법 최종안이 마련되면 전원위원회에 상정해 심의·의결할 예정이며, 안이 확정 되는대로 정부와 국회의 협조를 받아 본격적으로 입법을 추진해나간다는 계획이다.

국가인권위가 마련한 차별금지법안은 고용, 재화·용역·교통수단·상업시설·토지·주거시설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법령과 정책의 집행에서의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 등의 4개의 영역에서 성별, 장애, 나이, 학력 등의 사유로 인해 발생하는 차별에 대해 금지 및 시정을 하도록 하고 있다. 차별 사유는 장애를 포함해 20개로 명시하고 있다.

"독립적인 법 있어야 장애인차별 해소"

장애인계는 이처럼 국가인권위가 보편적인 차별 시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애인 차별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한계를 지닌다고 지적한다.

장추련 배융호 상임집행위원은 지난 28일 국가인권위가 개최한 차별금지법안 공청회에 참석해 “인권위의 차별금지법안은 보편적인 차별을 금지하기 위한 법안이다. 즉, 장애인 차별을 포함한 다양한 차별을 기본적으로 금지하기 위한 법률이며, 따라서 인권위의 차별금지의 내용과 차별의 영역은 보편성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며 “보편성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인권위의 차별금지법은 결국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장애인 차별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포괄적으로 구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가 개최한 차별금지법안 공청회. <에이블뉴스>

배 집행위원은 “인권위의 차별금지법안이 도입하고 있는 시정명령,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 권리구제측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장애인차별금지에 있어서는 명확한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며 “이 문제는 인권위의 차별금지법과는 별개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될 때 비로소 해결이 가능할 수 있는 문제”라고 밝혔다.

장애인차별금지법안의 경우 고용, 교육, 건축물 및 시설의 이용과 접근, 이동 및 교통수단의 이용, 의사소통 및 정보접근권, 재화와 용역의 제공 및 이용, 문화·예술, 체육, 사법·행정 절차 및 서비스와 참정권, 모·부성권, 성, 가족·가정·시설, 건강권, 폭력 등 14개 생활영역에서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차별에 대해 금지하고 있다. 이는 장애인이 경험하는 차별이 매우 일상적이고 폭넓은 영역에서 일어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장애인계가 독립적인 장애인차별시정기구를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에서다. 국가인권위 차별금지법안의 한계가 보편적 차별을 금지해야 하는 국가인권위의 역할에서 발생한다는 지적과 마찬가지로 복잡·다양한 장애인 차별 문제를 담당하기에는 국가인권위의 역할 상 한계가 있다는 것.

배융호 집행위원은 “장애인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차별을 구체적이고 전문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별도의 차별시정기구가 필요하다”며 “비록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하더라도 독립적인 장애인차별시정기구가 구성되지 않는다면, 장애인차별금지법은 허울과 명분뿐인 법률이 되고 말 것”이라고 밝혔다.

배 집행위원은 “장애인차별의 문제는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이 법률을 실제로 실효성 있게 실행시킬 수 있는 독립적인 장애인차별시정기구를 통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애인계 밖에서도 “인권위 우려스럽다”

차별금지법안과 차별시정기구 일원화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우려는 장애인계 밖에서도 제기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김태현 정책실장은 “장애인단체들이 추진하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장기적으로는 인권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차별금지법과 통합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면서도 “그러나 장애인의 차별과 관련해서는 장애인 당사자의 수용성, 전문성과 실효성을 갖추기 위한 노력 등이 현재로서는 보다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고 밝혔다.

김 정책실장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장애인단체의 입장에서는 위원장을 장애인으로 하고 위원의 상당수를 장애인으로 하는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를 보다 선호하고 있고, 일반적 인권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인권위원회가 과연 장애인차별 문제를 제대로 접근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김 정책실장은 “당장의 통합이 불가능하다면, 성차별처럼 당분간의 독자적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시행해보고 난 후 통합 여부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며 “아무쪼록 양자간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수용가능성을 분명히 하여 우리 사회의 차별과 소외를 해소하고 연대로 나아가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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