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장애인 참정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모습. 이날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7개단체로 구성된 ‘장애인참정권 보장을 위한 대응팀’이 기자회견을 개최했다.ⓒ에이블뉴스

지난 3월 9일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도 장애인 투표권이 어김없이 침해됐다. 법원의 강제조정에 따라 발달장애인도 투표보조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매뉴얼까지 변경했지만, 전국 곳곳에서 가족에 의한 투표보조는 거부됐다. 그런가 하면 여전히 접근이 어려운 투표소로 인해 정당한 편의를 제공받지 못한 차별사례도 속출됐다.

13일 오전 11시 30분,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장애인 참정권이 보장돼야 한다”면서 장애인 당사자는 물론 변호사까지 경기 과천시에 위치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까지 직접 달려왔다.

이날 항의방문 기자회견 후, 중앙선관위에 재발 방지 요구를 위해 이달 안까지 면담을 요청했다. 중앙선관위의 면담에 따라 5월 10일 유권자의 날에 국가인권위원회에 집단진정 제기도 예고된 상태다. 이번 항의방문으로 장애인 참정권 침해 문제를 뿌리 뽑겠다는 각오다.

‘선관위는 장애인을 무시하지 말아라’ 피켓을 든 장애인활동가 모습.ⓒ에이블뉴스

■발달장애인 투표보조 거부 ‘아수라장’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는 이번 20대 대선에서 총 63건의 차별사례를 제보받았다. 먼저 ‘발달장애인 투표보조 차별’이 총 5건이다.

대선을 앞두고 2월 24일 법원으로부터 발달장애인에 대한 투표보조 지원을 인정받았지만, 현장에서는 아수라장이었던 것. 중앙선관위 또한 매뉴얼상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는 장애인에 발달장애인도 포함해 안내했지만. 결국 사표까지 발생했다.

경남 마산시에 사는 발달장애인 A씨는 부모와 함께 투표하러 갔지만, ‘발달장애인이어도 손이 불편해야 한다’며 투표보조를 받을 수 없다고 거부당했다. 부산시 대연5동 사전투표소에서는 발달장애인 B씨에게 ‘눈도 보이고 걸어 다니기 때문에 (투표보조가)안 된다’고 했다.

이미 공직선거법상 지원이 명시된 시각 및 신체장애인에 대한 투표보조 조차 거부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서울시 송파구 장지동 사전투표소를 찾은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 C씨는 1층 임시기표소에서 활동지원사로부터 투표보조를 받으려고 했지만, 투표소 관계자로부터 거부당했다. 경기도 용인시 동백2동 사전투표소를 찾은 시각장애인 D씨도 활동지원사로부터 투표보조를 받으려 했지만 역시 관계자에게 거부당했다.

기자회견 후 면담신청서 전달을 위해 중앙선관위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에이블뉴스

■정당한 편의제공·휠체어 편의도 ‘한숨’

선거관계자의 장애에 대한 몰이해로 정당한 편의제공이 되지 않은 사례도 속출했다. 부산시 개금제3동 사전투표소를 찾은 뇌병변장애인 E씨는 밴드형 기표용구를 요청했지만, ‘준비돼 있지 않다’며 주지 않았다.

서울시 강동구 천호2동 사전투표소를 찾은 뇌병변장애인 F씨는 ‘투표 관계자들이 빨리 기표하라고 보채고, 투표함에 스스로 넣을 수 있는데도 그냥 가져가서 대신 넣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여전히 휠체어가 접근되지 않은 투표소 편의시설 문제도 어김없이 접수됐다. 광주광역시 사전투표소를 찾은 뇌병변장애인 G씨는 투표소가 3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옆 도로로 3층에 진입할 수 있지만, 지대가 높아 낙하사고가 일어날까 봐 접근이 어려웠다고 했다.

경남 진주시 가호동 제4투표소를 찾은 뇌병변장애인 H씨 또한 투표소 입구에 계단 3개가 있는 반면, 경사로가 설치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임시기표소에서 투표했지만, 투표용지를 직접 투표함에 넣지 못한 찜찜한 마음으로 돌아서야 했다.

기자회견 발언자들.(왼쪽부터)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수정 서울지부장, 사단법인 두루 최초록 변호사, 한국장애인자립생활협의회 최용기 회장.ⓒ에이블뉴스

■“15년 전에도 왔는데…비장애인과 함께 투표하고 싶다”

이날 중앙선관위를 찾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7개 단체로 구성된 ‘장애인참정권 보장을 위한 대응팀’은 이번 대선에서의 참정권 침해 부분을 짚으며,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전까지 재발방지대책을 세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수정 서울지부장은 "법원의 임시조치로 투표장 내 혼란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부모연대 지회를 통해 수시로 접수됐다“면서 “선관위 지침을 전달받은 바 없다고 모르쇠하는 직원들과 막무가내로 동반투표는 안 된다고 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회장들이 선거투표소를 쫓아가서 싸움을 벌이기도 했고, 소통을 통해 투표 과정이 진행되기도 했다”고 투표장 내 혼란스러웠던 현실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발달장애인 의사소통이 안 된다고 해서 투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국가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의사소통이 안 된다면 가능하도록 지원하면 되고, 기표할 수 있는 보조인을 동반해야 한다“면서 ”발달장애인이라고 투표할 권리를 포기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 방기"라고 비판했다.

사단법인 두루 최초록 변호사는 " 선관위에서는 법을 준수하고 있고, 차별이 없다고 하지만, 이는 자의적으로 해석한 법을 준수한 것이다. 실제로 법을 위반하고 있고 인권위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면서 "공직선거법은 발달장애인을 선거 투표보조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지 않다. 단지, 시각, 신체장애인이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장애유형 불문하고 보조가 필요한 장애인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법의 취지에 맞다"고 설명했다.

‘투표보조 방해 선관위를 규탄한다’ 종이 피켓을 든 중증장애인.ⓒ에이블뉴스

한국장애인자립생활협의회 최용기 회장은 15년전에도 장애인 참정권을 보장받지 못해 중앙선관위에 면담 요청한 기억을 떠올리며, 현재까지 변화가 없어 다시 선관위로 찾아올 수밖에 없는 현실을 답답해했다.

최 회장은 "15년전 당시 엘리베이터 없는 지하에 투표소를 설치해놔서 선관위로 찾아와 면담요청을 한 기억이 있는데, 현재도 휠체어 탄 장애인은 주민들과 투표하지 못하고 따로 투표소를 만들어 넣고 혼자 하라고 한다.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분리된 투표가 아닌 함께 어울리면서 한 공간에서 나의 투표권을 행사하고 싶다"면서 "더이상 이렇게 장애인 참정권이 침해되는 안타까운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기자회견 후 면담신청서를 중앙선관위 관계자에게 전달하고 있다.ⓒ에이블뉴스

13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장애인 참정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모습. 이날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7개단체로 구성된 ‘장애인참정권 보장을 위한 대응팀’이 기자회견을 개최했다.ⓒ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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