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4개 단체는 27일 헌법재판소의 장애인 선거권 침해 헌법소원 심판 청구 기각 결정 뒤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헌법재판소가 신체에 장애가 있는 선거인에 대해 투표보조인이 가족이 아닌 경우 반드시 2인을 동반하도록 한 공직선거법 조항이 장애인 참정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제기한 장애인당사자의 헌법소원 심판 청구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리자, 장애계가 분통을 터트리며 투쟁의 목소리를 높였다.

헌재는 27일 재판관 6:3 의견으로 신체에 장애가 있는 선거인에 대해 투표보조인이 가족이 아닌 경우 반드시 2인을 동반하도록 한 공직선거법 제157조 제6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 정명호 씨가 제기한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중증 뇌병변장애인인 정 씨는 제19대 대통령선거일인 지난 2017년 5월 9일 인천 계양구 계산3동 제4투표소에서 활동보조인 1인만을 동반해 기표소에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공직선거법 제157조 제6항 후단에서 투표보조인이 가족이 아닌 경우 2인을 동반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투표소에 있던 투표관리관에 의해 제지당했고, 결국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이에 정 씨는 “공직선거법 제157조 제6항 후단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인천광역시 선거관리위원회가 활동보조인 1인만을 동반해 기표소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제지한 행위가 선거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같은 해 8월 5일 희망을 만드는 법(김재왕, 최현정 변호사)을 법률대리인으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결정문을 통해 “비밀선거의 원칙이 자유선거의 원칙을 보장하는 전제조건으로 기능하고 있고, 민주주의 아래에서 선거권이 지니는 중요한 의미를 고려, 심판대상조항(공직선거법 제157조 제6항 후단)과 같이 비밀선거의 원칙에 대한 예외를 정하는 것은 필요하고 불가피한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심판대상조항이 신체에 장애가 있는 선거인이 실질적으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투표보조인의 부당한 영향을 방지해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중대한 공익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다”면서 “중증장애인의 선거권 행사를 대리투표로 악용하는 선거범죄를 예방하면서 투표보조 제도보다 손쉽게 활용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여 심판대상조항이 불가피하게 비밀선거의 원칙에 대한 예외를 정하는 것이 정당화 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재판관 3인은 “선거권이 정치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점을 고려해 신체에 장애가 있는 선거인이 투표 내용을 공개할 범위를 스스로 정하고, 궁극적으로 스스로 기표행위를 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하므로 심판대상조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27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대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문애린 공동대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한 정명호 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4개 단체는 헌재의 장애인 선거권 침해 헌법소원 심판 청구에 대한 선고 뒤 기자회견을 갖고, 기각에 대해 분통을 터트렸다.

이 자리에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문애린 공동대표는 “근본적으로 장애인이 참정권을 행사하는데 있어 차별을 받고 있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대한민국 헌법은 전혀 성장하지 않고 있다”고 헌법소원 기각을 강하게 비판한 뒤 “고리타분한 법 내용으로 재판관들이 논의하니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리 없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더욱 많아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추련 박김영희 대표는 “헌법소원 결과를 지켜보며 장애인의 권리는 여전히 침해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처음 정명호 동지가 본인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투표 할 때 당연히 보장돼야 하는 비밀이 보장돼야 한다. 그런데 이 원칙이 지켜지기 위해 제공돼야 하는 편의 지원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헌재와 재판관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매우 큰 실망을 했다”며 투쟁으로 쟁취해 나갈 것을 강조했다.

청구인인 정 씨는 “저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투표를 하고 싶었는데, 성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이 분통이 터져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면서 “결국 기각 경정이 됐다. 결과가 어찌 됐던 장애인도 국민에 한사람이다. 이를 계기로 (장애인의 참정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바뀌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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