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중증·정신장애인 시설생활인 실태조사 결과보고 및 정책토론회’ 전경. ⓒ에이블뉴스

보건복지부는 반복되는 인권침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장애인거주시설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태조사는 내용이 거주시설 장애인의 신체 자유영역에 국한돼 있어 인권보장 수준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한국장애학회는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사업의 일환으로 전국 장애인거주시설 233개소 중 45개소, 전국 정신요양시설 59개소 중 30개소 총 75개소의 발달 및 정신장애인 거주인 1500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다.

조사는 거주인의 입소(입원)형태·사유, 거주시설 환경, 의료서비스 제공 수준, 법률행위 권리, 개인의 자유 및 안전권리 보장, 처벌·폭력·학대 유무 등 전반적인 인권실태에 대한 설문으로 진행됐다.

한국장애학회와 국가인권위원회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중증·정신장애인 시설생활인 실태조사 결과보고 및 정책토론회’를 갖고, 정책대안을 발표하고 의견을 수렴했다.

(왼쪽부터)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김정하 상임활동가,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용표 교수,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조한진 교수가 발제를 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중증장애인거주시설 10명중 6.7명 비자의 입소=발제자로 나선 장애와발바닥행동 김정하 상임활동가는 조사결과 설문대상자 중 중증장애인거주시설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입소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67.9%에 달했다고 밝혔다.

본인의 의사로 중증장애인거주시설에 입소했다고 경위를 밝힌 응답자는 14.3%에 그쳤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입소했다는 응답자의 44.4%는 ‘가족들이 나를 돌볼 수 있는 여력이 없어서’라고 밝혔다. ‘잘 모르겠음’(21.5%), ‘다른 시설에서 살고 있었는데 이 시설로 보내서’(12.9%)가 뒤를 이었다.

특히 응답자의 21.3%는 시설입소 당시 가전 설명을 제공받지 못했고 30.1%는 입소당시 계약서에 직접 서명을 하지 않았다. 20.1%는 시설입소 당시 개인정보가 관리되지 못했으며 22.3%는 시설입소 당시 원하는 서비스 요청기회를 제공받지 못했다.

이 같은 결과는 중증장애인이 시설입소 과정에서 비자발적 또는 강제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입을 하는 근거라는 게 이 상임활동가의 설명이다.

1개 숙소에서 3명 내지 5명이 거주하는 비율은 응답자의 52.4%였고, 6명 이상 거주하는 비율도 36.1%였다. 다른 사람이 안 보이는 곳에서 옷을 갈아입을 수 없다고 말한 응답자는 38.3%였고, 자신이 원할 때 자유롭게 목욕하기 어렵다고 대답한 사람은 38.3%이었다.

몸이 아파도 의사진료를 받지 못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15.3%였고, 시설 거주인 중 매일 약은 먹는 비율은 61.9%로 나타났다. 특히 어떤 약인지도 모른 채 먹고 있거나(21.4%), 약의 부작용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응답자(34.5%)도 상당했다.

특히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대우, 처벌·폭력·학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14.9%가 무시를 당했다고 응답했고, 언어폭력(18.4%), 신체폭력(14%), 감금(8.1%), 강제투약(6.7%), 강제노동(9.1%) 등과 같은 인권침해도 있었다.

전체 응답자 중 18%는 퇴소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고, 25.9%는 퇴소의사를 표시하도 퇴소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퇴소결정은 본인이 아닌 시설장(28.8%)나 가족(25.2%)이 결정할 수 있다고 알고 있었다.

시설에 나가 살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은 42.6%이었고 이 중 즉시 나가서 살고 싶다고 답한 비율은 54.8%였다.

■정신요양시설 거주인 10명 중 3.4명 퇴소권리 알지 못해=정신요양시설 부문 발제자로 나선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용표 교수는 응답자 중 34.5%는 본인이 정신요양시설에서 퇴소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51.5%는 지역사회로부터 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안내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또한 퇴소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을 본인이 아닌 가족이라고 50.2%가 인식하고 있었다. 본인이 퇴소의사를 표현해도 응답자의 50.2%는 가족이 동의해 주지 않아 퇴소하기 어려울 것이라 답했다.

입소경위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62.2%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입소를했다고 답했고, 55.7%는 비자발적 입소사유로 ‘가족들이 나를 돌볼 수 있는 여력이 없어서’라고 응답했다. 입소시기는 20년 이상(1997년 이전 입소)이 36.2%로 가장 많았고, 10년이상 20년 미만(1998~2007년 입소)이 29.2%, 5년 미만(2013~2017년 입소)가 14.5%로 뒤를 이었다.

몸이 아파도 의사로부터 진료를 받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15.3%였다. 자신이 원할 때 정신과 의사 또는 정신건강 전문가와 상담을 할 수 없다고 응답한 비율도 35.4%에 달했다.

매일 복용하는 약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41.9%였지만 조사에 참여한 의료진이 개인의 의료기록을 검토한 결과 99.2%가 정신과적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다. 응답자의 42.3%는 현재 먹는 약에 대한 내용과 부작용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했고, 18.1%는 약의 부작용이 있다고 호소해도 신속한 조치를 제공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특히 전체 응답자 중 24.7%가 폭력·학대·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답했고, 21.7%는 강제 격리조치, 12.4%는 강박, 13%는 강제노동과 같은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어려움이 있음에도 54.7%는 누군가에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건강실태조사에서는 입소자들 상당수가 적정체중을 유지하지 못해 저체중 상태에 놓여있었다. 비만 유병률은 32.6%로 19세 이상 일반인구의 34.8%와 유사한 비율을 보였지만, 저체중 유병률은 10.9%로 일반인구의 4.5%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비율을 보였다.

■시설입소 시 본인 의사확인 ‘필수’ 법 개정 등 정책제안=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조한진 교수는 정책제언 발제자로 나서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정신요양시설 실태조사에서 나타난 문제점에 대해 정책제언을 했다.

먼저 중증장애인거주시설 비자발적 입소문제를 거주이전 및 신체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거주시설에 입소하는 것을 용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주인 본인의 입소의사를 반드시 확인하는 절차, 본인의 의사에 따라 언제든 퇴소할 수 있음을 고지하는 등 장애인복지법을 개정해 입·퇴소과정에서의 기존 절차를 개선해야한다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또한 시설거주인에 대한 시설 퇴소방법·절차, 퇴소 후 이용가능한 서비스 등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는 정책제언도 했다. 설문조사 결과 퇴소를 희망하는 거주인의 비율이 4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난 반면, 일부 거주인들은 퇴소가 가능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기 때문인 것.

거주시설 거주인을 대상으로 퇴소안내 자료를 배포하고 퇴소와 관련된 포스터, 안내문 등을 거주인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에 부착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여기에 탈시설을 경험한 장애인을 강사로 초빙해 퇴소 이후의 삶을 교육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방법도 강조했다.

정신요양시설의 강제입소는 정신건강복지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 만큼 전면 재검토되고 궁극적으로는 폐지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신요양시설의 역할은 지역사회 내 생활을 지원하는 정신재활시설로 하도록 했고, 정신요양시설에 입소한 자들이 계속 입소 여부를 심사받아 입소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만 남기고, 정신요양시설이 직접 강제입소 시설로 활용하는 현행 제도는 폐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실태조사 결과 시설 내 각종 인권침해에 노출된 비율이 상당하고 인권침해 사건 발생 시에도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만큼 인권위의 적극적 대처도 주문했다. 인권침해 발생이 의심되는 시설에 대해 인권위 차원에서 직권조사를 하고 해당 시설에 대해 시정권고를 하는 등 적극적 권리구제 조치를 취해야한다는 것이다.

또한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을 강화하는 방법도 제시했다. 체계적인 인권교육을 위해 총론적인 인권교재부터 장애 유형과 장애인의 생애주기에 따른 적절한 교재들이 세부적으로 제작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왼쪽부터)장애인거주시설 인권지킴이지원센터 강희설 센터장, 사단법인 사람사랑 주효경 이사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장기입소자 규제방법 등 토론자들의 제언=장애인거주시설 인권지킴이지원센터 강희설 센터장은 “발제자는 장애인거주시설과 정신요양시설의 입소부터 퇴소에 존재하는 문제점에 대해 정책제언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장기입소자에 관한 것”이라면서 “이용계약을 1년 단위 등으로 체결하고 적격성 심사를 택하면 장기입소는 어느 정도 규제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또한 “이처럼 이용계약을 체결하면 퇴소도 상당히 간단하게 할 수 있게 된다. 서구에서도 이용계약을 1년 단위로 맺는 사례가 많았다”면서 “일시보호와 같은 계약은 1주일 단위로 할 수 있지만 이를 제외한 입소는 1년 단위 등으로 재계약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피력했다.

마지막으로 강 센터장은 “퇴소를 해 자립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해 개조를 해야하는데 일반 임대주택에서는 힘들다”면서 “시설에서 퇴소하는 과정에서 이 부분을 어떻게 지원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단법인 사람사랑 주효경 이사장은 “격리, 강박은 복지부의 지침에 따라 의사 지시로 해야하는데 정신의료기관은 (지키지) 못한다. (주무부처 역시) 관리감독을 철저히 못하고 있다”면서 “WHO는 격리, 강박에 관한 지침을 폐지하라고 하는 추세다. 오래된 지침이 현실과 맞지 않으면 수정을 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이어 “종사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한다고 인권의식이 강화된다는데 의구심이 든다. 담당 공무원의 인권감수성이 높아져야 시설에 대한 강화가 이뤄진다 본다”면서 “인권교육은 종사자 뿐만 아니라 관리자(원장), 감독 공무원까지 확대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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