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와 ‘조센징’

우리 농인들에게 ‘벙어리’라는 표현이 주는 기분나쁨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기분나쁨은 그것이 본래 무슨 뜻을 지녔는가와 상관없다. 굳이 비유하자면 이 기분나쁨의 표현은 일본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대상으로 ‘조센징’이라고 지칭하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사람으로부터 조센징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반사적으로 기어나오는 기분나쁨이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것처럼, 비장애인으로부터 벙어리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농인 당사자가 느끼는 기분나쁨도 그러하다.

아니, 오히려 농인 당사자들이 느끼는 기분나쁨은 그것을 초월한다.

조센징이라는 단어는 고작 일제 36년에 불과했지만, 벙어리라는 단어는 수천년동안 농인들을 멸시하며 사용된 말이기 때문이다. 민족의 뼈에 사무치도록 한이 된 것이 조센징이라면 농인들의 영혼에 사무치도록 한이 된 단어가 바로 벙어리라는 단어다.

‘꿀 먹은 벙어리’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나라는 잊을 만하면 높으신 분들의 입에서 “벙어리”라는 단어가 삽입된 관용구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예를 들어, 바로 어제 국민의 힘 김은혜 의원이 발언한 “꿀 먹은 벙어리”와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이것이 단순한 속담에 불과하므로 과민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속담이 내포하는 뜻은 그렇지 않다.

본래, ‘꿀 먹은 벙어리’라는 속담은 맛있는 꿀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맛을 음성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농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바보처럼 비유하는 것으로써, 농인 스스로는 자기주장도 의견도 이야기할 수 없다는 존재를 가정한 속담이다.

‘벙어리’라는 단어를 가지고 있는 속담은 전부 다 그런 식이다. 벙어리 그 단어 자체만으로도 기분 나쁜 표현임이 명백하지만, 그것을 바꾸어서 “꿀 먹은 농인”처럼 표현해도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꿀, 의원님 많이 드시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그러니 어찌 답답하지 않겠는가.

이 나라에서는 높으신 의원님들부터 일개 국민들까지 비하적 단어가 내포된 비하적인 속담을 잊을 만하면 사용하고 잊을 만하면 사용해서 자꾸‘농인들을 꿀 먹은 존재로 만들어주니’ 우리 농인들 입장에서는 이제 거의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벙어리라는 단어와 속담에 지친 우리 농인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 꿀, 우리는 질려서 못먹겠으니, 의원님이나 많이 드십시오.’

조만간, 농아인협회에서 꿀 한통 사다가 오늘의 주인공인 김은혜 의원님에게 반품할까 한다.

의원님 걱정 마십시오. 좋은 것으로 보내드릴테니까요.

2021년 03월 22일

사단법인 한국농아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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