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날수록 강화되어야 할 장애인 탈시설 정책이 오히려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앙정부의 별 다른 법적‧제도적 지원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앞장서 탈시설 추진계획을 수립하여 이행해 왔던 대구시가 조만간 발표될 제2차 탈시설추진계획 내에 돌연 탈시설 희망자에 대한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대상자 선정 심의 구조를 두고 우선순위를 설정하겠다는 계획을 포함한 것으로 확인됐다.

즉, 장애인이 탈시설이 필요하거나 본인이 희망한다고 하더라도 예산 등의 이유로 대구시의 탈시설 자립지원 협의체에서 이를 제한‧유예‧거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는 장애인 탈시설을 심사하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이며, 누가 어떤 잣대로도 심사할 권한이 없음을 분명히 지적한다. 대구시는 탈시설을 장애인시설의 가석방 제도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대상자 선정 심의와 우선순위 설정이라는 내용은 대구시가 제2차 탈시설추진계획 수립을 위하여 2019년 7월부터 1년 6개월 간 운영한 장애인 자립지원 협의체 및 실무협의체에서 제안된 바 없고, 위원회 의견이 반영되어 2020년 12월 최종 회람된 안에서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다 2021년 1월 발표를 앞두고 권영진 대구시장 결재과정에서 갑자기 추가되었다.

대구시는 연 2회 운영하는 자문기구인 민관협의체(탈시설 자립지원 협의체)를 통해 예산 범위 내에서‘탈시설 대상자 선정 심의’를 하여 탈시설 지원여부를 결정하고, ‘탈시설 대상자 선정 우선순위 설정’을 하여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UN장애인권리협약 및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의 탈시설 정책 권고는 장애유형과 장애정도에 관계없이 탈시설은 보장되어야 할 권리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코로나19 감염병 대유행 위기에서 집단수용시설의 집단 감염 위험성은 긴급하고 근본적인 대책으로서 탈시설 정책의 가속화와 강화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임에도 오히려 대구시는 마치 ‘가석방 제도’와 같이 ‘탈시설 가능자’와 ‘탈시설 불가능자’를 구분하고 행정적으로 취사선택하려는 발상을 드러냈다.

이 계획의 더욱 문제는 중증의 장애인이거나 나이가 많은 장애인일수록, 즉 행정적‧예산적 지원이 더 많이 필요한 장애인일수록 탈시설 지원을 받지 못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집단수용시설에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의 장애인이 발달장애인과 중증장애인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단순한 대상자 선정의 문제가 아니라 제2차 계획 자체의 실효성 문제이기도 하다.

대구시는 이미 제1차 추진계획에 따라 탈시설 이후 거주하게 되는 자립생활주택의 입주자 선정의 권한을 갖고 있다. 시설을 나와 자립생활주택에 입주하고자 하는 장애인이 신청을 하면 대구시가 이미 선정하고 있는 구조이다. 제2차 계획에서 대상자 선정과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의미는 이러한 선별구조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며 행정적 판단을 하겠다는 의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더욱이 그 선별하는 위치를 대구시가 아닌 민관협의체의 기능으로 둠으로써 대구시의 직접적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마저 읽힌다. 형식상 민관협의체에서 탈시설 가능자를 선별하고 선정하겠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심각한 인권침해다.

탈시설 가능/불가능을 구분하는 일은 현재 탈시설 정책 추세와도 맞지 않는 방향이다. 2013년부터 전국 최초로 탈시설 추진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해 오고 있는 서울시는 2018년 제2차 추진계획에서부터 오히려 자립생활주택 입주자 선정구조 자체도 폐지하고 선정과정을 별도로 두지 않고 있으며, 서울시복지재단을 통해 신청자의 원활한 지원을 목적으로 한 사례회의만을 진행하고 있다. 나아가 이미 대구시는 UN장애인권리협약에서 요구하는 방향에 따라 2019년 대

구시립희망원 산하 장애인거주시설 폐지과정에서 의사결정에 어려움이 있는 최중증장애인들에게까지 탈시설과 지역사회 생활의 기회를 보장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하여 긍정적인 평가와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때문에, 현재 대구시의 제2차 장애인 탈시설 추진계획에 나타난 대상자 선정 및 우선순위 설정 시도는 장애인의 권리를 심각히 침해하는 것이자, 정책 경향을 역행하는 것이며, 대구시 스스로의 선례마저 후퇴시키는 일이다.

장애인 탈시설 정책은 권영진 시장 민선 6기와 7기의 가장 차별화된 장애인 정책이자 대표적인 장애인 공약 중 하나이다. 그러나 2018년 제1차 계획이 종료된 이후 2년 만에 발표할 제2차 탈시설추진계획은 본문에서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를 강조하고 있으나, 그 각주에서 탈시설 가능 장애인과 불가능 장애인을 구분하고 선별하기 위한 행정적 근거를 명시함으로써 탈시설 권리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탈시설을 보장하고 관련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의무주체인 지자체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는 권리주체인 장애인의 권리 실현을 지원할지 지원하지 않을지를 결정하겠다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강력히 규탄한다. 또한 관련 단체들의 인권침해 문제제기에도 시장까지 내부결재를 맡았다는 이유로 눈치만 보고 있는 복지국 장애인복지과의 탁상행정, 졸속행정, 꼼수행정을 강력히 규탄한다.

대구시는 관련 단체의 눈치를 보며 발표하지 않고 있는 2차 탈시설추진계획에 포함된 탈시설 대상자 심의 및 우선순위 설정 시도를 즉각 철회하라! 또한, 보다 가속화된 시설폐지 및 장애인 탈시설 권리보장을 위한 정책‧예산을 마련하여 모든 장애인의 탈시설이 가능한 환경을 빠르게 구축하라!

2021년 1월 25일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 우리복지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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