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북한 체납 고지서, 살기 힘들다는 유서. 증평에 살던 한 모녀의 마지막 흔적이다.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모녀를 추모하며, 왜 이러한 죽음이 끊이지 않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변화를 촉구한다.

송파 세모녀 법, 왜 실효성이 없는가?

박근혜정부는 송파 세 모녀 법 이라며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사실 해당 법 개정안의 실제 내용은 여전히 송파 세 모녀가 아무런 제도적 보장을 받지 못하는 빈 수레에 불과했다. 선정기준과 보장수준이 개정 이전과 대동소이해 구조적으로 신규 수급자가 증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법 개정 이후 선정기준의 상승률은 기존 제도에서 평균 3.90%였지만 개정 후엔 평균 2.30%로 도리어 떨어졌다. 개정 전에도 낮은 상승률, 부적절한 선정기준으로 비판 받았던 것을 고려하면 더 나빠졌다고밖에 할 수 없다.

기초생활수급자 숫자 역시 160만 명 정도로 기존에 비해 20만명 이상 증가했으나, 교육급여 선정기준 상향과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로 ‘교육급여만 받는’ 수급자가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생계, 의료급여 등 실제 빈곤상황 해결에 도움이 되는 급여를 받는 수급자 숫자는 인구의 3% 내외를 반복한 기존 수급 규모와 대동소이하다.

사각지대 해소, 정말 노력하고 있는가?

여전히 수급신청을 위해 동주민센터를 방문하면 보유한 모든 통장의 일 년치 거래내역서, 부양의무자의 소득확인서 등 다양한 임의 서류 제출을 요구한다. 부양의무자의 주소도 모르는 수급신청자에게 금융정보제공동의서를 안겨주고, 낡아빠진 자동차 한 대 때문에 탈락한다.

감사원은 예산 효율화를 외치며 부정수급 사례만을 모은다. 이조차 대부분은 공급기관의 책임에 불과한 것이지만 너무 낮은 선정기준 때문에 제도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는 사각지대의 문제는 문제삼지 않는다. 관리 엄정화, 부정수급, 도덕적 해이라는 빈곤층에게 차별적이고 낙인적인 프레임은 여전히 강력하다.

복지부는 지난 해 11월에도 <기초생활보장 적정급여 TF>를 구성해 도덕적 해이에 대한 선제적 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고, 5월에는 복지담당공무원에게 ‘특별사법경찰권’을 부여할 것을 검토하기도 했다. 차별과 낙인을 빈곤층에게 부과하면서 사각지대 해소를 기대할 수 없다.

복지 전체의 총량을 증가시키지 않고 사각지대 해소는 어불성설이다!

정부와 국회는 지난 해 빈곤사회연대를 비롯한 여러 사회,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회보장급여의 이용 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이하 사회보장급여법)을 개정했다.

이 개정안은 채무를 비롯한 여러 민감 개인정보를 ‘복지 욕구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된 동의절차 없이 수집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차별적인 소지를 안고 있다.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조치라며 통과된 사회보장급여법에도 불구하고 증평 모녀는 죽음은 이제야 알려졌다. 채무고지서와 공과금 미납에 피폐했을 삶은 발견조차 되지 않았다.

문제는 사각지대 ‘발굴’이 아니라 실제 지원이 가능한 수준으로 선정기준을 바꾸고 신청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다. 보이는 빈곤층도 지원하지 못하는 현실을 외면하고 ‘발굴’만 외치지 말라. 우리는 땅 속 유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이다.

송파 세 모녀의 죽음 이후 4년이 지났다. 무연고 사망자의 숫자는 점점 늘어가고, 빈곤층의 죽음도 계속 이어졌다. 요란한 일제조사, 빈 수레 정책 개정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복지를 보장하지 않으면 빈곤으로 인한 사회적 죽음은 끝나지 않는다.

가난과 채무독촉 없는 곳에서 영면하시기를 빌며 빈곤과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전한다.

2018년 4월 8일

빈곤사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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