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모녀를 구하지 못하는 세 모녀법, 정부의 기만이 빈곤층을 계속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지난 2월, 송파 세 모녀가 ‘죄송합니다’ 라는 인사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지 8개월이 지났다.

정부의 전국 일제조사 등의 방침이 무색하게도 지난 29일, 전셋집에서 퇴거명령을 받은 서울의 한 기초생활수급노인이 주검으로 발견되었고, 30일 인천에서는 12살 자녀와 부모, 세 명의 일가족이 생활고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숨진 가족의 아버지 이모씨(51세)는 사업에 실패해 폐기물 관리업체에 한 달 전 취직했고, 어머니 김모씨(45세)는 아파트 관리소에서 근무했으나 지난 9월 퇴직했다.

딸 이모씨(12세)는 어머니와 함께 목숨을 끊었고, 아버지는 이들의 뒤를 따랐다. 어머니 김모씨는 지난 9월 해직 후 빚 상환을 고민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사업에 실패해서, 몸이 아파서, 직장을 잃어서, 교육을 받지 못해서, 집이 없어서 가난에 빠지는 이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일을 언제까지 목도해야 하는가?

가난 때문에 사람이 죽는 비참한 세상을 언제까지 용인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 죽음의 원인이 빈곤을 만들어내는 사회와 이를 방치하고 조장하는 정부에게 있음을 밝히며 다음을 질문한다.

1. 점점 확대되고 깊어지는 빈곤, 정말 답이 없는가?

한국에서 심각해지고 있는 빈곤의 문제는 격차를 확대하고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의 결과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 최하위계층인 절대적 빈곤층 뿐 만 아니라 빈곤층으로 언제든지 진입가능한 대부분의 국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저임금․불안정노동을 경로로 확산되는 빈곤은 주거․교육․소득․재산․건강격차를 통해 완고해지며, 최종적인 빈곤의 상황에서도 국가의 복지는 허약하기 이를 데 없다.

현재 800만에 이르는 전체 빈곤층 중 정부의 지원을 받는 기초생활수급자는 단 135만명이다. 16.5%에 이르는 빈곤상황에서 단 2.7%의 국민들만을 빈곤정책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송파 세 모녀, 인천 일가족의 죽음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현재 빈곤의 문제는 절대빈곤층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2006년에서 2009년사이 한번이라도 상대적빈곤선(중위소득50%이하) 이하의 빈곤을 경험한 가구는 35%로, 세 가구 중 한 가구에 이른다. 절대빈곤선(최저생계비 미만)이하로 떨어졌던 가구는 26.7%로 네 가구 중 한 가구다.

빈곤문제는 2.7%가 아니라 국민 대다수가 경험하거나 두려워하는 사회문제가 되었지만 정부는 이를 방관하고 있다. 부양의무자기준, 낮은 최저생계비 등으로 빈곤층을 복지 사각지대로 밀어내거나 아예 이들을 지원할 제도조차 없는 것이 한국 빈곤정책의 현실이다.

2. 세 모녀를 구하지 못하는 ‘세 모녀 법’, 정부의 기만이 빈곤층을 죽음에 내몬다

정부는 지난 세모녀의 죽음 이후 ‘세 모녀 방지법’을 발의했다며 조속한 통과를 여러 차례 요구했다. 그러나 이는 두 가지 면에서 사실 아니다.

첫째, 정부가 이야기하는 ‘세모녀 법’은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인데, 이는 정부가 아니라 새누리당 의원들이 발의한 것이다. 지난 해 5월 발의되었으나 아직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둘째, 해당 법안은 세 모녀를 전혀 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현재 그나마 존재하는 기초생활보장법을 후퇴시키는 법안으로, 빈곤사회연대를 비롯한 사회・시민단체와 복지계, 학계의 반대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새누리당의 기초법 개정안은 개별급여 시행을 핑계로 있는 복지제도를 갈가리 찢어 그 형태마저 사라지게 만드는 법안이다.

인천 일가족의 죽음 이후 언론들은 ‘세 모녀법’이 통과되지 못했다고 성토했지만 ‘세 모녀법’은 인천 일가족 역시 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세 모녀법’ 뒤에 숨어 제대로 된 빈곤대책에 대해 논의조차 거부한 채 국민 여론을 호도하는 정부의 태도가 같은 문제를 반복적으로 발생시키고 있다. 현재 박근혜정부의 태도는 목이 아파 병원에 온 환자에게 다리에 깁스를 해야 한다고 떼를 쓰는 의사와 같다.

3. 공짜복지 운운말라, 우리는 ‘튼튼’하고 ‘다양’한 빈곤정책을 요구한다

서울과 인천에서 빈곤층이 목숨을 잃던 그 날 새누리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공짜 복지는 없습니다.”라고 선언하며 사회적 대타협을 주문했다.

무엇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인가? 삼성전자 임원의 연봉은 노동자 평균 연봉의 145배다. 그런데 이를 재분배하기 위한 복지조차 ‘돈 낸대로 가져가’는 것이 ‘형평’인가?

경제위기 때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을 감수해온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데, 인원감축과 정부지원으로 되살아난 대기업은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것이 ‘위기극복’인가?

최소한의 복지조차 없어 국민들이 죽어가는 마당에 공짜 복지를 운운한 여당 대표의 발언은 경솔함을 넘어 입으로 저지른 살인이나 다름없다.

이 나라는 가난한 이들에게 언제나 재난같은 상황이다. 우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 빈곤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첫째, 현재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제외하고 빈곤정책은 전무하다. 그나마 있는 기초생활보장법은 부양의무자기준 등 악조항이 가득하다.

우선 절대빈곤층에 대한 강력한 지지와 권리보장이 필요하다.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른바 세 모녀법)을 철회하고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최저생계비 인상 등 제대로 된 개정 논의를 시작하자.

두 번째, 절대빈곤층 이상 차상위, 차차상위 계층 뿐만 아니라 빈곤과 탈빈곤을 반복하는 모든 이들에게 실효성있는 다양한 빈곤정책이 필요하다.

인천 가족은 송파 세모녀와 마찬가지로 채무로 고통받고 있었다. 복지제도에 접근조차 되지 않는 이들이 도움 받을 수 있는 것이 빚밖에 없다는 사실을 정부는 깊이 반성해야만 할 것이다.

빈곤문제 해결 없이 우리 사회에 미래는 없다. 또 다시 반복된 빈곤층의 안타까운 죽음에 깊은 애도를 보내며 가난과 차별없는 곳에서 영면하시기를 빈다.

2014년 11월 3일

빈곤사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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