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사건을 바라보는 장애인복지시설의 입장과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한 대국민 호소문

최근 영화 <도가니>로 세상에 알려진 청각장애인학교 교직원들의 장애학생 성폭력사건은 사회적 분노로 확산될 정도로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영화로 비쳐진 사건 자체의 잔혹함도 그러했지만, 가해자들이 장애인의 교육을 책임져야할 교직자라는 충격, 그리고 그들이 법을 통해 면죄부를 받게 됐다는 믿을 수 없는 현실, ‘아무도 믿지 못할 세상’이라는 상실감 등이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동류의 사회복지사업에 종사하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당혹스러운 사건이었기에,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기 짝이 없고, 이제 자존감마저도 다 구겨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분노는 일련의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고, 사회변화를 추동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될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이미 국회는 일명 도가니법을 개정하였고, 정부는 특수학교뿐만 아니라 장애인복지시설에 대해서도 전국적 조사를 통해 실태와 대책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사안의 심각성이 도를 넘고,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지라, 여러 관련 기관이 신속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일련의 과정과 대책을 바라보면서 가슴에 밀려드는 아쉬움을 감출 길 없어 우리 시설복지인들의 회한(悔恨)을 국민 여러분께 전하고자 합니다.

먼저, 순식간에 파급된 사회적 분노가 사회․심리적 영향을 미치게 되어, 사건의 가해자와 유사한 집단 전체가, 다시 말해 죄가 없는 사회복지시설이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편견의 대상으로 일반화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광주인화학교 사건은 분명 교육자나 사회복지인의 행태가 아닌 범죄자의 행태입니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의 자정노력이 부족했음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몇몇 범죄자들로부터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시도가 사회복지사업의 가치를 절하하고, 수많은 시설복지인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차분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정부기관 실태조사 과정과 향후 대책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2월 9일 장애인이 집단거주하고 있는 장애인생활시설 이용 장애인의 인권실태 조사결과와 향후대책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지대했던 사건이니 만큼, 실태조사와 대책 발표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과 내용은 시설복지인들에게 아쉬움을 넘어 수치스러움을 주었을 뿐, 정책의지를 의심스럽게 합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장애인생활시설 인권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무원과 장애인단체, 민간 인권활동가 등이 참여한 민관합동조사팀을 구성하여 200개(미신고시설 10개, 개인운영신고시설 109개, 특수학교 병립 시설 45개를 포함한 법인 장애인생활시설 81개) 시설에 대해 조사하였습니다. 조사결과 시설 이용 장애인간 성추행 6건 및 성희롱 2건 등 성관련 의심사례 발견, 시설 종사자에 의한 폭행 의심사례 3건, 학대 의심사례 2건, 체벌 의심사례 7건, 수치심 유발사례 2건, 식자재 위생관리 부적합 등 5건이 발견되어 위법사항에 대해 형사고발 및 행정처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에 장애인생활시설 이용자의 인권실태가 우려스럽다는 자극적인 내용의 무차별적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정부관계자, 언론관계자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불법장애인시설에 대해 “장애인복지시설” 또는 “장애인생활시설”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말아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사회복지사업법과 장애인복지법에 따르면, 정부가 장애인생활시설이라고 발표한 미신고시설, 개인운영신고시설은 법률에 근거한 시설이 아니며, 개인이 자의적으로 신고를 하지 않고 운영하거나, 신고조건에 부합되지 못해 신고가 거부된 불법시설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 파악도 어렵고, 국가 및 지자체의 지원도 없기 때문에 관리의 사각지대일 수밖에 없으며, 실태조사를 통해 형사고발 및 폐쇄 등의 처분을 받은 곳은 대부분 불법시설입니다. 그런데 정부와 언론은 불법시설에 대해 장애인생활시설이라는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마치 법률적 근거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 장애인생활시설이 많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오인되고, 이로 인해 수많은 시설복지인들이 큰 상처를 입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법률에 근거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였다면, 이미 이러한 불법시설들은 법률적 처벌을 통해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조사자와 조사방식 또한 문제입니다. 2011년 12월 현재 우리나라에는 신고를 통해 정부의 일정한 관리 하에 운영되는 법인 장애인생활시설이 452개소가 있으며, 이곳에서 24,388명의 장애인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용자 중 약 90%는 1급과 2급의 중증장애인이며, 약 75%는 의사소통과 사리 분별 능력이 부족한 지적․발달장애 또는 지적장애를 수반한 중증의 중복장애인입니다. 그런데 조사자 중 지적장애인 전문가는 거의 없었습니다. 지적장애의 특성은 다른 장애와 매우 달라, 일상생활과 사회생활 지원 방식도 다르며, 많은 지적장애인들은 자기진술 능력이 미약하여 의사소통에 있어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실태조사를 실시함에 있어 지적장애인과의 전문적인 의사소통기술과 정책적 대안을 제시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합리적이고 전문적인 조사자나 기관이 함께 했어야 합니다. 또한 의사소통도 어려운 중증의 지적장애인에 대한 조사이므로 전체적인 정황을 다양한 의사소통방법을 활용하여 사실적으로 파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밥을 제 때 줬느냐?”, 누가 때리지 않았느냐?”, “시설에서 나가고 싶지 않느냐?” 등 유치하기 짝이 없는 내용으로 조사를 해 시설복지인들이 모멸감을 느꼈으며, 정부의 조치에 더욱 부정적인 반응만 가중시킨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장애인복지시설의 복지인들은 이토록 자존심 상하고 인격모독에 가까운 방식의 조사를 당해야 했지만, 그 참담함을 가슴에 꾹꾹 눌러 앉히고자 합니다. 우리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회원 일동은 이 사건과 후속 조치가 어떠하든 향후 근본적인 대책의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에 모두 뜻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애인복지시설에 대한 불신이 초래된 것에 대해 국민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하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깊은 성찰의 기회로 삼고 심층적인 내부 자정노력을 약속드립니다. 그리고 본 협회는 지난 12월 9일에 총리실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장애인복지시설에 대한 인권실태조사 결과”의 주요 내용이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될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다음과 같은 대책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부디 아래에 제시된 내용에 대해 국민여러분께서 깊은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리며, 관련 당국은 조속히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실 것을 촉구합니다.

첫째, 정부는 소위 개인시설, 미신고시설 등의 불법시설에 대해 현행 법률에 근거하여 조치하거나 양성화 방안을 추진하고,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지원을 통해 원래의 가정 또는 지역사회복귀 지원, 국가 관리 하의 안전시설로 이전 조치해야 할 것입니다. 장애인복지시설의 공급량을 수요에 맞게, 지역별로 균등하게 확충해야 합니다. 수요가 있는데, 공급이 부족하면 당연히 블랙마켓(불법시설)이 형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이제 우리나라의 장애인시설서비스는 동정과 시혜가 아닌 장애인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국가의 책무로 전환해야 하며, 이를 법제화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사회복지시설은 민간이 운영하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필요한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조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사회복지법 제42조). 사회복지서비스에 대한 국가의 책무 규정은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민간 법인 이사장과 시설장은 시혜자일 수밖에 없고, 서비스의 내용도 자의적일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이용 장애인은 수혜자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고, 이러한 구조에서는 중증장애인이 함부로 취급될 수 있는 시설 내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위험도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설서비스의 책임과 서비스 내용, 그에 따른 비용부담을 국가의 책무로 법제화하고, 시설은 국가사업의 공급자로, 장애인은 서비스 소비자로 위상을 정립하는 3자 계약방식을 도입해야만 3자의 위상이 평등한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장애인시설서비스는 최후의 선택지가 되어야 합니다. 현재 시설을 이용하고 있는 많은 지체, 뇌병변, 시각, 청각 등의 신체장애인과 경증의 지적장애인은 일정한 지원만 있으면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을 위한 자립홈, 그룹홈, 임대아파트 등과 같은 주거지원과 활동보조, 직업알선 등과 같은 지역사회생활을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등 지역사회보호 방향으로 정책적 목표를 전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적장애인이나 중증장애인의 부모들은 장애자녀보다 하루 늦게 세상을 떠나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소연합니다. 부모사후에 보호와 자립에 대한 대책이 없음을 가슴 저리게 표현하는 말씀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원 가정 지원확대, 주거지원, 지역사회서비스 확대 등 지역사회보호체계를 강화하고,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없는 중증의 장애인들에 대해서는 부모와 가족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양질의 시설보호 서비스체계를 새롭게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 장애인이 시설을 이용하더라도, 그 시설은 장애인이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하는 거주지이므로, 성장과 발달의 경험들이 이루어질 수 있는 지역사회 안의 집과 같은 거주지가 되어야 합니다. 왜 시설들이 도서 벽지나 두메산골에 세워지겠습니까? 님비현상과 현행의 법체계가 이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현행법은 시설운영을 위한 기본자산과 목적용 건물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재정여건이 열악한 시설설립자들은 값싼 부지를 찾게 되고, 결국 장애인이 지역사회와 격리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따라서 선진국처럼 장애인거주시설이 아파트나 연립주택 등 지역사회 속의 보통의 주택에서 운영될 수 있도록 설치기준을 과감히 바꿔야 합니다. 또한 대규모 시설 설립을 조장하는 장애인시설에 대한 예산지원 방식을 전환해야 합니다. 현행의 예산지원방식은 이용자 1인 당 일정비용을 급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 원리에 의해 대규모를 선호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규모 수용 방식은 이용자 인권확보에 큰 걸림돌이 되고, 정부의 정책은 소규모화를 추진하면서 실제로는 대규모를 조장하는 결과가 초래됩니다. 만일, 현행처럼 일인당 한 끼에 1,352원을 지원하는 방식이라면, 100명이 한 끼에 13만원 남짓한 비용으로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4명이 사는 그룹홈과 같은 선진적인 거주시설은 4명이 5천원 남짓한 비용으로 한 끼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시설운영 자체가 힘듭니다. 따라서 소규모 시설에 가중 지원을 해야만 지역사회중심의 가정화된 소규모형 시설의 꿈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섯째, 시설의 서비스 질(質) 관리를 강화해야 합니다. 시설 신고 시와 직원의 신규 채용 시에 인적 자원에 대한 전력조회가 법제화되어 인적 자원에 대한 질 관리가 이루어져야합니다. 또한 시설 설비의 기준은 시설에 접근성, 1인당 최소면적 등 이용자의 사생활과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소위 일반 제조업이나 서비스 업체가 품질인증을 받듯이 시설서비스인증제를 도입하고, 시설평가결과를 이용자들에게 공개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부여해서 시설들이 서비스 향상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여섯째, 시설 이용자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우리협회의 자정노력을 배가하겠습니다. 각 시설에는 이용자 인권지킴이단을 구성하고, 그것을 총괄할 수 있는 지원센터를 설치하여 내부감시체계를 강화하겠습니다. 또한 이용자 권리장전과 같은 서비스 기준을 만들고, 서비스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인권침해 사례 등을 매뉴얼로 개발하여 직원과 이용자 교육을 확대하겠습니다. 한편으로는 판단능력이 부족한 지적장애인들의 의사결정을 지원하기 위한 후견인제도가 조속히 시행되어야 할 것이며, 국가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지적장애인의 의사소통방법과 도구를 개발하여 보급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국가는 복지시설을 통해 이루려는 정책목표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밝히고, 그에 부합하는 정책실천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중요한 목표는 국가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하며, 국가 단위의 표준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이상과 같은 근본적인 대책들이 실현되지 않고, 현재와 같이 장애인생활시설 운영사업을 지방자치단체로 내 팽개쳐두는 한 국가의 복지실현 목표나 정책실천, ‘공익이사제’ 도입, ‘성폭력특별법’ 개정 등의 노력은 모두 허상에 불과할 것입니다.

“장애인생활시설, 장애인공동생활가정, 장애인단기보호시설, 장애인주간보호시설 운영지원사업은 다시 국가사무로 환원하여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2011년 12월 16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회원시설 임직원 및 이용장애인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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