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조서비스가 생기지 않았던 시절(십여년 전) 저는 60대 초반의 홀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형이 한 명 있지만 직장 때문에 함께 살 수 없었지요. 시설에도 몇 년 간 있어봤지만 개성과 인권이 무시되는 그곳에서는 계속 살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엄니와 단 둘이 살던 어느 날 제가 실변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엄니가 많이 피곤하셨던 모양입니다. 힘들여 저를 씻기시던 엄니가 한마디 하십니다.

"나 죽으면 너를 어떡하니! 내가 너보다 단 하루만이라도 오래 살아야 할텐데..." 훌쩍이시던 엄니를 보며 가슴 아팠던 생각이 납니다. 우리 엄니뿐만 아니라 장애자식을 둔 모든 부모님의 소원은 자식보다 단 하루만 더 사는 것이었을 겁니다.

하루가 다르게 힘에 부쳐하시던 엄니는 급기야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셨고 곧 회복은 하셨지만 더 이상 저를 돌보는 것이 어려워졌기에 싫은 것을 꾹 참고 시설에라도 들어 가야할 판이었습니다.

그러한 고민을 하던 차에 복지관으로부터 활동보조서비스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고 서비스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만 당시 제가 독립을 하기 전이라 서비스 시간도 많지 않았고 남성 활동보조 샘들이 많지 않아 아줌마 활동보조 샘이 하루에 서너 시간씩 오셨다 가셨지만 성별이 다르다 보니 그리 많은 도움이 되지는 못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남성 활보샘이 오셨고 목욕과 외부활동 등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임대아파트를 얻어 독립을 하게 되었고 살림을 해줄 아줌마 활보샘이 필요해졌지만 왠지 망설여졌습니다. 가족 중에 여자라곤 엄니밖에 없었던 저는 엄니 외의 다른 여성에게 제 몸을 보여야한다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았습니다.

민망할 것 같았고 부끄러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잘못해서 그것이 커지기라도 하는 날엔 정말이지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의 기우였습니다. 그것 또한 손가락, 발가락처럼 제 몸의 일부일 뿐이고 그저 조금 주책 맞은 살덩어리에 불과한 것인데 말입니다. ^^

그렇게 지금의 활보샘을 만나서 5년 가까이 알콩달콩(?) 지내고 있습니다. 그는 입이 좀 걸걸합니다. 처음으로 제게 건넨 말은 "누나라고 불러! 짜샤!"였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의 3분지 1이 욕이었던 것 같습니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그런 욕 있지요? 욕쟁이 할머니처럼. 전 그런 그가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욕을 그리 많이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지랖도 상당히 넓었습니다. 나쁘게 말해 오지랖이지 정이 많다는 얘기지요.

그는 말도 많습니다. "아휴! 튀겨 죽여! 튀겨 죽여! 이제 7월인데 이렇게 더우면..."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온 그가 현관문을 열며 하는 말입니다.

점심 밥상을 차리며 밖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얘기합니다. 옆집 아줌마 얘기며 누구네 싸운 얘기, 경비아저씨 얘기, 할 얘기가 없으면 어제 했던 얘기.^^ 그러나 저는 듣고만 있다가 가끔 고개만 끄덕일 뿐입니다. "왜 리액션이 그 모양이냐!?" 하면 씨익~ 웃지요. 그가 이렇게 수다스러운 건 물론 그의 성격 탓도 있겠지만 혹시나 제가 심심해하지나 않을까 하는 그의 작은 배려임을 알기에 제겐 그의 수다가 뻐꾹새(?)의 지저귐입니다.

가사에서부터 사회활동, 신변처리까지. 저는 그의 도움 없이는 단 하루도 살수가 없습니다. 제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손가락 하나로 IT기기를 만지는 것밖에는 없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저에게 단 한 번도 찡그린 얼굴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저는 그를 감히 '천사'라고 부릅니다. 욕쟁이 천사요.^^ 우리 활보샘 얘기는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고.

주위를 둘러보면 이용자(장애인)와 활보샘 간에 갈등을 겪는 커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용자가 활보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다 던지, 활보샘이 이용자를 소홀히 대한다 던지 해서 말입니다.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갑시다. 제가 감히 하느님의 십계명을 패러디하여 활동보조 구계명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1. 한 명 뿐인 자신의 활보 또는 이용자를 존경하라.

2. 서로의 이름을 장난삼아 부르지 말라.

3. 서로 함께하는 시간을 즐겁게 지내라.

4. 서로를 배려하라.

5. 서로에게 상처(마음의 상처 포함)를 입히지 말라.

6. 서로를 희롱하거나 추행하지 말라.

7. 서로에게 물질적인 것을 요구하지 말라.

8. 서로에게 솔직하라.

9. 남의 활보 또는 이용자를 탐내지 말라.

어떤가요? 패러디라 다소 코믹하지만 깊이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입니다. 활보샘이나 이용자는 나 자신이 아닙니다. 남입니다. 남이 나에게 질해주면 고마운 것이지만 잘해주지 못한다 해도 서운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남이니까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요. 그래도 사람 사이에 너무 삭막한가요? 그럼 서로를 가족(부모, 자식, 형제, 자매)처럼 생각하고 그렇게 대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가족에게 무리한 요구는 할 수 없을 것이고 또한 가족에게 소홀하기는 어렵겠지요.

*이 글은 에이블뉴스 애독자 강병수님이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을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연락을 주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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