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당신의 두 발이 되어주고, 나의 마음의 등불이 되어주고……

개인전과 단체전

연애는 두 사람만 좋으면 된다. 하지만 결혼은 가족과 가족의 만남이라 개인전이 아닌 단체전이 된다. 연애 이전에 알던 사이였고, 이미 한 번씩의 결혼 생활을 해보았다는 것이 외려 장점이 되어 상대를 쉽게 파악하고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우리의 만남은 장애와 비장애라는 새로운 기준이 하나 더 있었을 뿐이다. 그 기준에서 장애인인 남편과 비장애인인 나 사이에 화합은 쉽게 이루어졌다. 문제는 가족들이었다.

결혼을 결심하고 나자 부모 형제들의 반응이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확실히 남편은 생각이 달랐다. 허락! 그것은 부모님께 받는 것이라는 게 남편의 생각이었다. 모든 형제들이 다 좋아해주면 좋겠지만 세상에 그게 어디 쉽겠냐며 우선은 부모님께 허락 받는 일이 중요하고 형제들에게는 노력은 하되 마음에 상처 받지는 말자며 오히려 내 마음을 안심시켰다.

설사 욕을 하고 장애와 관련해 마음에 상처가 될 말을 하더라도 본인은 상처 받지 않을 것이며 나 또한 상처받지 말아 달라고 했다. 심지어 두들겨 패더라도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한 대 패면 허락 안 해줄 수가 없으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과연 어디서 그런 자신감과 당당함이 나온 걸까. 남편의 그런 말들이 나로 하여금 그를 믿게 하였고 나 스스로 맘 졸이지 않아도 되었다.

결혼식 전 진해 벚꽃여행중 여좌천 다리에서-김하늘, 김재원 주연의 드라마 '로망스'촬영지. ⓒ민솔희

언제나 함께 바라보는 부부로 살고자 하는 민양과 박군. 맹방 유채꽃 축제 장에서. ⓒ민솔희

총대까지 매주시는 엄마는 우리의 든든한 지원군!!

정식으로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기 전, 남편은 날 데리고 부모님께 두어 번 다녀왔다. 워낙 시골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기 번거롭다 보니 기사 노릇을 해주러 왔다며 함께 다녀왔다. 그 사이 엄마는 우리 사일 눈치를 채셨고 둘이 만나기로 했냐며 넌지시 물으셨다. 하지만 엄마는 많은 질문을 하지는 않으셨다. 엄마와 자주 통화를 하던 나는 남편의 이야기를 자주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남편은 내가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자신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해주는 과정에서 이미 엄마와 자신 사이에 라포형성이 되어 있어서 실제 만나서도 자신을 더 좋게 봐주신 거라고 했다.

엄마는 그렇게 인사를 다니는 동안 자연스럽게 남편을 받아들여 주셨다. 아무 거부감 없이 아무 조건 없이 그저 남편의 밝고 강하고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그 모습에. 그리고 그동안 내가 엄마에게 이야기 했던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만 듣고도 그를 사위로 받아주셨다.

아버지는 남편이 휠체어에서 차로 오르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 보셨다. 팔순의 중반을 넘기신 아버지가 휠체어 싣는 것을 도와주시려 하는 모습이 가슴 짠했다. 그러면서 다리가 불편한데 운전을 할 수 있느냐고 궁금해 하실 만큼 그에게 관심을 가지셨다. 하지만 집에 다녀온 후 엄마와 전화통화에서 아버지가 걱정을 하시더란다. ‘저도 몸이 약하면서 보호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지 보호 해줘야 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떡하느냐’하자 엄마는 충분히 딸내미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내가 그랬소. 내가 사람 괜찮다고 떠밀었소’라고 하셨단다. 그랬다. 엄마는 우리에게 늘 총대매고 도와주는 지원군이었다. 엄마의 그 말을 들으신 아버지는 더 이상 아무 말씀 없이 받아들이셨다고 한다. 세 번째 고향을 찾을 때 남편은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겠다고 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셋째 오빠 역시 메신저로 오빠한테 할 말 있다고 하자 ‘오빠가 짐작하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

오빠가 짐작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내가 많이 행복하면 되잖아요.’

‘그래. 한번 보자.’

이렇게 우리는 첫 번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고향으로 갔다. 고향으로 가기 전, 엄마는 우리에게 전화를 하셨다. ‘오빠들 한데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하지 말고, 결혼하고 싶은데 오빠들이 부모님 좀 설득해달라고 그렇게 말을 해라.’이렇게 코치를 하셨다. 이 오빠에게는 이렇게 저 오빠에게는 저렇게. 엄마는 그렇게 우리 곁에서 훌륭한 러브코치를 해주셨다. 집에서 식사를 하고 신랑은 부모님 앞으로 가서는 ‘오늘은 제가 놀러온 것이 아니고 어머님 아버님께 허락을 받으러 왔습니다. 저 솔희랑 함께 살고 싶습니다.’이미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런 형식을 갖추는 과정에서 정식으로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버지도 엄마도 한 번의 상처가 있는 딸이 또다시 맘고생 하지 않도록, 당부를 하셨다. 오빠 역시도 첫 만남에서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는 바로 허락을 하셨다.

‘좋다는데 반대한다고 안 살겠냐. 이왕할거면 잘 살면 좋겠네.’

내 신랑은 돈키호테

부모님과 셋째 오빠처럼 언니도 큰오빠도 전화로 상황을 전해 들었을 당시만 날 나무랐을 뿐 남편과 함께 찾아 가고 나면 다들 그 다음부터는 이 사람을 좋아해주는 것이었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쭈뼛쭈뼛 하지 않는 남편의 모습에서 모두 희망을 본 듯했다. 물론 형제들도 다들 유순해서 그렇게 우악스럽게 나무랄 사람도 없었다. 둘째 오빠와 넷째 오빠의 반대는 거기 비하면 조금 더 심했다. 둘째 오빠가 고향집에 왔다 길래 남편과 간적이 있다. 짐을 집안에 들여놓고 나오자 둘째오빠가 집안으로 들어오기에 ‘오빠, 저 왔어요’했더니 한번 째려봐 주고는 들어가 버린다. 문 앞에는 남편이 있었다. 난 그가 걱정이 되어 달려갔더니 표정이 멀쩡했다. 나중에 들었는데 그 밖에서 오빠가 오기에 자기 혼자 인사를 다 해버렸다는 거였다. ‘솔희 둘째 오빠시죠. 인사드립니다.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엄마는 그런 작은 사위의 모습을 점점 더 마음에 들어 하셨고 아버지 역시 이제는 사위 옆에 오셔서는 휠체어도 만져보시고 운전하는 법도 듣곤 하셨다. 형제들이 하나 둘 긍정으로 가면 나머지 형제들은 긍정의 형제들이 도와준다. 넷째오빠는 그토록 반대하더니 큰오빠가 형제들 식사자리를 마련하는 바람에 인사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들의 허락이라는 산보다 높은 줄 알았던 턱을 넘었다. 그렇게 당당하고 현명한 내 남편이 난 참 존경스러웠다.

딸 둘, 아들 둘

부모님과 형제들, 다음은 아이들이 문제였다. 남편에게는 당시, 대학생인 딸과 입대를 앞둔 아들이 있었다. 생모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딸아이가 상황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처음 몇 달간 본인도 마음정리 할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방학동안 중국을 가 있는 동안 메신저로 내 마음을 전한 어느 날, ‘처음엔 참 많이 밉기도 했어요. 하지만 고마워요. 아빠에게 와주신 것도, 동생에게 잘해 주시는 것도. 그리고 내 인생에 나타나 주신 것도 너무 감사해요’라는 쪽지를 받았다. 쉽게 마음 안 여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남편을 자제 시키고, 내게도 아이들이 있으니 그 녀석들도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생각에서 그저 아이들과 친해지려 노력한 결과라 생각하니 더 큰 감동이었다. 아들 녀석은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였다. 남편이 어느 날, 아들과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했을 때 아들은 그랬다고 한다. ‘와우. 아빠 능력 있으신데요. 11살이나 어린분이면, 음……. 아빠 완전 도둑님이시네요’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이더란다.

남편은 자신의 두 아이 보다는 내가 두고 온 두 아이를 더 걱정했다. 아이들 그리워하며 맘고생 할 나를 생각하며 아이들을 데려오도록 하자고 했다. 물론 친권 양육권이 모두 전남편에게 있고 절대 보내지 않겠다는 바람에 아직까지 못하고 있지만 언제든 남편은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의 그런 배려가 나는 언제나 고맙다. 그렇게 우리에겐 딸 둘, 아들 둘의 4남매를 둔 부자가 되었다.

사위사랑은 장모

우리의 든든한 지원군이신 엄마의 말씀. ⓒ민솔희

남편을 만나고 여행도 강의도 참 자주 함께 다니게 되었다. 엄마는 전보다 더 자주 전화를 하셔서는 첫 마디가 ‘오늘은 어데야?’라신다. 어디를 가고 어디를 다녀온 이야기를 듣는 게 엄마는 즐거우신가 보다. 운전하는 남편의 귀에 전화를 대주면 장모와 사위는 깔깔 웃어가면서 오늘은 어디를 가고 있고 무슨 일이 있고 이야기 하며 행복해 한다. 난 그 모습이 너무 좋다. 비록 장애를 가진 사위지만 다섯의 아들보다도 두 딸보다도 믿어주시고 사랑주시는 엄마가 너무 감사했다.

‘청혼의 벽’에서의 프러포즈

지난해 하반기에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연애 할 때보다 더 많이 남편의 장애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난, 시간이 흐르면서 남편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더욱 망각하고 사는 것 같다. 남편이 생활하기에 편하도록 생활습관이 맞춰지다 보니 나도 거기에 익숙해져있고 아무 불편 없이 사는 우리 모습이 그저 평범한 부부들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 번씩의 상처가 있기에 더욱 조심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우리는 늘 신혼과 같았다.

‘그래도 결혼식은 올려야지?’ 주변에서는 결혼식을 안 하냐고 물어왔다. 사실 두 번째 하는 결혼생활이라 그냥 살려고 했었다. 그러던 중 우리는 그래도 지인들과 밥은 한 끼 먹어야 겠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은 ‘그래도 검도장도 하고 또 여자입장인데 결혼식은 해줘야 겠다’라고 생각했고 나는 ‘나야 이혼한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남편은 겨우 몇 년 결혼생활하고 장애인이 된 이후 혼자 산지 20년이 다 되어 가니까 사람들이 저 사람 결혼 한다면 다들 좋아해줄 텐데’라는 생각에서 결혼을 하자고 했던 것이다.

청혼의벽 프러포즈-동판벽에 걸기. ⓒ민솔희

알고 받는 프러포즈였지만 이렇게 눈물이 흘렀다-청혼동영상을 보면서. ⓒ민솔희

청계천 청혼의벽 두물다리에 적은 우리의 글. ⓒ민솔희

결혼을 앞두고 남편은 청계천 ‘청혼의 벽’에 프러포즈 신청을 했다. 5월 2일, 결혼날짜를 잡고 4월 30일 프러포즈를 하게 되었다. 남편이 신청한 사연이 접수가 되었고 우리는 서울로 갔다. 프러포즈는 보통 몰래 해서 상대를 놀래게 해주지만 나는 모든 걸 알고 갔다. 프러포즈를 하려면 워터스크린에서 동영상을 틀면서 하는 거라 동영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프러포즈를 받는 당사자인 나는 남편에게 그 동영상 제작을 의뢰받은 것이다. 그렇게 알고 받는 프러포즈였지만 우린 너무 행복했고 난 그날 많이도 울었다. 청계천 두물 다리를 지나면 민솔희&박종균의 프러포즈 낙서가 있을 것이다.

신랑 신부가 진행하는 결혼식

남편과 나는 장애인체육회나 장애인 관련 행사에 함께 진행을 많이 했었다. 재밌는 것은 그런 행사에 단골로 사회를 보는 복지사 선생님을 우리 결혼식의 사회자로 모셨다. 결국 행사 진행하는 팀원이 모두 모인 것이다. 식장을 별도로 대여하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는 호텔 연회장을 대여했다. 드레스와 턱시도 대여도 인터넷을 통해 대여료 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입을 했다. 결혼식 순서도 특이했다. 주례사도 빼고 나의 수필 지도를 해주시는 수필가 선생님의 덕담순서를, 그리고 신랑 신부 동영상 프로필을 내가 직접 제작을, 우리의 여행 사진을 입구에 프린트하고 보드지를 사다 예쁘게 진열을, 현악 3중주는 검도장 제자가, 사진 촬영은 검도장 학부모님이, 신랑 신부 친구와 조카가 축하 편지 낭독을, 하객 여러분들의 덕담 엽서 작성과 낭독을 하는 등 식사를 하면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결혼식을 했다.

결혼식 시작 십 여분 전까지 신랑도 여기 저기 왔다 갔다 하고 있고 신부인 나 역시도 드레스도 갈아입지 않고 사회자와 진행 순서를 이야기 하고 있는 모습에 ‘대체 결혼하는 사람들 맞나’는 소리를 듣고서 모두 한바탕 웃기도 했다.

다시 태어나도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이글을 시작하는 첫 회에서 나는 제목을 ‘다시 태어나도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로 했다. 난 지금도 남편과 결혼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장애인 임에도 불구하고 늘 밝고 긍정적이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내 모습이 정말 존경스럽다. 우린 늘 서로가 서로에게 복덩이라고 말한다. 남편은 내게 나는 남편에게 ‘다시 태어나도 당신 같은 사람은 못 만날 거야’라고 말한다.

청계천에서의 프러포즈에서도 그리고 결혼식 엔딩 동영상에서도 우리는 그 음악을 사용했다. 지금의 이 마음이 우리가 평생을 함께 하면서 변치 않도록 서로가 노력할 것이다. 결혼식을 마치고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결혼식 전이나 후나 여전히 우리는 신혼이다. 일 년이 지나고 십년이 지나도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우리의 마음은 서로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날 한마디씩 했다-신랑신부가 입이 귀에 걸렸어. ⓒ민솔희

박군의 혼인서약 낭독. ⓒ민솔희

신랑신부 동영상 상영 장면. ⓒ민솔희

민양과 박군이 운영하는 ‘장애인 여행’카페 : cafe.naver.com/okwheel

민양과 박군이 새로 시작하는 ‘민박집’카페 : cafe.naver.com/minparkjip

*'민박집 러브스토리'는 민솔희씨와 박종균씨의 러브스토리를 줄여서 만든 말입니다. 에이블뉴스는 민솔희씨와 박종균씨가 직접 쓰는 민박집 러브스토리를 총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검도7단의 검도관장 민솔희와 척수장애1급의 박종균. 결혼이야기는 민(양)박(군)집 러브 스토리로 이미 알려졌다. 지금은 천안 나사렛대학교에서 더 많은 장애인들과의 희망 이야기를 꿈꾸며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강의를 하고 있다. 장애인여행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장애인체육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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