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연 그리고 연인-수줍은 사랑고백

새벽녘 빗소리에 남편도 나도 뒤척인다. 잠결에 남편은 나를 꼭 안으며 남편은 '비가 오네!'라고 말한다. 그런 남편 품에 안기며 '그러게. 빗소리 참 좋다. 그치!'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우리 두 사람에게 비오는 날은 특별하다. 우리를 오빠 동생에서 연인으로 만들어 준 것도 바로 비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시간을 내어 비오는 날 함께 찾았던 우리만의 파도 섬을 가야겠다고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신두리 신혼여행 중 노을을 바라보는 박군. ⓒ민솔희

신두리 신혼여행 중 전화를 하고 있는 민양. ⓒ민솔희

삶의 깊은 수렁에서

전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밝고 긍정적이던 나를 우울과 부정이 가득한 사람으로 변화 시켰다. 검도 관장이 이렇게 마르고 비실거리는 것이 말이 되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내 몸은 하루가 다르게 말라 병원에서는 저체중으로 위험 하다는 소리까지 하게 되었고 심각한 우울감으로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유지 할 수 없을 만큼 힘이 들었다. 그런 내게 이혼은 다시금 밝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이혼 후 작은 원룸에서 혼자 생활하게 된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결혼 실패로 인한 억울함에 사무쳐 밤마다 술을 마시며 목 놓아 우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고 검도장 운영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 몇 달이나 그런 시간을 보냈을까. 내 가슴속에는 세상에 대한 미움과 증오, 원망만이 남아 있었다. 그토록 열심히 다니던 배드민턴 모임에도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오로지 검도장과 집에서만 생활하는 나는 거의 폐인에 가까워졌다.

7남매 중 막내인 남동생을 제외하고는 6남매가 모두 결혼을 했지만 그중 유일하게 나 혼자 이혼을 하게 되었다는 점은 부모님과 형제들 보기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가족들과 함께 고향을 방문하는 명절이 되었고 형제들은 함께 고향을 가자고 했지만 난 한사코 바쁘다며 혼자 원룸에서 눈물로 시간을 보냈다. 명절날 오후, 전화 한통이 울렸다. 지금의 남편이다. ‘솔아, 집에 안 갔지? 오빠랑 바람 쐬러 가지 않을래?’난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들 즐거운 명절은 혼자인 사람에게는 더 외로운 시간이니까. 그런 그때 그 사람의 전화는 서글픈 내 삶을 더 서글프게 하기도 했고 큰 위로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그 사람의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했다. ‘많이 힘들지? 애들 많이 보고 싶지? 밥은 먹고 지내는 거니? 뭐 먹을래.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는 내게 그는 그렇게 밥을 먹자고 했다. ‘솔아, 답답하고 힘들 때 혼자 있으면 더 힘든 거야. 다시 운동도 하고 어디 가고 싶은데 있으면 얘기해. 오빠가 데려다 줄게. 엄마 보고 싶으면 강원도 집에도 데려다 줄게. 사람은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많이 다치고 가장 많이 아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되더라. 엄마가 힘내서 잘 살아야지. 그래야 나중에 애들 앞에 엄마 이렇게 열심히 살았어라고 떳떳이 나타날 수 있지. 지금처럼 이런 모습으로 나중에 애들 앞에 나타나면 애들이 좋아할까?’

나는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내가 더 열심히 살아서 멋진 모습으로 아이들 앞에 나타나는 것,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그 사람은 내가 가장 힘든 순간, 어쩌면 삶 자체를 포기하고 싶어 할 그 순간에 내 곁을 지켜준 사람이다. 물론 휠체어팀 모두가 내게는 큰 힘이 되었다. 오빠들은 가끔 날 불러내 저녁도 함께 하고 술잔을 함께 기울여주기도 했다. 그 시절, 난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했지만 휠체어 팀들과는 아무 부담 없이 자주 만나곤 했다. 내게 그들이 없었다면 아마 난 그 순간을 결코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의 초대

오죽했으면 딸을 이혼을 시키겠냐며 자식들과 사위를 불러놓고 엉엉 우시던 엄마. 그리고 그날 밤, 엄마와 나 그리고 언니. 세 사람은 새벽이 올 때까지 부둥켜안고 울었고 엄마는 말씀 하셨다. ‘걱정 말아라. 내 죽기 전에 반드시 네가 어깨 펴고 살도록 해주고 죽을 모양이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라.’그랬다. 나의 엄마는 그런 분이셨다. 그런 엄마는 이혼한 딸이 걱정되셔서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하고 하셨다. 난 엄마에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까지 다 했다. 전부터 휠체어 배드민턴을 하는 오빠들 이야기를 하나하나 알고 계시던 엄마. 이제 내 입에서는 종균오빠가 이러쿵저러쿵 하는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엄마와 셋째 오빠는 지칠 대로 지쳤을 딸을, 그리고 동생을 다시금 기운 내도록 해주고 도와주는 휠체어 팀의 그들이 고마웠던 모양이다. 휠체어배드민턴 팀들 모두 데리고 집으로 놀러오라는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휠체어배드민턴 팀에 이야기 했고 모두들 좋다고 했다.

휠체어팀과 강원도집에 놀러갔던 사진. ⓒ민솔희

집에 도착하자 오빠는 이른 아침부터 호산 바다에 가서 가리비를 두 박스나 사다 준비해놓고 이래저래 음식을 잔뜩 준비해 놓았다. 겨울이 시작되는 그때 이미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당에서 가리비를 구워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는 뭐가 그리 신기한지 지하실 구석구석 그리고 거실, 방방마다 다니면서 엄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둥 망설임 없이 털털한 모습을 보고 잠시 후 그가 다시 차로 이동하자 엄마는 나를 붙잡고 ‘사람이 참 밝다. 몸에 비록 장애가 있어도 사람 참 강하고 밝아 보인다. 장애가 없는 사람들 보다 더 밝고 더 열심히들 살아가니 참 보기 좋다.’난 엄마의 그 말씀에 웃고 말았다. 엄마는 우릴 키우시면서 어릴 때부터 그러셨다. ‘세상에는 내가 안 해서 안 되는 거지 못하는 일은 없는 거다. 하면 된다.’그리고 ‘사지육신이 멀쩡하게 태어나 건강히 살아간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너희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다.’라며 동네에 장애인들이 있어도 절대 따라다니며 손가락질 하거나 엄한 소리 못하게 가르치셨다. 어쩜 그런 엄마의 가르침이 휠체어 팀들에게 쉽게 접근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내게 준 선물, 파도 섬……

기나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그리고 봄을 알리는 봄비가 내린다. 이젠 나도 제법 지난 슬픔에서 헤어났고 검도장도 이전을 해서 다시 내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에게서 드라이브를 가자는 전화가 왔다. 뭔가 보여줄 것이 있다고 했다. 그가 날 데려간 곳은 충주댐을 지나 동량면에 위치한 요트장 아래 댐의 물결이 찰랑이는 물가 공터였다. 그곳은 주변에 느티나무도 있고 밤나무도 있었다. 얼핏 낚시꾼들이 다녀간 흔적도 보인다. 파도 섬 이란다. 그곳은 댐의 물이 차면 차가 들어갈 수 없지만 물이 적당히 빠지고 나면 나무 그늘 아래 차를 대고 댐의 물을 바라볼 수 있다. 그런데 마치 그 모습이 파도치는 섬에 와 있는 것 같아 그가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힘든 일이 있거나 책을 볼 때도 그는 그곳을 자주 찾는다고 했다. 충주에 그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

충주댐을 지나 동량면에 위치한 요트장 아래 파도섬의 풍경. ⓒ

충주댐을 지나 동량면에 위치한 요트장 아래 파도섬의 풍경. ⓒ

정말 섬에 온 것처럼 신기한 맘에 수평선을 따라 시선을 주고 있던 난 깜짝 놀랐다. 그가 나의 손을 잡는 것이었다. 난 황급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솔아, 이젠 솔희가 정말 많이 밝아지고 건강해져서 참 고맙다.’뭘까. 그는 그런 내가 왜 고맙다는 것일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기나긴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11살이나 어린 동생. 하지만 너무도 밝은 표정으로 사람들 틈에서 통통 뛰어다니는 내 모습이 그렇게 귀여웠었단다. 그런 동생이 생겨 참 좋았었단다. 하지만 나의 힘겨운 결혼생활을 이혼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지난 과거를 보는 것 같아 마음 아팠다고 한다. 그 역시 그 순간에는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지나고 돌아보니 '그저 사람 사는 세상일이었지 싶었다'며 내가 자신과 같이 힘든 시간을 오래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작은 도움이 되고 싶어 심리 상담도 해주고 그랬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어느새 다시 밝아지고 긍정적이 되는 나를 보며 참 좋다고 했다.

그는 비오는 날 충주댐 파도 섬에서 수줍은 사랑 고백을 했다. 이러 저러 해서 나는 너를 사랑한다거나 하는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그는 날 바라보며 꼭 잡은 손을 끌어 당겨 날 살포시 안아줬고 나 역시 거부하지 않았다. 그동안 바라본 그의 진실된 모습과 듬직한 모습이 그에 대한 반감이 생기지 않도록 해준 것 같다. 잔잔한 물결이 치는 파도 섬의 모습은 마치 우리 두 사람의 설레는 마음 같았다. 그렇게 우린 그날 파도 섬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에 대해서, 그리고 미래의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생각하게 되었고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면서 자연스럽게 내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잡아가는 사람이 생겼다.

사랑은 그렇게 시작됐다. 신두리 신혼여행 중 일몰을 뒤로 하고. ⓒ민솔희

[민박집 러브스토리]-③사랑나무 키우기------다음번에 연재됩니다.

*'민박집 러브스토리'는 민솔희씨와 박종균씨의 러브스토리를 줄여서 만든 말입니다. 에이블뉴스는 민솔희씨와 박종균씨가 직접 쓰는 민박집 러브스토리를 총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검도7단의 검도관장 민솔희와 척수장애1급의 박종균. 결혼이야기는 민(양)박(군)집 러브 스토리로 이미 알려졌다. 지금은 천안 나사렛대학교에서 더 많은 장애인들과의 희망 이야기를 꿈꾸며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강의를 하고 있다. 장애인여행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장애인체육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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