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갓 결혼한 농아인 부부가 있었다.

결혼하여 처음으로 장모님 생신을 맞이하게 되었고 아내는 남편에게 어머니께 드릴 싱싱하고 예쁜 꽃을 사오라고 부탁을 한다.

일을 마치고 꽃집에 들린 남편은 마침 싱싱하고 예쁜 꽃을 골라 한아름 사들고 장모님 댁으로 갔다.

사위가 사들고 온 꽃다발을 보는 순간 장모님을 비롯한 처가 가족들의 아연실색하는 표정에 영문을 알지 못하는 남편이 당황하고 있을 때 때마침 들어온 부인은 “당신은 어떻게 우리 어머니 생신에 흰 국화꽃을 사 올수가 있어 ?” 라고 물었고, 부인의 다그침에 남편은 더욱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흰 국화꽃은 살아있는 분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분에게 바친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농아인 남편은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실화가 드러내는 단면은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대다수 농아인이 청인 가족안에서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한 채 성장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이 주고 받는 소소한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우리 사회의 문화와 관습 등에 대한 것들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상실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하게 되는 귀동냥을 전혀 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게 된다.

내가 농사회에 발을 디딘지 올해로 29년째가 되었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농사회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어를 뽑자면 그것은 바로 “귀동냥”이다.

농아인을 만나기 전에 귀동냥은 들어도 그만 안들어도 그만인 사소한 것이었다. 그러나 농아인을 만나 그들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가장 소중한 단어가 “귀동냥”이 되었다.

많은 농아인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바로 누구나 주워 듣는 “귀동냥”이 없는 것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장모님 생신날 흰 국화꽃을 사들고 간 농아인도 그 누구에게서도 귀동냥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청인들이 보기에 이해 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어느 사위가 그러한 상식을 알면서 장모님 생신에 흰 국화꽃을 들고 갈 수 있겠는가.

청인들이 수십년간 들어온 귀동냥을 전혀 못들었다고 상상해 보라. 그들 중 누군가는 예외 없이 장모님 생신에 흰 국화꽃을 사들고 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것일까?

바로 농아인이 “눈동냥”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가족 중 누군가는 농아인 가족에게 글이나 수화로 가족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같이 공유하고 청인 자녀가 아는 일들은 농아인 자녀도 알 수 있도록 해주고, 사소한 정보라도 농아인들이 볼 수 있게 해주는 사회, 모든 음성 정보를 자막과 수화로 안내 해주는 사회, 우리 농아인들에게는 “눈동냥”이 절실하다.

언제 어디서든 “눈동냥”이 제공될 때 비로소 우리 농아인들에게 기회와 자유의 날개가 펼쳐질 것이다.

*한국농아인협회 이미혜 사무처장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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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혜 칼럼리스트
한국농아인협회 사무처장으로 근무했다. 칼럼을 통해서 한국수어를 제 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들이 일상적인 삶속에서 겪게 되는 문제 또는 농인 관련 이슈에 대한 정책 및 입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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