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천 경사로 난간에 나붙었던 현수막. ⓒ박정혁

“어린 학생과 발달장애인은 공존할 수 없다! 시교육청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교육청인가?”

내가 활동하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실 근처에서 흐르는 정릉천으로 내려가는 경사로 난간에 나붙은 현수막에 쓰인 문구다.

이 현수막은 발달장애인직업능력개발훈련센터(가칭 커리어월드)가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몇몇 주민들이 설치한 것이다.

바로 그 현수막 근처에 성일중학교가 있고 커리어월드는 이 학교 내에 노는 건물을 개조해 건립할 계획이었다.

서울시교육청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공동으로 설립, 운영할 예정으로 지난 9월 계획을 발표하고 주민간담회를 열고 착공하려고 했으나 일부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무기한 연기 된 상태다.

지난 2일 성일중학교 체육관 2층에서 열린 '6차 주민간담회'에 나는 센터 소장, 직원들과 함께 주민간담회에 참석했었다.

성일중학교 체육관은 워낙 낡은 건물이어서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그래서 전동휠체어를 타는 나와 소장님은 몸과 휠체어가 분리되어 학교 교직원들과 간담회 관계자들에게 몸을 맡긴 상태로 겨우겨우 간담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여러 신문지상에서 보도되었듯이 100여명의 학부모들이 들어와 단상을 점거하고 결사반대를 외치는 바람에 간담회는 열리지 못했다.

입맛이 썼다. 반대하시는 학부모들의 입장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분들의 주장대로 공사를 추진하기 전에 먼저 이곳 주민들의 동의절차가 필요했었다. 그러나 백번을 양보해서 생각해봐도 그날 주민들의 행동은 납득이 되지는 않았다. 최소한 예의는 지켰어야 했다. 그 자리는 분명 주민설명회 자리였다. 성일중학교가 위치한 제기동엔 약 5만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곳에서 반대하시는 학부모님들이 제기동 주민 전부의 대표는 아니다. 그런데도 그분들은 힘을 앞세워 주민간담회를 취소시켜 버렸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입으로 ‘님비’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장애인을 ‘혐오’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다만 남녀공학인 성일중학교 안에 서울커리어월드가 들어서는 것만은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분들에게 “왜?”라고 묻고 싶다. 그분들은 발달장애인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발달장애인 친구들이 혹시나 성일중학교 학생들에게 몹쓸 짓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또 그런 센터가 들어섬으로서 그 일대가 우범지대가 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것 같다.

전자의 경우는 만의 하나 겨우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후자의 경우는 완전 소가 웃을 일이다.

결코 일어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 꾀를 부릴 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다양한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범지대라 함은 같은 부류의 친구들끼리 어울리며 소위 ‘놀아야’ 하는데 그 친구들은 그렇게 어울려 놀 줄 모른다.. 놀아도 초등학교 저학년 친구들 수준이라고 봐야할까?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왜 사서 걱정하는지 모르겠다.

작년 한해와 올해까지 인권강의를 다니면서 적지 않은 학교를 가보았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수업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 학생들의 눈에는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학생들에게는 다만 생소함과 호기심만 있을 뿐이다. 나와 학생들은 서로 모습이 다르다. 수업이 시작되면서 생소함과 호기심 가득한 눈빛들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수업이 진행됨에 따라서 그 생소함과 호기심 짙은 눈빛들이 생글생글한 웃음으로 서서히 바뀌어 나간다. 수업이 끝나도 나와 학생들의 모습은 같아지진 않는다.

다만 학생들과 나는 이 땅을 살아가는 인권을 가진 존재로서 ‘우리’라는 존재로 함께 서로를 존중하고 존중 받으며, 공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함께 배운다. 발달장애인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제기동 성일중학교 안에 세워질 서울커리어월드가 결코 발달장애인만을 위한 직업센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게는 성일중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에게 공존을 배우는 학습장이 될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이 지역 주민들과 지역사회에 장애인과 비장애인, 아니 이 지역을 함께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더 할 나위 없는 공존을 배우는 학습의 터가 되리라 확신한다.

장애인은 어디서 갑자기 생겨난 존재가 아니다. 항상 우리들과 함께 살아왔고 함께 숨 쉬는 존재들이다. 집값을 떨어뜨리는 존재도 아니고 위험한 존재는 더더욱 아니다. 보통의 사람들과 똑같이 기쁘면 즐거워하고 슬플 땐 울고 싶고, 놀고 싶고 일하고 싶다. 서울에는 수백 또는 수천에 직업학교들이 존재한다. 모두가 비장애인 학생들만의 직업학교다. 그런데 발달장애인을 위한 직업학교는 서울지역 어디에도 없다.

장애인들도 직업이 있어야 한다. 특히 발달장애를 가진 분들은 배우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한번 제대로 배우기만 하면 여느 능숙한 숙련공보다 열심히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들에게도 커리어월드 같은 직업센터가 더더욱 필요 하다. 글 서두에 언급 했던 몹쓸 놈의 현수막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대신 아래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보고 싶다.

“어린학생과 발달장애인은 공존할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배우고자하는 모든 이들의 교육청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에이블뉴스 독자 박정혁 님이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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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혁 칼럼리스트
현재 하고 있는 인권강사 활동을 위주로 글을 쓰려고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며 느꼈던 점, 소통에 대해서도 말해볼까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장애인자립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경험들과 장애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융화되기 위한 환경을 바꾸는데 필요한 고민들을 함께 글을 통해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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