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장애2등급제’가 무엇인지 설명해야 한다. 장애등급제는 종전 1급에서 6급에 이르는 마치 공무원 직급과 같은 분류로 되어 있었고, 이러한 차별적 지원에 대하여 급수를 막론하고 불만이 있었던 장애인들은 서울 광화문 지하보도에서 농성을 이어왔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약속했고, 그 이후 농성은 막을 내렸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행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입법부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정치적인 힘을 갖게 되었다.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행정부의 조치는 장애등급의 점진적인 폐지였다. 현행과 같이 ‘정도가 심한 장애인’과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나누어 장애등급제를 존치 시킨 것이다. 나는 이것을 ‘장애2등급제’라고 부른다. 이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장애등급제를 폐지”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농성을 마친지 어느덧 9주년을 넘겼다. 그리고 다음 대통령은 10주년을 맞이할 참이다. 장애등급제 폐지, 탈시설을 위한 지원, 장애등록 과정에 있어서의 어려움, 장애인활동지원에 대한 보다 유효한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아직까지 이어져 오는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에 참여하기까지 후보들이 장애인 정책에 대한 고민을 보고 싶어서 그들의 공약을 비교해보았다.

배신감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병원 진료를 받고 약이 나오는 시간 사이에 카페에서 읽어보던 것이 아니라, 집이었다면 욕지거리를 하며 펑펑 울 것 같았다. 어떤 후보도 명시된 장애인 정책 공약을 내놓지 않았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점진적으로 개선’한 ‘장애2등급제’에 대한 반성이 당 내에서 미진함을 넘어서, 대통령후보 경선 입후보자로서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고민이 일절 없었음을 보여주었다.

농성을 접고, 희망을 가진 것은, 이 고질적인 병폐를 고쳐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에 대한 감사였다. 이제는 그 의지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후보 중 유일한 장애인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홍보물 등에서 자신의 중도장애를 강조하며, 약자에 대한 보호를 강조하지만, 정작 그는 장애인으로서 장애인 동료들에 대한 고민을 하는 대신, 그것을 정치적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에 그쳤다는 점에서 더욱 배신감이 든다.

이낙연 후보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후보를 밀어내기 위한 다양한 정치적 테크닉을 구사하면서, 정책은 안중에도 없었다. 안그래도 정치가 스포츠가 되어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에, 프로레슬러의 연기처럼, 정책은 없고 권모술수의 싸움판으로 이끌어낸 이낙연 후보에게도 염증을 느낀다.

그나마 유력한 후보 둘이 이렇게 무관심 일변도로 선거스포츠에 열중하는 상황에서 ‘정권 재창출’이 장애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장애인위원회를 보유한 정당에서 이정도로 장애인에 대한 고민이 없어도 되는 것인가? 나는 다시 천막을 치고 반성을 촉구한다 하더라도 후보와 당이 반성하고 돌아올 수 있을지도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재명 후보의 성장, 기회, 분배, 주택 및 금융, 이낙연 후보의 ‘신 복지’ 및 승자독식 혁파, 박용진 후보의 ‘일 하는 사람, 투자하는 기업, 성장하는 대한민국’, ‘국민자산 5억 성공시대’, 추미애 후보의 ‘불공정’ 개혁 등은 보통사람들을 위한 정책이다.

‘보통 사람’들의 표심을 잡으면 승리할 수 있다. 승리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장애인 정책은 이번에도 늘 그래왔듯 뒤로 밀렸을 것이다. 다른 것이 포퓰리즘이 아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외치며, 소외되는 이들에게 손 내밀지 않는 정치가 포퓰리즘인 것이다.

그나마 위안거리를 찾자면, 박용진 후보와 추미애 후보의 경우 원론적인 수준이고, 부족하다못해 엉성하지만 고민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박용진 후보의 ‘적극주의 복지’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무엇에 대비하여 ‘적극주의’라고 이름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박용진 후보가 제시한 ‘복지행정 통합 플랫폼’은 현재의 복잡한 서류를 요구하는 복지 체계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당초에 문제가 되는 것은, ‘신청주의’로 대표되는 복지 수요에 대한 정부의 고압적 태도이다. 복지행정의 통합은 이미 충분한 수준으로 올라와 있다. 그럼에도 통합이 필요하다면, 적어도 외부의 입장에선 알 수 없으므로, 필요하겠구나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복지의 사각을 해소하기 위한 궁극적인 해결방법은 국가가 취약계층을 향해 자신의 취약성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잘못된 절차의 폐기이다. 선지원 후감사, 혹은 적극적 감사의 요구 등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도 아주 기초적인 수준에서 제시되는 대안일 뿐이다.

나는 박용진 후보가 지적하고자 했던 점이 이런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장애진단서를 떼는 비용이 들어가는 것, 근로능력평가용 진단서를 발급받기 위해서도 상당 비용이 들어가는 현실은 복지 수요를 복지자원으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을 넘어, 사회의 정글화를 방기 하는 것이다. 이런 정글과 같은 사회를 고쳐나가는 것이 정치인들의 소명 아닌가.

추미애 후보의 경우, 다소 모호한 측면이 있지만 보편적 복지의 확대와 집중적 복지의 강화를 통한 복지사각 해소를 공약으로 제시한 점에서 그나마 복지정책에 대한 고민이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모호함은 나에게 추미애 후보의 장애인 정책 관련 고민의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자아내게 했다. 불과 수개월 전 추미애 후보가 “외눈” 발언을 한 것을 고려했을 때 더욱 그런 것이다.

당에서 경선이 계속되고 있고, 나에게도 그 표를 행사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후보들이 이전에 정부에서 보여준 것보다 퇴화된 수준으로 고민하거나, 안중에도 안 두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상, 누가 당선되어도 절망적인 상황이 될 것이라는 참담함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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