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0일에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하고 왔다. 접종장소는 내가 사는 동네 새로 생긴 실내 체육관이었다. 조금 창피한 일이지만 체육관 가는 길을 조금 헤맸다.

나는 내가 사는 동네 지리를 구석구석 알지 못한다. 늘 다니는 길만 안다. 지도 앱을 보고도 헤맬 때가 많아서 길 안내해주는 로봇이 개발되었으면 좋겠다고 상상한 적이 많다. 20년 넘게 지내온 동네 길도 이렇게 헤매는데 접종하는 곳 가서는 더 헤매지 않을까 걱정했다.

입구에서 체온 측정을 하고 QR코드를 찍고 신분증을 보여주고 안내받은 3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공원만큼이나 넒직한 체육관에 행사장에서 보던 천막이 줄지어 있었다. 본인 확인하고 안내문과 예진표 받는 곳, 예진표 작성하는 곳, 진찰받는 곳, 예방 접종하는 곳, 접종 마치고 전산 등록하는 곳, 접종 끝나고 대기하는 곳. 주사를 맞기 위해 들려야 할 곳이 설치된 천막 수만큼 이라는 걸 곧 알게 되었다.

다행히 가는 길마다 안내 표지판이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안내표시가 정말 잘 되어 있었다. 벽뿐만 아니라 바닥에도 화살표가 붙어 있었다. 화살표를 보고 따라가기만 하면 됐었다. 거기다가 안내해주시는 분들이 동선마다 계셨다. 헤매고 싶어도 헤맬 수가 없었다. 낯선 곳에 혼자 가서 우왕좌왕하지 않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안내표시와 안내해주시는 분들이 안 계셨다면 엄청 헤맸을 것 같다. 성급한 마음에 예진표를 받기도 전에 접종받는 곳으로 가려는 등 갖은 실수를 연발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처럼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았을 테다.

예진표가 조금 더 작성하기 쉽게 되어 있었다면, 내가 예진표 작성을 끝냈을 때 근처에 계셨던 안내원 중 한 분이 나에게 '아이고 잘했네'라는 말만 하시지 않으셨더라면, '여기가 바로 내가 꿈꾸던 유토피아'라고 외칠 뻔했다.

무엇보다 다들 혼자 오는데 발달장애를 가진 나에게만 혼자 왔느냐는 말을 아무에게도 듣지 않아서 기뻤다. 나는 이날 경험이 너무 좋아서 모임 단톡방에 글을 남겼다.

'우리도 이제 어디든 혼자 다닐 수 있는 세상이 오려나 봐요.'

혼자 가게 되더라도 걱정 붙들어 매셔도 된다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이날 경험이 부디 내가 사는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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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 칼럼니스트 평범한 직장인이다. 어릴 때부터 글을 꾸준히 써왔다. 꼬꼬마시절에는 발달장애를 가진 ‘나’를 놀리고 괴롭히던 사람들을 증오하기 위해 글을 썼다. 지금은 그런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발달장애 당사자로 살아가는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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