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3일에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치러졌다. 시각장애 1급인 나도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아내의 손을 잡고 투표소로 갔다. 아내가 받아 든 투표용지를 받고 기표소에 들어간 나는 아연실색 했다. 투표보조용구에 후보자 이름도 정당명도 없이 단 1.2.3...등등 후보자 기호만 달랑 적혀 있었다.

시각장애인을 천재로 아는지 시장,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정당선택, 국회의원 등 그 많은 후보와 정당을 어떻게 기억하고 외워서 기호만 보고 투표하란 말인가?

시각장애인 혼자서는 자기가 원하는 후보에게 투표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교육감 후보는 정당이 없어 후보자 이름이 기재 되어 있어 혼자서 투표할 수 있었다. 참고로 투표보조 용구란 시각장애인이 타인의 조력 없이도 혼자서 기표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표 보조용구다.

선거의 4대원칙은 보통선거, 평등선거, 직접선거, 비밀선거다. 이러한 4대 원칙 중 하나라도 위배되면 그 선거는 원천 무효가 아닌가?

그런데 이번에 배포된 시각장애인용 투표보조용구에는 후보나 정당의 기호만 나열되었지 후보자 이름이나 정당명이 전혀 없어 시각장애인이 자력으로 투표하기란 불가능했다. 직접선거도 비밀선거도 할 수 없는 선거를 했다. 부득이 가족이나 활동보조인 또는 시각장애인이 믿을만한 사람을 지정해서 투표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선거법에는 시각장애인이 요청하는 경우 투표를 할 때 가족이나 다른 조력자를 동반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이 가족이 아닌 조력자를 대동하면 기표소에 참관인 2명을 함께 들여보낸다. 그 조력자가 시각장애인이 호명하는 후보에게 기표하지 않고 임의대로 기표할까 봐서이다.

이념과 정당 후보 선호는 부부간에도 다를 수 있고 가족과 친한 친구 사이에도 다를 수 있다. 이번 6.13선거와 같이 시각장애인이 독자적으로 투표를 할 수 없어 부득이 가족에게 나의 비밀스런 정치성향을 밝혀야 하는 경우는 그나마 가족이라 참을 수 있다 하더라도 타인을 동반한 시각장애인은 적어도 3명 앞에서 내가 기표할 후보를 밝히고서야 투표할 수 있다. 참으로 황당하고 원통하고 모멸감이 든다.

한 가지 더 있다. 투표보조용구를 쓰는 경우 보조용구에는 누구에게 기표했는지 인주 자국이 남는다. 그러니 이 용구를 관리하는 사람도 시각장애인이 누구를 선택했는지 훤히 안다. 그래서 한 번 쓴 보조용구는 폐기하고 시각장애인이 올 때 마다 새 보조용구를 교체해 주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다.

언제까지 시각장애인은 직접선거와 비밀선거의 권리를 유린당해야 하는가?

장애인인권법을 논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장애인 인권 침해에 대해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장애인이 투표율이 낮다고 비난하기 전에 장애인도 자유롭게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서 장애인에 대한 더 이상의 권리 침해가 없기를 바란다.

*이 글은 울산광역시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 이윤동 회장 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