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한 단식농성에 나서고 있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안진환 상임대표. ⓒ에이블뉴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안진환 상임대표와 사람사랑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상호 소장이 지난 21일부터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 천막에서 장애인 생존권예산 쟁취 및 박근혜정권 퇴진을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현재 단식농성 10일째를 맞고 있다. 안진환 상임대표가 단식농성장에서 편지를 보내왔다.

K형께…

마침내 또 새벽입니다. 천막 입구를 틀어막아둔 차양의 찢어진 한 귀퉁이에서 손바닥만한 햇살 한 줄기가 비추입니다. 그 옹색하고 작은 빛줄기조차 새삼스럽게 반가운 새로운 날의 시작입니다.

K형, 이제 곡기를 끊고 이 천막 안에 스스로를 가둔지 열흘째를 맞습니다. 눈을 뜨기조차 버거울 만큼 배고픔은 몸뚱이를 짓누르며 항복을 종용하지만 오히려 정신은 더욱 맑아져 세상을 향한 우리들의 이 싸움이 헛된 몸부림으로 끝나지 않도록 결기를 다집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심지어는 장애계 내부에서도 묻습니다. 왜 이런 싸움을 시작했냐고, 왜 위험천만하게 곡기를 끊은 채 이 추운 천막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느냐고 말입니다.

어떤 이는 또 어리석은 싸움을 시작했다고 비웃었으며, 또 다른 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등 굵직한 사회적 이슈에 당신들의 싸움은 가뭇없이 묻힐 뿐이라고 전략의 실패를 따졌습니다.

그분들의 지적과 비판처럼 어쩌면 저희는 실패가 자명한 무모한 싸움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K형, 하지만 말입니다. 저는, 아니 우리 장애인당사자들은 평범하고 소박하게라도 살아야겠기에 이 무모한 투쟁을 시작했을 뿐입니다. 생존하고자 하는 갈급한 욕망이 우리를 이 엄혹한 추위 속에 천막을 짓고 70일 가까운 동안 농성을 벌이도록 내몬 현실은 왜 돌아보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2017년 장애인복지정책예산은 약 1조9,413억 원으로 2016년(추경예산 포함) 대비 약 1.2% 감소했습니다. 박근혜 정권 들어 낮은 증가율의 기록 경신은 해마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먼저 대표적인 소득보장정책인 ‘장애인연금’과 ‘장애수당’의 경우, 각각 ‘전국소비자물가상승률(0.7%)’과 ‘장애인 감소’를 이유로 동결 내지는 삭감했더군요. 해괴망측한 논리입니다.

정부는 장애가구의 빈곤율(34.5%)이 전체가구 빈곤율의 2배 이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월 216,000원)을 보전해야 하는 ‘장애인연금 부가급여’와 ‘장애수당’은 부끄러울 정도의 낮은 금액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연금 기본급여’를 200원 인상하며 할 만큼 했다는 자세는 후안무치의 극치입니다.

아시다시피 장애인복지비 지출비율과 장애인연금을 비롯한 현금급여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한국·터기·멕시코의 3파전)의 영광을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둘째,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개선방안과 수가의 현실화에 등을 돌리는 안이한 태도를 짚어야겠습니다. 활동지원제도의 세 축인 장애인(서비스대상자), 활동보조인, 활동지원기관은 꽤 오래전부터 ‘구인난으로, 저임으로, 각종 노동분쟁으로(낮은 단가로 인한 근로기준법상 제수당지급 위반 등의 구조적 귀결)’ 인해 갈등의 진앙지 였습니다.

참 대단하게도 활동지원 단가는 요지부동 9,000원(보건복지위원회 심의결과 9,800원 인상되긴 했으나)으로 동결됐습니다. 중증장애인의 대표적인 사회서비스인 활동지원제도는 천천히 고사할 위험에 직면했습니다. 신규 서비스대상자의 유입은 막히고, 저임으로 인해 서비스의 질이 악화되고, 활동보조인의 연령은 점점 높아져 급기야는 노인들의 소일거리로 전락해 ‘나쁜 일자리’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셋째,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외치는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은 작년에 이어 속절없이 깎였고, 여성장애인 예산은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몰아쳤으며, 발달장애인과 척수장애인의 예산도 싹둑 잘라버렸습니다. 장애인 중에서도 으뜸으로 약한 연결고리라 할 최취약 계층에게 유독 무지막지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장애인의 건강권을 외면한 의료비지원 삭감, 아울러 장애인일자리 사업을 시간제 일자리로 전환시켜 빈곤의 사슬은 더욱 강력해질 것입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이 참혹한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싸워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시작된 투쟁입니다. 70일 동안 기자회견을 하고, 밤샘천막농성을 벌였으며, 수백 명의 중증장애인들이 총궐기대회에서 도로를 점거했으며, 릴레이 1인 시위까지 벌였습니다.

K형, ‘반존엄, 반인권, 반생명’의 결정판인 장애인거주시설(이하 생활시설)의 위용은 하늘을 찌릅니다. 2년간 129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대구시립 희망원을 필두로 인강원, 남원 희망의 집, 가평 요셉의 집 등 생활시설의 부정과 부패, 비리는 법의 심판대가 너무 낮아 요리조리 잘 피해갈 뿐만 아니라 외려 재기의 기회를 사법부가 마련해 주는 서글픈 현실입니다. 생활시설을 발본색원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우리나라 복지권력·시설권력의 잔인성과 야만성을 단호하게 처벌하는 정의로운 세상과 조우하는 것은 과도한 꿈일까요? 대한민국은 멈춰야 합니다. 장애인의 노동을 착취하는, 임금을 갈취하는, 폭력이 난무하는, 인권유린을 일삼는 생활시설에 200억원 넘는 선물을 안겨주는 만행을요. 장애인이 목숨을 걸고 부르짖고 있는 탈시설과 자립생활의 꿈을 짓뭉개버리는 폭거를요.

11월26일 저녁에도 광화문 광장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대한민국을 능멸한 박근혜의 하야를 염원하는 200만명의 시민들이 모였더군요. 시민들의 손에는 내 나라 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결연함을 촛불로 하염없이 밝혔습니다. 물론 장애계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퇴진의 행렬에 250만명(등록장애인 인구)의 돌멩이가 이리저리 차이면서 굴러가고 커 갑니다.

그럼에도 청와대를 차지한 박근혜는 요지부동입니다. 어느덧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의한 경제피해액이 무려 35조나 된다는 군요. 최순실 일가가 박근혜의 비호 속에 불법으로 축적한 재산 규모가 5천억원을 넘어섰다지요. 그 엄청난 규모에 그저 헛헛한 웃음만 나오는 군요.

K형, 이제 저는 다시 천막 한 귀퉁이에 남은 햇살 아래 좀 누워야겠습니다. 몸은 어느새 허기를 잊은 듯 더 이상 배고픔을 느끼지 못합니다. 다만, 옅은 미열과 숨 쉴 때마다 치미는 마른기침이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부디 이 단식이 끝나면 이 땅의 장애인들이 안도의 한숨이라도 내쉬길 바랄 뿐입니다. 저의 넋두리 끝까지 들어주어서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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