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쉬고 싶어요.”

제주장애인보치아연맹에서 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내게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다. 다름 아닌 보치아 선수들이 나에게 깊은 한 숨과 함께 하는 소리다.

뇌병변장애인과 신체 근육장애인들을 위한 스포츠인 보치아는 선수들이 모두 중증장애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증장애인들로 이루어져 다른 종목의 선수들과는 달리 직장인이거나 꾸준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안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환경적 장벽으로 인하여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들에게 있어 보치아 연습시간은 거의 유일한 사회활동인 셈이다.

하지만 연맹에 소속된 코치인 나로서는 이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보치아 연습 때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선수들에게 제대로 된 연습 공간이나 충분한 연습시간을 제공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나의 태만이 아니라 환경적인 원인을 갖고 있다.

전국적으로 장애인체육 시설은 무척이나 열악하다. 하지만 제주 지역은 그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열악한 상황이다. 연습 공간과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그 때마다 여기저기 알아봐야 겨우 마련하거나 그러지 못해 체육시설이 아닌 곳에서 연습을 해야 하는 웃지 못 할 상황도 종종 일어난다.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 전국단위의 대회에 참가하게 되면 타 지역 선수들과 자연스레 비교가 된다. 타 지역 선수들은 어디서 주로 연습을 하는지, 확보된 공간과 시간은 있는지, 다들 열악한 환경을 탓하지만 우리 제주선수들은 그들마저도 부러울 따름이다. 그래도 매일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어 있고, 얼마든지 시간 조절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적 조건의 차이 속에 제주선수들과 타 지역 선수들 간의 격차는 적잖이 크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될수록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고, 이 순간에도 그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선수들 중에는 전국 랭킹 10위 안팎을 유지하고 있는 선수도 있다. 충분한 공간과 연습시간이 보장이 되고, 여러 대회에 출전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된다면 더욱 상위 랭킹으로 진입을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선수 역시 나에게 이제는 쉬고 싶다고 한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게 한 것일까.

다름이 아닌 대회 출전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다. 대회 출전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은 선수들의 동기부여를 빼앗아 갈뿐더러 보치아에 대한 의욕마저 사라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매년 대한장애인보치아연맹에서 주관하는 대회는 전국장애인체육대회를 제외하면 3개 정도가 고작이다. 하지만 일 년에 딱 3번 있는 대회를 참가하기 위해서는 제주장애인체육회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정작 제주장애인체육회는 매년 예산을 핑계로 선수들의 대회 참가를 가로막고 있다. 아무리 상황을 설명을 해도 요지부동이다. 항상 같은 대답만 할뿐.

제주장애인체육회에서는 종목별로 정확한 지원체계를 정해 놓지 않고 있다. 이들의 종목별 지원기준은 다름 아닌 ‘성적’이다. 전국대회에 참가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면 많은 지원을 해주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당연히 그 반대이다. 많은 지원을 받고 싶으면 좋은 성적을 가져오라는 식이다.

너무나도 유동적이고 결과 위주의 지원체계는 체육인이 처한 환경과 과정은 철저히 배제한 채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선수단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체육회 자체의 명예만을 생각하는 졸속한 지원체계라고 할 수 있다. 폭넓은 제주장애인체육의 보급과 저변확대를 위한 행정을 해야 하는 제주장애인체육회가 스스로가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것이다.

제주장애인체육회는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애인체육인들이 있기 때문에 존립할 수 있는 것이다. 제주장애인체육회가 있어서 장애인체육인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제주 지역의 장애인체육진흥과 지원 육성을 목적으로 하는 제주장애인체육회는 이를 망각한 채 지금과 같은 엉터리 지원체계로 인하여 더 이상 보치아 선수들과 같이 체육 활동을 포기하려는 장애인체육인이 나오지 않게 하여야 할 것이다.

*에이블뉴스 독자인 제주도장애인보치아연맹 코치 유용한 님이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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