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어낸 이야기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예전에 동네를 아무리 헤메봐도 문턱없는 음식점을 찾을 수 없음에 분개(?)하여 이런 카페(주인)가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싶은 희망사항을 적어두었던 것입니다. 이 글을 보완하여 독립영화를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영화 만드시는 분들은 유심히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브리핑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고객의 사무실을 나선 정욱은 긴장이 풀린 탓인지 시장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아침까지 굶고 집을 나왔기 때문에 뭐라도 먹어야겠다 싶어 음식점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그러니까 문턱이 없는 음식점은 찾을 수가 없었다.

정욱이 10번째로 찾은 곳은 문턱이 10cm인 작은 카페였다. 정욱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어떻게든 여기서 해결하고 싶었다. 유리로 된 창을 들여다보니 카운터에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앉아있었다. 정욱은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애절한 표정으로 손짓을 했고 이윽고 아주머니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정욱: (미안한 듯) “저, 죄송한데 부축 좀 해주시겠어요?”

아주머니:(친절하게 미소를 지으며) “잠깐 기다려 봐요, 총각.” (문을 열고 안을 향해 남편을 부른다.) “여보! 잠시만 나와 봐요.”

아저씨: (잠시 후, 아저씨 나오며) “왜 그래?”

아주머니: (아저씨를 보고 )“여보, 이 총각 좀 부축해서 안에 의자에다 앉혀줘요.”

아저씨: “응, 휠체어가 못 들어와서 그러는구나!” (정욱을 데리고 들어와 창문 옆자리에 앉혀준다.)

정욱: (친절한 부부가 참 고맙다.) “감사합니다. 저, 돈가스 하나만 주세요.”

아주머니: (아저씨는 주방으로 들어가고 아주머니, 정욱 앞에 앉아 말을 건넨다.) “이렇게 혼자 다니면 불편하지 않아요?”

정욱: “아! 예, 좀 불편하긴 해도 많이 익숙해 졌고 같이 다닐 사람도 없는걸요.”

아저씨: (잠시 후 아저씨가 직접 돈가스를 가지고 와 아주머니 옆에 앉으며 농담을 한다.) “이 아줌씨는 그저 총각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니까. 아, 앉아서 수다만 떨지 말고 좀 썰어주구랴.”

아주머니: (돈까스를 썰며) “이 양반은 수다를 나보다 더 떤다우.”

아저씨: (정욱에게) “근데, 총각 타는 저 휠체어가 지 혼자 가는 거 맞지?”

정욱: “아, 예.”

아저씨: “한번 만땅으로 충전하면 얼마나 가나?”

정욱: “글쎄요, 가기 나름이죠 뭐. 한번도 시간이나 거리를 쟤 본 적이 없어서...”

아주머니: “근데, 총각 이름이 뭐야?”

정욱: “정욱이요, 한정욱. 그냥 욱이라고 부르셔도 되구요.”

아저씨: “무슨 일로 나온 건데? 돈가스 먹으러 일부러 나왔을 리는 없고, 혼자 밥 먹는 걸로 보니까 데이트도 아니고….”

정욱: (미소 지으며) “예, 일 때문에 누구 좀 만나고 가는 길이었어요. 근데 우리 동네는 휠체어가 갈 수 있는 곳이 성당이랑 관공서밖에 없는데 이 동네도 그러네요.”

아저씨: (한숨을 쉬며) “그러게 말이야. 우리 집부터도 그러니…. 총각, 미안허이….”

정욱: (손을 가로 저으며) “아니죠. 아저씨가 저한테 미안하실 건 없죠.” (밥을 다 먹고 난 후 정욱, 지갑을 꺼내며)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얼마죠?”

아주머니: “응, 6천원.”

정욱: (6천원을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아우, 싸네요. 써비스가 너무 좋아서 한 만 이천 원쯤 될 줄 알았는데….”

아주머니: (웃으며) “욱이 총각은 농담도 잘하네.”

그로부터 한 달 후. 정욱은 고객에게 제품(홈페이지) 사용법을 설명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오늘은 배는 그리 고프지 않았지만 한 달 전 그 카페에 다시 가고 싶었다. 돈가스의 맛보다도 그분들의 친절이 그리웠던 것이다. 그 카페 앞에 다다른 정욱은 약간의 놀라움과 흐뭇함이 느껴졌다. 그 카페 문턱 앞에 베니합판으로 만든 경사로가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정욱: (아무 불편 없이 카페 안으로 들어가 카운터에 앉아있는 아주머니에게 꾸벅 인사를 한다) “아주머니, 저 왔어요.”

아주머니: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어! 욱이 총각 왔네!”

정욱: “어! 제 이름 기억하시네요?”

아주머니: “아 그럼, 욱이 총각을 어떻게 잊나? 그래 오늘도 돈가스?”

정욱: “네.”

아주머니: (주방을 향해서) “여보! 욱이 총각 돈까스 하나.”

먼저 앉았던 자리를 보니 ‘휠체어 지정석’이라는 문구와 함께 4인용 테이블인데 의자는 2개뿐이다. 정욱이 의아해 하고 있는데…. 주방에서 아저씨 나오며 인사한다.

아저씨: “욱이 총각, 들어올 때 어땠어?”

정욱: “편했어요, 아저씨가 직접 만드신 건가봐요?”

아저씨: “별로 어렵지 않더라고, 합판 한 장이랑 각목 몇 개로 되던데….”

정욱: “재주가 좋으세요. 어떻게 그런 신통한 생각을 하셨어요?”

아저씨: “그거 좀 귀찮다고 단골손님을 놓치면 안 되지….”

정욱: “제가 언제 다시 올 줄 알구요?”

아저씨: “휠체어 타는 사람이 어디 욱이 총각뿐이겠어?”

정욱: “그럼, 이 테이블에 의자 2개도 의미가 있겠군요?”

아저씨: “응, 휠체어가 동시에 4대가 들어올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정욱: “전 이 문구도 참 맘에 드네요. 장애인 지정석이 아니라 휠체어 지정석.”

아저씨: “응, 의자가 필요 없는 건 휠체어지 장애인이 아니거든.”

정욱: “아저씨 같은 분이 있어서 저 같은 사람들이 힘이 나요. 어떤 곳에 가면 장애인이라고 음식 값을 깎아주거나 아예 안 받는 곳이 있는데 물론 그 마음이야 감사하죠. 하지만 그런 집은 오히려 잘 안 가게 되더라고요. 음식을 공짜로 주는 것 보다 문턱을 없애주는 것이 저희는 더 고맙거든요.”

정욱은 돈가스를 맛있게 먹고 카페를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흐뭇하다.

*이 글은 에이블뉴스 애독자 강병수님이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을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연락을 주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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