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방학이 되면 난 매번 시골 할머니 집으로 보내졌다. 식구가 많은 탓에 누군가는 할머니 집으로 가서 식구를 줄여야 했던 것이다. 엄마를 도와 일할 수 있는 언니들, 귀한 아들과 어린 동생들은 집에 남고 일손을 도울 능력도 없고 안보여도 크게 티 나지 않은 내가 선택된 것이다.

다행히 난 이를 엄청 즐겼다. 시골엔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집이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에 양쪽을 오가며 집에서 받지 못한 사랑을 느껴보기도 했다. 근데 안타까운 것은 친구가 없었고 나의 놀이터는 우물가였다.

우물가에 가면 항상 이웃집 아주머니들이 모여 빨래도 하고 음식을 위한 준비도 하고 씻기도 하셨다. 현재 우리의 다용도실이었던 것이다. 두레박으로 우물을 길어 올리며 물을 썼는데 어느 해부터 펌프가 설치되었다.

펌프질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중요한 부분이 바로 작은 바가지에 물을 부어 펌프물을 끌어 올리는 작업이다. 몇 번 물을 붓기를 반복하면 말 그대로 콸콸 물이 쏟아지며 좀 더 편안하게 물을 쓸 수 있었다.

“마중물”

펌프질을 하기 전에 붓던 물을 이렇게 부른다. 물을 마중 한다는 뜻일까?

펌프에서 물이 잘나오기 위해서는 마중물을 한 번에 붓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조금씩 부어가며 동시에 펌프질도 하면서 나름 기술이 필요하다. 교육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나는 이를 경험, 본보기, 관심이란 단어로 바꾸어 보고 싶다. 우리 교육도 마찬가지다. 한 번에 완성되기는 어렵다. 많은 경험과 지속적인 관심 속에서 아동들이 가지고 있는 부분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아동들은 그들이 경험한 대로 세상을 인식하고 세상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영유아시기에 초기 양육자와의 관계 즉, 애착의 중요성은 강조되고 있다. 초기 양육자와 안정적 관계를 형성한 영유아는 세상을 참 믿을만하다고 신뢰하게 되지만 불안정 애착관계에 놓인 영유아는 성장 이후에도 사회적 관계형성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해리 할로(Harry Harlow)의 실험에서 확인했다. 어느 어미와 격리된 새끼원숭이는 차갑고 딱딱한 모형 철망원숭이에 우유병을 걸어놓은 방과 우유병은 없지만 철망을 헝겊으로 싸놓은 방 중 어느 방을 선택했을까? 새끼 원숭이는 따뜻함을 주는 헝겊원숭이의 방을 선택하였다. 결국 애착은 정서적인 만족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게 된다.

마중물과 초기 양육자와의 애착.

어린 영유아들은 세상을 어떻게 느낄까? 이들에게 마중물이 되어 줄 수 있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아마도 안정적 애착을 형성하도록 지지해주는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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