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농성장에서 서명인들을 기다리는 모습.모두가 외면했다.ⓒ에이블뉴스

최근 장애등급제 폐지가 탄력을 받고 있다. 장애계에서도 지난달 대토론회를 통해 폐지 의견을 압축했으며, 정부 측에서도 장애판정체계개편을 위한 기획단 첫 회의가 들어가는 등 폐지에 대한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중은 어떨까.

기자는 지난 8월21일부터 광화문역 아래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농성장을 찾았다. 16일 방문 시, 농성 239일 째로, 농성장에는 5명 정도의 활동가들이 이를 지키고 있었다.

'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임을 알리는 큰 천막과 함께, 앞쪽에는 서명을 받고 있는 긴 테이블, 맞은편에는 지난해 참변을 당한 고 김주영 활동가와 파주 장애남매의 영정 사진이 자리하고 있었다.

기자가 방문한 시간은 오전이었지만,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꽤 많았다. 전동휠체어에 앉아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중증장애인들은 이들을 향해 “장애등급제 폐지 서명 부탁드립니다!”, “서명 좀 해주세요!”라고 외쳤지만, 그들은 바쁜 걸음만 계속 했다. 힐끔 거리며 그들을 바라보긴 했지만 이내 걸음을 재촉했다.

한 중년여성에 다가가 장애등급제에 대해 물어봤지만 ‘잘 모르겠다’며 이내 걸음을 빨리하며 사라졌다.

농성 239일째, 어느 정도 서명이 진행됐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취합된 부분은 알 수 없었다. 농성장을 지키던 한 활동가는 “처음 8~9개월 전에는 어느 정도 서명을 많이 하셨다. 근데 이 곳 지나 다니시는 분들 중 하실 분들은 이미 하셔서 현재는 거의 서명하시는 분이 없다”고 말끝을 흐렸다.

그나마 서명한 사람들은 ‘힘내세요’라는 말 뿐이었다. 장애등급제 폐지에 대한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몸 불편한 장애인들이 고생하고 있으니까 선심 쓰듯 ‘망고쥬스’를 쥐어주는 꼴과 다르지 않았다.

고 김주영 활동가 영정사진 앞에 "힘내세요"라고 적힌 화분.ⓒ에이블뉴스

농성장에 있던 활동가도 “폐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시고 서명하시는 분들은 많이 없다. 그냥 해달라고 하니까 무작정 하시는 분들이 많고, 가끔 어쩔 땐 왜 해야 하냐고 따지는 분들이 있다”고 답변했다.

곳곳에 놓여있는 모금함에도 느낄 수 있었다. 텅 비어있는 모금함 속, 200원이 눈에 띄었다.

파주 남매 영정 앞에는 시들어버린 꽃만이 쓸쓸이 이들을 지키고 있었다. 등급제 폐지에 대한 탄력적인 논의와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이 같은 시선은 온라인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최근 한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장애등급제 폐지 기사에 많은 대중들은 박수를 보내기 보다는 ‘왜’라는 물음표를 제기하고 있다.

“국가에서 혜택 주기 위해서 저렇게 세분화해서 나눠 놓은 게 아닌가. 왜 뒤집으려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장애에 등급을 매긴 거지, 장애인에게 등급을 매긴 건 아니잖아. 그럼 공무원도 쇠고기인가” “장애등급에 따라 복지혜택 주는 걸 왜 소고기타령 하면서 폐지하잔거냐. 이해안감”

이중 가장 눈에 띈 댓글은 “그럼 새로운 방안이라도 던져놓고 폐지를 하지”였다. 앞서 장애인계는 지난달 대토론회를 통해 등급제 폐지에 대한 의견을 모았지만, 뚜렷한 대안을 도출해내지 못했다.

대안 없는 폐지에 일부 장애인들도 폐지를 반대하고 있지만, 장애계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핵심 단체들은 무조건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만을 피력하고 있다.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서는 대중들의 공감이 중요하다.

장애 인식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아직 대중들의 시선은 ‘망고쥬스’를 주는 것에 스스로 기특해하고 있다. 권리로써 등급제를 폐지하고자 한다면 이들을 공감을 이끌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역시 모두를 이해시킬 수 있는 확실한 대안 마련이 시급한 문제인 것이다.

복지부 ‘장애판정개편기획단’이 지난 15일부터 회의가 들어갔다. 오는 5월15일 두 번째 회의를 시작으로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구체적 논의에 들어간다고 한다.

“장애등급제 낙인을 벗어나 어떤게 장애인에게 유리한 건지 파악해서 다양한 문제들을 논의한다고 한다”는데, 그들이 타고 있는 배에는 꼭 대중들이 탑승해야 한다. 대중들을 공감시키지 못한다면 이것도 저것도 안되고 표류하고 말 것이다. 장애계는 반드시 대중들을 안고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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