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녁 설거지를 할 때면 언제나 마음이 바쁘다.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 시간이 되면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파서 빨리 끝내고 드러눕고 싶은 마음뿐이다.

타다다다다닥,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쁘게 그릇을 씻고 쓰레기를 비우고 그리고 헹주를 씻어 말려놓고 마지막으로 걸레까지 빤다.

사실 이것만은 남한테 공개하고 싶지 않는 우리 집의 비밀이지만, 이야기를 꺼집어내자면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은 다름 아닌 걸레를 싱크대에서 빤다는 것이다.

아무리 조심을 한다고 해도 걸레 속에서 나온 먼지가 음식물을 다루는 싱크대 주변에 묻을 것이고보면 나 역시 찜찜하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구부려 앉을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보니 어쩔 수 없이 싱크대에 서서 걸레를 빨게 된다.

가뜩이나 장애인인 주제에 작년에 교통사고까지 당해서 대퇴골절 수술을 한 이래로 쪼그려 앉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어릴 때는 발목을 두 손으로 잡고 오리처럼 뒤뚱뒤뚱 잘도 뛰어다녔는데, 변형된 다리를 펴주는 수술을 받은 이래로는 그런 잽싼 자세를 흉내도 낼 수 없게 되었다. 구부러진 다리는 반듯하게 펴졌지만, 생살과 생뼈에다 메스를 대고 못을 박아 억지로 다리를 쫙 펴놓고보니 다리가 전혀 힘을 받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걸레질을 할 때면 걸레로 바닥을 일차로 닦고, 이차는 내 엉덩이로 뭉개서 이중으로 닦는 깔끔이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빨래를 빨때는 엉덩이를 받치고 쪼그리고 앉아서 했는데 작년부터는 이것마저 할 수 없는 형편이 되어버린 것이다.

장애인이라면 앉아서 하는 일이 더 쉬운 걸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집안 일은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앉아서 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 그래서 가능하면 목발을 짚고 서서 일을 해치운다. 그러나 오래 서 있으면 발가락에 쥐가 나고 다리가 비틀리니까 어떡하든지 짧은 시간 안에 해치우기 위해서 기를 쓰는 것이다.

이렇게 설거지를 끝낸 나는 남편의 간식과 물컵을 채워서 남편 앞에 가져다 놓는다.

이제 끝~

그런데 이게 아니다, 맨바닥에 펄러덩 앉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또 있다.

베란다에서 빨래를 걷어와 내일 아침에 남편이 입고나갈 속옷과 양말을 챙겨놓고 문단속도 해야 한다. 낮에 일보러 나갔다 온 날은 더 피곤해져서 금방이라도 털썩 주저앉아버릴 것 같다. 그러나 마지막 신경을 곤두세우고 이 일까지 마무리를 한다.

드디어 이제는 끝~~~

남편 옆에 털퍼덕 주저앉아서 텔레비전이라도 볼라치면 갑자기 남편이 그런다.

-그것 있어?

조금 전에 내놓은 간식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 생각나는 모양이다.

-있긴 있는데.......

그걸 가져오자면 주방에 있는 냉장고나 뒷 베란다로 나가야만 한다. 그러나 이제는 일어날 힘이 없다. 엉덩이가 땅에 딱 들러붙은 것처럼 천근만근 무거워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기어가는 일은 더 힘들다.

어떤 날은 또 그런다.

-너무 덥지 않아?

이 말인즉슨, 꼭꼭 닫아놓은 베란다 문을 좀 열자는 것이다. 나도 그 말에는 동감이지만 역시 더 이상은 몸을 가동할 수가 없다.

이럴 때 아들이라도 있으면 바로 불러서 시켜먹으면 되지만, 고등학생이 된 이래로는 야간자율학습이라는 빌어먹을 제도가 있어서 밤 10시가 넘어야 돌아온다.

어떤 때는 이 아들녀석이 불을 켜놓은 채로 잠이 들어버린다.

남편은 거실바닥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면서 그런다.

-저 녀석이 불을 켜놓은 채로 잠들었나보네.

불을 꺼주어야만 밤새 안녕하고 잠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너 발짝 떨어진 아들 방이 천리 만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목발을 짚고 일어서기만 하면 금방 다녀올 수 있지만, 그게 까마득하게 여겨진다.

남편은 혼자서 또 중얼중얼거린다.

-에잇, 저 녀석!!! 방에다 불을 켜놓고 잠들었잖아.

당신이 가서 좀 꺼요, 라는 말이 입안에서 뱅글뱅글 돈다.

그러나 그도 새벽부터 차 끌고 나가서 하루 종일 일하고 밤늦게 돌아온 처지다. 그의 허리는 내 허리보다 더 무겁고 그의 몸은 내 몸보다 백 배 더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나도 장난이 아니다.

우리는 아주 중대하고도 미묘한 사안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눈치만 끔벅끔벅 보고 있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일찌감치 바느질을 배워 혼자서 살 궁리를 하라는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고 울며 불면서 억지로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가장 되고 싶었던 것은 국어 선생님이었고 다음에 되고 싶은 것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교사임용 순위고사에서는 신체상의 결격으로 불합격되어 그나마 일년 남짓 거제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임시교사를 한 적이 있고, 다음에 정립회관에서 상담교사로 근무를 하다가 2급 지체장애인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87년에는 친구처럼 듬직한 아들을 낳았고 94년에 동서문학 소설부문 신인상으로 등단을 했다. 김미선씨의 글은 한국DPI 홈페이지(www.dpikorea.org)에서도 연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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