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신지체 3급 판정을 받은 승혁이의 어머니 임선미씨가 '임선미의 달팽이' 연재를 시작한다. 달팽이의 의미는 느리지만 달팽이처럼 열심히 살아가려는 그녀의 다짐이다. <사진 네이버>

예전엔 '미운 일곱 살'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이제는 '미운 7개월'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로 요즘 아이들은 전과는 많이 틀려졌다. 그만큼 아이들이 영리해지고 어찌보면 영악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나이에 비해 생각의 정도는 서너 살 위를 뛰어넘는, 제 나름대로의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어떤 아이들은 왠만한 엄마의 잔소리에는 끄떡도 하지 않고 심지어 회초리를 들어도 무서워하기는커녕 어떻게 하면 엄마를 더 화나게 할 수 있을까 속으로 궁리를 하는 듯 얼굴은 엄마를 약올리듯 빙글빙글 웃어보이기까지 한다. 승혁이보다 한 살 많은 일곱 살의 남자아이를 키우는 친구의 하소연이기도 하다.

평소 밥도 잘 먹고 이제는 혼자서 목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제법 의젓해졌는 줄 알았는데 하루에 꼭 한 번씩은 두 살 아래 남동생과 싸우고 둘이 온통 집안을 어지르고 물건을 엎지르는 등 말썽을 피워 하루도 매를 안 들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말도 승혁이에 비해 훨씬 일찍 시작했고 발육이나 모든 면에서 빨랐던 아이였기에 남보다 뭐든지 느리게 자라는 아이를 둔 나로서는 속으로 늘 그 친구를 부러워했는데 그런 하소연을 들으니 생소하면서도 한편 이해가 되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는 늘 벌어지는 일상 아닌가. 가끔 저녁시간에 슈퍼에 물건을 살 일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나오는 밤길에 집집마다 아이를 야단치는 엄마의 목소리 또는 간혹 귀를 찢는 듯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엄마와 아이의 보이지 않는 기싸움

해가 진 후 집집마다 불빛이 새어나오는 주택가의 풍경은 모두 온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거나 가족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한가로운 저녁처럼 보이지만 한참 말썽을 피울만한 나이의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사실 총탄이 오가는 전쟁터보다도 더 치열한 엄마와 아이의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한창이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다.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에 늘 서투르면서도 잠시도 쉬지 않고 엄마와 상호작용을 하지 않으면 못 견뎌하는 승혁이는 독특한 성격만큼이나 독특한 장난과 말썽을 부린다.

예를 들면 자기와 놀아주지 않고 설거지를 하는 나에 대한 반항으로 장난감통을 차례차례 다 뒤집어 놓아 집 안 바닥을 온통 장난감으로 채워놓기, 목욕탕에서 샤워할 때 욕탕안이 넘치도록 물을 마냥 틀어놓는 것을 즐기는 자신에게 야단을 치면 소리를 지르고 목욕탕 밖으로 물을 뿌려대기, 아침마다 어린이집 앞에서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루도 빠짐없이 실랑이하는 자신에게 야단을 치며 타이르면 자해하듯 벽에 머리를 쿵쿵 박기 등등이다.

요즘들어 엄마의 마음을 가장 심란하게 하는 말썽 두 가지는 야단을 맞은 후 혹은 뭔가 할 일이 없거나 놀아줄 사람이 없어 심심해 할 때마다 방에 들어가 방문을 잠가놓고 자기의 고추를 만지며 자위행위를 하는 것과 시도때도 없이 여동생의 얼굴을 할퀴어 상처를 내는 일이다.

습관적으로 동생의 얼굴을 할퀴어놓는 행동은 36개월 전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고쳐지지 않고 있어 한참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귀여운 모습을 한껏 간직하고 있을 네 살배기 동생의 얼굴엔 양 볼이며 이마에 모두 승혁이의 매서운 할큄으로 인한 상처자국으로 가득하다.

6개월된 동생을 걷어찬 승혁이

승혁이의 동생이 6개월쯤 되었을까. 우유를 잘먹어 살이 포동포동하게 찐 동생이 한참 예쁜 모습이었을 때 아기는 제 오빠인 승혁이를 보고는 방싯방싯 웃으며 기어가서 안아주려 했다. 보통의 아이들 같았다면 자기에게 웃으며 오는 아기에게 자기 역시 미소를 보내며 끌어안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승혁이의 행동은 달랐다. 쇼파에 앉아있던 승혁이는 겨우 자기에게 다가온 아기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 보더니 정면에서 얼굴을 발로 밀어내 걷어찬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본 순간 눈에서 불이 났다. 아무리 연습을 시켜도 늘지 않는 승혁이의 언어능력에 낙담은 하고 있었지만 착한 아이라고 믿었던 아이가 자기보다 어린 아기를 그처럼 무자비하게 발로 걷어차다니 한없이 안타깝게만 여겨졌던 승혁이가 정말 밉게만 보였다. 아니 밝히기 부끄럽지만 그 순간의 내 감정은 증오라고나 할까. 아무 죄없는 아기에게 거리낌없이 발길질을 하는 승혁이가 그 순간만큼은 사랑하는 자식이 아닌, 눈물도 감정도 없는 낯선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그때까지 자잘한 야단만 쳤었지 한번도 매질을 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승혁이가 동생에게 했듯이 똑같이 승혁이에게 달려가 발길질을 했다. 감정만이 앞선, 잘못된 매였다. 이미 오빠에게 참혹한 발길질을 당한 채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승혁이의 동생보다 승혁이는 더 까무라칠 듯 울부짖었다. 엄마에게 맞은 아픔보다 그동안 자기를 달래만 주었던 '순한' 엄마의 숨겨져 있었던, 무시무시한 폭력성을 발견하게 된 놀라움 같았다.

승혁이에 대한 미움이 단 한 번의 발길질로 당장은 가셔졌지만 내 눈 앞에 남겨진 건 바닥에서 몸을 뒤틀며 울고 있는 두 아이였다. 엄마로서 지켜야 할 이성을 잃은 채 '동생에 대한 복수'에만 급급했던 경솔한 체벌의 결과는 곧 나타났다. 늘 멍하니 있거나 아무 감정없이 TV에서 나오는 CF화면에만 눈길을 준 채 무의미하게 지내던 승혁이에게 이번엔 공포스런 체벌경험까지 겹쳐져 그나마 웅얼거리던 '옹알이'도 하지 않게 되고 가끔 아기가 산통을 하듯이 한참을 크게 울기만 했다. 울고 나서는 엄마에게 달려와 두 주먹으로 쾅쾅 내 가슴을 두들겨댔다.

결국 승혁이에게 체벌을, 그 결과는?

아이에게 순간의 내 감정에만 충실한, 경솔한 체벌을 가한 결과였다.

경솔한 체벌을 가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직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줄 모르고 인지능력도 부족한 승혁이에게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인 경고도 먼저 해 보지 않고 섣불리 폭력으로 대처해버린 것이다. 결국 승혁이의 머릿속엔 '폭력엔 또다른 폭력으로 맞선다'는 개념이 선 것인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내가 때리거나 야단을 치면 곧바로 동생에게 가서 때리는 것으로 분풀이를 했다.

형제나 남매들끼리 자라면서 싸우기도 하고 토닥거리며 큰다지만 싸울 일이 없는데 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가만히 누워서 놀고 있거나 앉아 있는 아기의 얼굴에 무조건 다가가서 할퀴어대는 승혁이의 행동은 동생에 대한 질투만으로 보기엔 너무 지나쳤다.

"동생을 사랑하고 귀여워 해줘야지"하고 타일러도 보고 아무리 야단을 치고 또 때려도 봤지만 동생에 대한 승혁이의 할큄은 빈번히 계속되었고 아직 오빠의 순간적인 공격에 막을 힘이 없이 어리고 약하기만 한 동생은 한껏 아기처럼 화사하고 맑아야 할 돌 무렵의 나이에 이미 얼굴 여기저기 꽤 깊게 패여진 상처와 상처딱지들로 가득했다. 온통 상처투성이 얼굴을 한 채 그래도 승혁이의 동생은 제 오빠를 보면 좋다고 다가가 안으려하고 그런 동생에게 승혁이는 여지없이 엄마가 손 쓸 틈도 없이 맹수처럼 빠르게 짧은 손톱에 날을 세워 할퀴어 놓았다.

매일같이 한 아이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고 또 한 아이는 무조건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두 아이의 모습을 보면 기가 막히고 화가 났다. 상처투성이 아기인 동생과 유난히 하얀 얼굴의 승혁이를 함께 데리고 밖을 나가면 길을 가다가 마주친 우리를 모르는 사람들도 두 아이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혀를 끌끌 찰 정도로 승혁이의 폭력은 심각했다. 동생을 자신의 심심풀이 놀이감 정도로 여기는지 틈만 나면 할퀴고 때리면서 그런 행동을 야단치면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승혁이에게 즉흥적인 감정이 아닌, 엄하고 따끔하게 타이르는 이성적인 모습으로 야단을 치고 싶었지만 생각대로 잘 되질 않았다.

한번은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이 "감정을 실어서 아이를 때리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아이를 때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아이를 때리고 싶은 순간은 늘 아이의 말썽이 최고조로 달해있을 때이고 그 모습을 본 엄마의 마음도 최악의 기분인 순간인데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마음을 비우고 엄하면서도 냉정하게 아이를 야단칠 수 있겠냐며 냉소하는 나에게 남편은 보란 듯이 거실 한 가운데 장난감을 마구 쏟아놓은 승혁이를 엄한 어조로 꾸짖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남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승혁이는 야단을 맞은 후 자기가 어지른 장난감을 고스란히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뿐이었다. 그리고나서 제가 야단맞은 게 억울하다는 듯 또다시 아빠의 온몸을 꼬집고 할퀴어 놓았다. 그러자 남편도 나처럼 신경질적으로 아이를 떼어내며 야단쳤다. 1분간의 거짓다짐일 뿐이었다. 오늘도 난 끊임없이 말썽을 피우고 온갖 해괴한 장난을 벌이는 승혁이와 전쟁중이다.

발달지체아에게 체벌은 공포심만 배가시켜

<매 끝에 정든다>, <고운 자식 매 한 대 더 때리고 미운 자식 떡 하나 준다>는 속담도 있긴 하지만 인지능력이 늦은 발달지체아에게 섣부른 체벌은 오히려 폭력에 대한 공포심만 배가시키고 폭력모방만 만들게 될 지도 모른다.

체벌이란 일정한 교육목적으로 학교나 가정에서 아동에게 가하는, 육체적 고통을 수반한 징계라고 한다. 고통을 줌으로써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를 억제하려는 것이지만 아동 입장에서 보면 어떠한 행위를 하느냐 안하느냐의 선택이 그 행위의 가치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 고통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의 여부에 의하여 좌우된다.

비장애아에게도 충분히 '숙고'되지 않은 부모의 성급한 매는 오히려 비교육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듯이 인지와 사고능력이 부족하고 발달지체아인 승혁이같은 아이에게는 특히 아이가 잘못했을 때 무조건적으로 매를 가하기 전에 잠시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힌 후 이 매가 정말 필요한 것인지 매를 가하는 부모 자신의 책임감이 더 중요할 것이다.

매일 아침, 아이들과의 하루를 시작하기 전 내 자신에게 물어본다. 오늘 하루동안 나는 아이들에게 감정의 매가 아닌 사랑의 매를 때릴 수 있을 것인가. 또 나는 사랑의 매를 들어도 될 준비가 되있는 부모인가.

올해 정신지체 3급 판정을 받고 현재 언어발달 및 발달지체를 겪고 있는, 여섯 살된 아들(백승혁)을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아들의 장애를 알기전에는 무조건 장애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싶었는데 막상 아들의 장애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니 슬픔보다는 앞으로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가 더 막막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자료도 체계화되어있지 못한 현실 속에서 장애아동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연구는 너무나 부족한 실정입니다. 아들과 제가 겪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칼럼 <달팽이>를 통해 실으면서 저와 비슷한 어려움을 가지고 살고계신 장애아를 둔 부모님들에게 실질적인 임상경험담이 되었으면 합니다. 장애아동의 부모가 되기엔 특수교육에 대한 지식도 턱없이 부족하고 준비되지 못한 부모이지만 일년여간의 심리 및 언어치료와 통합유치원 생활을 통해 이제 겨우 두 음절의 단어와 짧은 동사를 말하기 시작하는 승혁이를 보면서 아주 작은 희망을 엿봅니다. 지금 시작되는 이 작은 희망이 언젠간 지금의 힘겨움을 이겨내고 나중에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으로 발전되길 바라면서 승혁이와 저는 조금씩 하지만 쉬지않고 나아가는 달팽이처럼 꾸준히 열심히 살아가렵니다. 그리고 승혁이와 같은 장애를 가진 장애아동들과 그 가족분들에게 힘내시라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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