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의 최고참이자 맏형인 연호와 연호엄마입니다.

승혁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는 총 64명 중 승혁이를 포함한 4명의 장애아동이 있습니다. 원래는 6명이지만 한 아이는 이 곳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언어치료를 병행한 결과 지금은 일반아이들보다 오히려 어휘력도 풍부하고 인지능력이 더 뛰어날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습니다.

또 한 아이는 손을 사용하는 것이 조금 불편하기는 하나 역시 다른 아이들과 보육면에서 특별히 두드러진 점이 없어 장애아동 대상으로 보고 있는 아동은 4명입니다. 어린이집을 바래다주면서 가끔 마주치곤 하는 그들의 엄마들은 말은 하지 않아도 서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저는 그들이 왠지 남같지 않고 가족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오늘은 승혁이의 세 친구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 정연호(97년 12월생)

현재 7살인 연호는 이 곳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 중 나이별로도 가장 고참이고 어린이집을 3년째로 가장 오래다니고 있는, 우리 장애아들 중에서도 가장 선배격인 아이입니다. 연호 엄마는 연호가 12개월쯤 장애인 복지관에서 정신지체 3급 진단을 받았습니다. 사실 연호가 장애아일지도 모른다는 가슴아픈 추측은 훨씬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연호는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연호엄마는 저보다 훨씬 일찍 아이 때문에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일찍 장애를 발견했기에 연호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연호가 9개월 무렵부터 이미 조기교육을 시작해서 아이를 데리고 특수나 조기교육을 하고 있는 모든 기관을 찾아다녔습니다.

아이는 연호 하나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연호에게 쏟아붓고 싶지만 경제적인 형편 때문에 현재 특수교육은 복지관 및 관할 구청에서 실시하는 저렴한 비용의 치료를 통해 수행하고 있습니다. 언어치료의 경우 사설 언어치료실의 치료비에 비해 복지관에서 시행하는 언어치료비는 약 3분의 1정도입니다.

현재 언어치료비가 30분당 29,000원-35,000원정도라면 복지관의 경우는 약 9,000원 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복지관 언어치료 대기자는 늘 2-3년간을 밀려있습니다. 연호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라서 복지관에 언어치료 대기자로 4개월 정도 기다린 후 언어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관할 구청에서 실시하는 음악,미술치료도 받고 있습니다. 격주 토요일로 실시되는 언어치료 또한 받고 있습니다. 모두 무료입니다. 그렇다고 질적으로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다행히 연호도 교육에 잘 따라주는 편입니다. 연호엄마는 교육열도 높지만 알뜰한 엄마입니다. 무료로 실시하는 특수교육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꼭 아이에게 교육을 받게하는 부지런한 연호 엄마를 보면 그래서 늘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본인은 늘 '저는 그냥 아이가 건강하고 밝게만 자랐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지만 말입니다.

현재는 장애인복지관에서 모자가 함께 하는 특수유아수영까지 하고 있어서 그런지 연호는 전에비해 더 활동적이고 어깨도 제법 넓어진 것 같습니다. 연호를 키우는 보람보다는 힘들어서 한숨을 쉴 때도 많지만 늘 누구에게나 반갑게 인사하고 아이들을 보면 웃으며 말을 건네는 밝고 낙천적인 성격의 연호 엄마가 지금처럼 꿋꿋이 연호와 함께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구예림(97년 1월생)

현재 7살로 연호와 동갑내기인 여자아이입니다. 그동안 특수유치학교 유치부를 다니다가 나이가 차서 더 이상은 다닐 수 없게 되어 승혁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올해 3월에 입학했습니다. 예림이를 등원시키기 위해 자가 운전을 해서 데리고 오는데만 거의 40-50분이 걸립니다. 그런데도 예림이 엄마는 힘든 줄도 모르고 그나마 이 곳에입학할 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는 말만 합니다.

장애아를 받아들이는 시설이 그나마 어린이집에 한정되어 있고(유치원은 거의 없습니다)한 구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아 대기자로만 2-3년은 넘게 기다려야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다가는 유아기의 1년이 10년처럼 소중한 장애아에게는 특수교육이 가장 활발히 진행되어야 하는 중요한 시기를 놓치게 됩니다. 어쩌면 수십 명의 대기자 중에서 통합보육 우선자로 선발된 예림이도 행운아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림이 동생은 고덕동 집근처 유치원으로 예림이는 여기 자양동 어린이집으로 각각 등원시키느라 아침,점심도 제대로 못먹고 아이를 모두 데려다 주고 차안에서 겨우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해결하면서도 예림이 엄마는 이 곳 어린이집에 온 후 밝아지고 조금씩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예림이를 보면 마음이 뿌듯해진다고 합니다. 예림이를 향한 모성이 연호 엄마 못지않습니다.

예림이는 4살 무렵 정신지체 3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현재 언어, 인지, 심리치료를 3년째 병행해 오다가 현재는 복지관에 신청해 놓은 언어치료 대기자로 자리가 나질 않아 인지,심리치료만 일주일에 4차례 받고 있습니다. 다행히 언어발달은 연호나 승혁이를 훨씬 앞지릅니다. 요즘들어 밥을 통 안먹고 잠을 자지 않아 매일 새벽 3시면 일어나 어린이집에 갈 때까지 엄마를 괴롭혀 예림이 엄마는 늘 수면부족 상태입니다. 낮잠을 전혀 자지 않고 새벽 1-2시나 되어야 잠을 자는 잠없는 승혁이처럼 예림이도 잠이 몹시 없는 아이인가 봅니다.

언젠가 언어치료 선생님이 아이들이 뭔가 불안해하는 마음 때문에 잠을 자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승혁이와 예림이가 잠자기를 두려워하는 그 무언가를 하루빨리 마음 속에서 밀어내주고 싶습니다. 어쩌면 빠르게 가는 시간만큼 빠르게 좇아가지 못하는 자신들의 '느림'을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이원석(98년생)

승혁이처럼 6살인 이 남자아이는 예림이처럼 올해 3월에 입학했습니다.

원석이 아빠가 제과점을 운영해서 원석이 엄마는 늘 집과 가게를 오가며 바쁘긴 하지만 원석이에 대한 애정과 염려만큼은 정말 남다릅니다.

그런데 원석이는 4,5살 무렵때 혹은 그보다 훨씬 먼저 특수교육을 시작한 위의 아이들과는 달리 장애를 좀 늦게 발견하게 되어 6살이 되고서야 특수교육을 시작했습니다. 가끔 원석이 엄마에게 "원석이 요즘 언어치료 잘 받아요?"하고 물어보면 서너가지의 대답이 쏟아지고 오히려 나에게 질문까지 하는 것을 보면 마치 1년 전 승혁이가 언어치료를 받기 시작할 무렵 당황스럽고 두렵기만 했던 내 모습을 들여다 보는 것 같습니다.

승혁이가 다니는 언어치료실과 같은 곳에서 언어,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원석이는 지금 한창 빠르게 진전을 보이는 승혁이에 비해 언어발달은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은 아주 원만한 편입니다. 가끔 집에서 한밤중에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함과 비명을 계속 질러대며 울음을 터뜨려 엄마를 당황하게 만들긴 하지만요.

두 달에 한 번 어린이집 원장님과 장애아 담임 선생님이 함께 하는 장애아 부모 모임때에도 "어머니 말씀 좀 해보세요"하고 운을 띄어야 겨우 입을 뗄 정도로 조용한 성품이지만 원석이에 대한 고민을 말할 땐 쉴 새 없이 이야기하는 원석이 엄마를 보면서 원석이에 대한 너무나 많은 아픔과 희망을 가진 그에게도 언젠가 꼭 웃는 날만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올해 정신지체 3급 판정을 받고 현재 언어발달 및 발달지체를 겪고 있는, 여섯 살된 아들(백승혁)을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아들의 장애를 알기전에는 무조건 장애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싶었는데 막상 아들의 장애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니 슬픔보다는 앞으로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가 더 막막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자료도 체계화되어있지 못한 현실 속에서 장애아동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연구는 너무나 부족한 실정입니다. 아들과 제가 겪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칼럼 <달팽이>를 통해 실으면서 저와 비슷한 어려움을 가지고 살고계신 장애아를 둔 부모님들에게 실질적인 임상경험담이 되었으면 합니다. 장애아동의 부모가 되기엔 특수교육에 대한 지식도 턱없이 부족하고 준비되지 못한 부모이지만 일년여간의 심리 및 언어치료와 통합유치원 생활을 통해 이제 겨우 두 음절의 단어와 짧은 동사를 말하기 시작하는 승혁이를 보면서 아주 작은 희망을 엿봅니다. 지금 시작되는 이 작은 희망이 언젠간 지금의 힘겨움을 이겨내고 나중에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으로 발전되길 바라면서 승혁이와 저는 조금씩 하지만 쉬지않고 나아가는 달팽이처럼 꾸준히 열심히 살아가렵니다. 그리고 승혁이와 같은 장애를 가진 장애아동들과 그 가족분들에게 힘내시라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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