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을 하다 설령 딱지를 맞는다해도 섹스는 그저 `즐거운 놀이`에 불과하다.

# 섹스칼럼리스트 하늘땅별땅

여자를 꼬시는 법이라... 아주 난감한 글을 쓰게 되었다. 이런 경우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써야 하거늘... 그래! 우리 솔직히 툭, 까놓고 얘기하자.

아마도 지금부터 하는 말로 인하여 난 빌어먹을 놈이 될 게 틀림없다. 아마 이 글이 내가 쓴 글이란 것을 여자들이 알게 된다면 난 이제 홀아비가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하련다!!

자, 일단 본인의 이 기백과 용기에 가열찬 박수를 보내주기 바라마지 않겠다.

“세상에 먹을 여잔 많아도 같이 살 여자는 없더라”

이 말은 요즘 본인이 푸념처럼 내뱉은 말이다. 정말 내가 생각해도 엿 같은 말이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섹스에 환장한 놈처럼 발광하고 나다닌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말을 한 이유는 요즘에 무척 연애하고 싶은 본인의 심정변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면 원한다면 섹스만을 위한 상대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난, 이런 것을 무슨 매력이 있다느니, 무슨 노력을 해야한다느니, 무슨 공략법 같은 것을 내세우고자 하려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남자 그 누구라도 경험하고자 한다면 경험할 수 있는, 내뱉을 수 있는 푸념이 될 수 있다.

아마 어딘가에서 어떤 여자는 “세상에 먹을 놈 많아도 같이 살 새끼 하나 없더라”라는 말을 내뱉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남자든, 여자든 섹스 대상을 찾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는 세상인 듯하다.

하지만,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어디에도 있는가 보다. 하찮은 비유이기는 하나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어본다’고 하지 않던가.

한번 맛을 본 놈은, 한번 섹스만을 위해 이성을 만나 본 사람은 그 단맛을 잊지 못하는 듯 하다. 그리고 쉽게쉽게, 소위 작업이라는 것을 한다. 마음졸이고 말을 걸고 상대가 어떻게 나올까 따위는 걱정하지 않는다.

설령 딱지를 맞는다해도 그저 즐거운 '놀이'에 불과할 뿐이다. 아마도 이 말에 핵심이 있지 않나 싶다.

여자를 꼬시고 섹스까지 간다는 것을 경직돼서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런 마인드를 갖는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오늘의 주된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마인드 이야기는 내가 무슨 심리학자도 아니고 섹스 사회학자도 아니어서 무슨 통계를 가지고 하는 말들이 아니다. 지극히 나의 경우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 이성을 만난다는 것에 사랑이라는 `애매한` 의미의 단어를 배열하는 습성을 버려라.
바로 들어가자.

* 일단, 우리는 이성을 만난다는 것에 사랑이라는 열라 애매한 의미의 단어를 배열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버려라!

감정이란 두고두고 쟁여 놓고 쌓아갈 때 그 폭은 넓어지고 거대해 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사랑 따위의 애매한 감정을 가지고 처음부터 이성을 만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멍청한 짓거리라 생각된다.

목적을 단순하고 명확하게 가져야 한다.

나의 경우는 '작업=섹스'로만 생각한다. 이것이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작업=손목' 또는 '작업=영화구경' 이렇게 설정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그 첫 목적이 손목이나 영화인 경우 섹스에 도달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물론, 나의 경우도 처음부터 섹스는 아니었다. 그러나 영화로 만난 여자는 영화에서 끝나야지 섹스까지 갈려고 하면 어려워지고, 열라 얼빵한 놈이 된다. 상대가 신호를 보낼 때는 가능하겠지만, 본인 스스로가 섹스로 진행시키려는 의지를 보여서는 안 된다. 상대 여자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기겁을 하며 도망가 버린다.

그래서 나는 목적을 분명히 두고자 노력한다. 사실 잘 안되는 경우도 많다. 섹스로 설정했는데도 진행이 지지부진해지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경우 많다.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는 감정상태를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섹스보다 상대적으로 쉬운 손목이나 영화 같은 경우를 설정하여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익히는 것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왕에 섹스모드를 설정한 것이라면 온몸이 총포탄이 되어야 한다. ‘섹시 머신’이 되어 상대를 꼴리게 만들어야 한다. 뭐, 암내가 진동해야 한다는 것쯤 될 것 같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어떤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특별히 이 스타일은 백이면 백 다 꼴리게 하는 스타일 같은 것은 없다.

섹스란 취향 같은 것이고, 콜렉션 같은 것이기도 해서 여자들이 섹스 상대를 선택하는데 있어 한 스타일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찜닭을 먹다가 닭띠 남자랑 하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고, 축구 한일전을 보다가 장딴지 굵은 축구를 잘하는 녀석과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여자들도 충동적으로 섹스를 생각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 충동이 그래서 직접적인 계기를 만든다거나 하지는 않다. “너 닭띠냐?”하고 물어보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충분한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이다. 뭐, 스스로를 합리화 한다고 해야 할까?

“그래 이 녀석과는 섹스를 해도 괜찮을 것 같아”라고 판단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스타일은 첫인상을 결정하고 무의식을 장악하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 스스로를 관찰의 대상으로 삼고 스타일을 개발해 `특징있는` 남자로 개발하라.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외모나 복장으로 스타일을 만들기도 하고, 악세사리나 자신이 가지고 다니는 소품으로도 가능하다. 또한, 어떤 행동 패턴으로도 가능하며 말투에도 스타일은 있다.

나의 경우 직업의 특성상 펜을 자주 사용하는데, 가끔은 별모양 막대 볼펜을 들고 다니기도 한다. 이 소품 하나가 미팅 자리를 유쾌하게 만들고 사무적이 아닌 개인적이고 친숙한 이야기를 꺼내게 만든다.

뭐 그래서 이 볼펜 때문에 섹스를 하게 된다는 것은 아니다. 상대와 나 사이에 어떤 특별한 기억이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로 만드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스타일이란 것은 어느 한 개인에게 자신의 인상을 강하게 또는 호감가게 심어주게 되어 상대의 기억 속에 자신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스타일이 의도된 무슨 장식과 같은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색한 악세사리를 몸에 걸치고 다니는 것과 같다. 자연스럽게 몸에서 배여 나와야 하는 것인데, 이는 부단히 스스로를 관리하고 꾸미고 자신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 스스로를 관찰의 대상으로 삼고 개발하기를 권장하고 싶다.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까를 생각하지 말고 이런 경우는 내가 어떻게 반응할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의 관심과 반응 따위는 생각지도 말자. *

체험과 경험을 통해 얻는 지식이 절대적인 것이 되듯, 스타일을 습관과 버릇 같은 것으로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특징 있는 남자로 개발하는 것이다.

오히려 상대를 배려하고, 맞춰주는 것이 자신의 개성을 말살하고, 심심한 남자가 되어 꼴림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그냥 착한 남자로 기억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난 이런 남자야 하고 설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은은하게 배여 나와야 한다. 특히, 말로 설명이 되어 상대를 설득, 이해시키려는 멍청한 짓거리는 하지 말자.

간혹 보면 자신이 어떤 남자인지 설명하며 말을 많이 하는 녀석들이 있는데, 그런 놈들 성공하는 경우 거의 없다. 우리가 소설이나, 극중의 인물의 성격을 파악할 때 출연자의 행동이나 말투, 그리고 어떤 사건에 있을 때 보여주는 반응으로 파악하듯, ‘몸짓’으로 보여줘야 한다.

뭐, 그래서 얻어진 결과가 비굴하고 쪼잔하고 열라 재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염라대왕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는 하다. 그냥 포기하고 살자. 아마도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남자일수록 자신을 말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영업사원들의 수칙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판다’

물건의 어떤 기능적인 장점이나 특징은 부차적인 것이다. 자신이 먼저 특징 있고, 매력이 있어 자신감이 배여 나올 때 영업이 성공하는 것이고 스스로를 관리하고 사랑하는 마인드가 영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첫 걸음이 된다는 말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자를 꼬시는 것은 영업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 자신을 파는 것’이다.

뭐, 답 아닌 답이 나온 듯 싶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실험하여 ‘총폭탄’이 되길 바라마지 않겠다.

최근들어 지난 이력을 자세히 소개해야할 필요를 느낌. 왜? 설명치 않아서, 혹은 설득력의 부재로 종종 인간관계에서 실패를 보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 혹시 아는가 프로필을 잘 설명해서 대성할지… -1971년 위생병원 출생: 칠삭동이, 어려서는 칠삭동이가 대단한 것인줄 알았음. 비숫한 인물이 한명회인가 뭔가 하는 인물이 있다고 들었음. 뜻은 크게 품었으나, 아직까지 대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음. 대신 몸은 부풀어 오르고 있음. -1994년 대학졸업: 숫처녀가, 불감증이 순결의 표시인줄 알고 대학에 입학/ 결국 남아있는 것은 무연애, 무빠굴의 경험으로 남의 연애사만 나오면 침을 흘리는 휴유증에 시달림. -2004년: 쓰리잡으로 삶을 연명. 온갖가지 빠굴담을 구라로 떠드는 여인네. 남들이 알면 무수한 남자를 연인으로 삼은적이 있은줄 알고 덤빔. 속빈강정....알고보면 무식의 극치. 여보세요..아...여보세요. 나는 당신이 무슨말을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어요. 지구인은 나의 적인가 동지인가? -2007년 현재: 남들이 보기에는 몇가지 엽기적인 직업을 가진 이력을 가지고 있음. 현재도 역시 남보기에 멀쩡하다고 할 수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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