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어머니는 하나뿐인 아들에 대한 기대가 엄청나셨다.(바로 내 위로 오빠가 있었다) 딸 둘에 아들 하나, 그 하나 뿐인 아들은 어머니 인생에 있어 말 그대로 꿈이요 희망이었다.
그런데다가 정상성을 추구하는 사회의 기준에 걸맞게 당시 비록 초등학생이었지만 항상 1,2등을 놓치지 않을 만큼의 명석한 두뇌와 잘 생긴 외모로 그야말로 잘난 아들로서의 이미지는 어머니의 꿈을 부풀리기에 충분하였다.
그랬던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만 물놀이 사고로 익사를 한 것이다. 절대적인 남성주의에 젖어 살아오신 당신 삶에 있어 꿈이요 희망이요 하늘이었던 아들! 그야말로 당신의 유일한 하늘이 무너진 것이다.
어른들은 오빠에게 우리 아무개는 이담에 뭐가 될까? 라는 질문을 자주 하곤 했다. 나는 장애가 있어서 그런 질문들을 안한다 치더라도 장애가 없는 언니 조차도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그것은 다름아닌 아들만이 경쟁력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장애의 유무를 떠나 시집 가버리면 그만인 딸과 하고자 하는 의지와 능력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는 아들과는 천지 차이인 것이다.
세월이 아무리 오래 흘렀어도 어머니는 틈만 나면 불의의 사고로 잃은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지금도 표하신다. 어쩌면 어머니의 삻을 빛나게 해주었을지도 모를 아들에 대한 마음은 두고두고 아깝기 그지없는 것이다.
물론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다 묻는다했다. 그러나 내가 만약 죽었다면 불쌍하지만 내 인생을 생각하면 잘됐다고 했을 것이다. 가슴에 묻히긴 해도 아쉬움의 강도는 훨씬 덜 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아들을 잃은 것을 큰 흉으로 여기신나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결코 아들이 죽었단 말을 하지 않으셨다. 외국에 나가서 공부한다고 말씀하실 뿐….
한 10년 전 옆짐에 사는 아주머니와 우리 어머니가 얘기를 나누시는데, 옆집 아주머니는 남편이 없는 반면에 아들이 다섯이나 되고 우리 어머니는 아들이 없는 대신에 남편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두 사람이 서로 부러워하는 사이인 것이다.
하루는 두 분이 대화를 하는 도중에 어머니가 당신 남편을 우리 영감이라고 지칭하자 그 아주머니 말씀이 "제발 거 말 끝마다 우리 영감 우리 영감 소리 좀 하지마시유" 라고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리 어머니는 그러는 아줌마는 거 우리 아들 우리 아들 소리 좀 하지 마시유 라고 말씀을 하신 것이다.
난 그 얘길 듣고 참으로 기가 막혔었다. 남성의 존재를 갖고 그렇듯 경쟁하듯 얘기하는 연세드신 여인들의 대화는 씁쓸하기 이를데가 없다. TV광고 멘트 중에 '내 남자가 경쟁력이다.'라는 멘트가 있다.
여성에게 있어 남성은 배우자든 아들이든 서로 견주는 대상인 것이다. 여성들은 남성으로 인해 무수히 피해를 입으면서도 그 삶의 가치를 다시 남성에게서 찾는다.
왜 우리들은 남성을 갖고 승부하듯 살아야 하는가? 남성에게만 유리하게 적용되는 우리네 법을 뜯어 고치지 않는 이상에는 참으로 어렵다고 본다. 연세 드신 분들만이 아니라 남성제일주의는 아직도 사람들의 의식 속에 깊숙히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좀먹어 가고 있다. 이제 제발 남성의 경쟁력으로 그녀의 가치를 측정하려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