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바퀴를 작품화 함.

우리나라에서는 버스를 이용 못 하는 내 교통편이 주로 지하철이라 지하철에서의 노약자, 장애인석의 변화 과정에 대하여 내가 보고 겪은 것에 대해 적어본다. 1991년부터 도우미 없이 혼자 지하철을 이용하기 시작 했다.

주로 인사동을 가는 1호선 종각 역과 현대서예 이론을 배우러 가는 곳(현대미술관)의 경유지역인 사당 역까지의 2호선 지하철을 이용했는데 먼저 생긴 1호선의 경우 흔들림이 심해 양손이 없는 나는 중심 잡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당시의 사람들은 물론 현재도 그렇지만 양손이 없어도 서서 가는 것에 대해 불편함이 없다고 생각 했는지는 몰라도 좌석을 양보 하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었다. 하긴 장애인은 휠체어 탄 사람만 장애인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 만 그런 사람들 덕분에 혼자 서서 많이 흔들리는 1호선 지하철에서 중심 잡는 법을 배웠다.

사람이 많아서 안으로 밀릴 때는 이리저리로 휩쓸려 다니며 사람들과 되도록이면 접촉 않으려고 노력 했으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옆 사람이 부딪쳐 오면 대책 없이 흔들려 나도 옆 사람에게 몸이 부딪치는 민폐를 끼쳤었다.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게 되면 사람들에게 밀려서 한 손(의수)은 이쪽 방향으로 또 한 손은 저쪽 방향으로 가방은 가방대로 멋대로 가 있어 그것을 수습 하는데 상당한 힘을 소비 하였기에 그 다음부터는 출퇴근 시간을 피해서 이용했다.

어쩌다 복잡한 지하철에 있다가 갈고리가 여자들 핸드백 줄이 걸리면 소매치기인줄 알고 강력이 잡아 당겨서 지하철 밖으로 끌려 나오기도 했다. 난 그때 여자들도 힘이 상당히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하철 좌석 가운데 서있으면 좌석에 앉아 있던 나이 많은 사람(5,60대 분들)들이 가끔 자기는 내린다고 하면서 자리를 일어 서시는 분들이 있어서 앉았더니 양보하신 분은 내리지 않고 다른 곳으로 서서 가는 것을 본 다음부터는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지하철 문 입구의 난간에 기대어 있든지 아니면 출입구 앞에 서 있으면서 이용을 했다.

당시의 노약자, 장애인석은 구석진 곳을 좋아하는 젊은 사람들의 차지였다. 지하철의 안내 방송은 처음엔 그 좌석에 대한 방송이 없었으나 시간이 지나자 노약자, 장애인석에 관하여 처음에는 양보를 하라고 안내 방송을 했다.

그러다가 점차 시민단체들이 장애인 먼저 운동을 펼치면서 지하철에서도 그 자리를 비워두자고 지하철에 스티커를 붙이면서 계몽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 내용 중 ‘젊은이 그 자리가 그렇게 탐나우’ 등의 글이 담긴 스티카를 볼 수 있었다.

그러자 지하철 내 안내 방송도 노약자, 장애인석을 비워 두자고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방송이니 캠패인 같은 것을 하면 한 귀로 흘러 보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벌금을 내라던지 물리적인 힘을 가할 때는 지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결과로 인해 지하철에서 노인 분들이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된 동기기 시민단체, 지하철 안내 방송의 힘도 있었지만 그보다 노인 분 들의 역할이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지속적인 안내 방송이 있었으나 반응이 없던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이 실력행사로 나오니 자리를 비워두는 곳이 생기게 되었다.

종각 역 부근에 파고다 공원이 있어 많은 노인 분들이 지하철 1호선을 이용했는데 그 동안 양보해 주면 앉아서 가고 아니면 서서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2001년부터 지하철 내 안내 방송이 ‘노약자, 장애인석의 자리를 비워 둡시다” 라고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양보에서 비워두자고 방송을 하기 시작했는데도 들은 척 않고 앉아 있는 젊은 이들은 본 노인들이 큰 소리 치면서 젊은 사람이 남의 자리에 앉아 있느냐며 무안을 주어서 자기 권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그 자리에 앉은 젊은이 들과 다투며 망신을 주는 소리가 종종 들리더니 근래에 와서는 조용해 지기 시작 했다.

요즘 주로 이용하고 있는 지하철 1호선의 경우를 보면 노약자, 장애인석이 비워 있고 젊은이들이 서서 가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지하철 1호선부터 제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 하물며 일부 장애인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도 노약자, 장애인석을 같이 사용하다가 해당되는 사람이 오면 양보하면 되지 않느냐 생각하고 있으나 그것은 눈으로 보이는 사람에 해당되지 눈으로 보이지 않는 장애 즉 의족을 했다든지 디스크에 걸려 있는 몸이 불편한 젊은이들은 대책 없이 고통을 감수 해야 한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난 불편하니 자리를 양보 해 주세요’ 하면 된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이 있는 동료가 대신 해 주지 않는 한 그 말을 하지 못한다. 몸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애용하다 보니 정말 앉아서 가야 할 몸이 불편한 젊은 사람들이 못 앉아 간다.

혹 앉았다 하더라도 아무런 불편이 없는 젊은 놈이 앉아 있다고 다툼이 벌어지게 되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보면서 요즘은 버스를 거의 이용하지 않지만 예전에 지하철이 없는 곳에 갈 때 어쩔 수 없어서 버스를 타게 될 때가 있다.

난폭 운전을 하는 우리나라 버스는 손으로 잡을 수가 없어 서서 갈 수가 없기에 나는 먼저 자리가 있나 확인하고 재빨리 타서 앉아 있는데 한 노인이 내 옆에 서서 젊은 놈이 자리도 양보 안하고 간다고 계속 눈치를 주어 기분이 많이 안 좋은 경험이 있다.

2001년 프랑스, 독일 전시 때 그곳 버스를 타 보았는데 노인들이 빈 좌석이 있는데도 손잡이를 잡고 서서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매우 기분이 좋아서 재빨리 앉아서 갔었는데 이상하게도 모든 버스의 노인들이 서서 가는 것을 보고 생각하였더니 운동 삼아 즐겨 하는 것 같다.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 나라처럼 커브 길을 갑자기 회전한다던가 과속이라는 것이 아예 없었다. 난폭 운전이 없는 그 나라 버스들은 양손이 없는 나에게도 서서 갈 수 있는 가를 시험 하게 했다.

장애인석뿐이 아니라 일반 좌석까지 비워두는 그런 살기 좋은 나라가 모든 지하철의 노약자, 장애인석으로부터 시작하여 버스까지 해당되지 않은 사람이 이용 않고 비워 둔다면 몸이 불편해도 표시가 안 나는 젊은이들이 앉아 가도 자연스러운 풍경이 될 날을 기대해 본다.

2003-07-26 토. 맑음. 오늘로서 장마가 끝났다고 한다.

개인전26회(미국2회, 독일2회, 중국4회, 프랑스1회, 영국1회 등 해외전 10회포함) 그룹전 제8회 취리히 아트페어 등 28회의 해외 초대전 포함 190여회 시 연 34회(독일, 일본 각 1회, 중국4회 포함) 2002.03.01 중학교 2학년 미술교과서(중앙교육진흥연구소)에 세종대왕이란 작품수록 1999.09.11 자랑스러운 명지인 상 수상(명지대학총장) 2008.10 제3회 장애인문화예술 대상(문화체육부 장관) 2008. 05. 19 KBS2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 출연 2009. 12. 25 성탄특선 다큐 “기적을 이룬다’전주mbc 창사특집 다큐 인연2 출연 방송 다수 출연 2009. 05. 18-23극단 서울공장의 서울연극제 출품작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 공연 참가 홈페이지 주소: http://cwsuk.com/(한글, 영문, 중문, 일어) 다 음 카 페 : http://cafe.daum.net/cwsuk 조인스 블러그 : http://blog.joins.com/cwsuk E-Mail : cwsu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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