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매표소의 모습(위)과 글을 올린 이후의 변화된 모습(아래). <박종태>

지난 2월18일 수원민자역 장애인매표소 글을 올린후 7월 3일 서울을 가려고 다시 장애인 매표소를 찾았다. 많이 달라진 모습에 깜짝 놀랐다. 없었던 직원도 있었고 장애인 노약자 창구는 서울 영등포 방면 매표도 같이 하고 있었다.

장애인 노약자 매표소 창구위에는 장애인 노약자 전용창구라는 문구대신 '장애인 노약자 우선발매' 창구 그 밑 글씨는 '고객님 양해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였다. 정말 너무나 멋진 글씨였고 너무나 마음이 흐뭇하였다. 장애인들이 잘못된 점을 지적을 하니 수원민자역장과 직원들 노력으로 많이 변하고 장애인 노약자 들이 편하게 표를 끊고 열차 를 이용하게 해주셔서 너무나 큰감사를 드린다.

그동안 에이블뉴스에 글을 올린 후 수원 지방신문 방송에 보도되었고, 그 후 이렇게 바뀐 것이다. 올린 글을 팩스로 보내 드리고 한사람 한사람 장애인들 노력은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편리해진다.

수원민자역사에서 멋진 글을 만들어 내고 장애인 노약자 편의시설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 않은가? 철도청내 열차를 고치는 기계창에 가보면 이런 글이 있다. '닦고 조이고 기름을 치자.' 장애인들도 많은 공무원 및 비장애인들에게 닦고 조이고 기름을 쳐서 편의시설은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만을 위한 시설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편의시설이라는 것을 비장애인들에게 매일매일 알려야 한다. 불편한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면 나만 불편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불편하고 후손들도 불편하다.

그리고 전국 역사가 이런 모습으로 바뀌었으면 장애인 노약자들이 열차 전철 지하철 등 이용할 때 매우 편리할 것 아닌가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져본다.

박종태(45)씨는 일명 '장애인 권익 지킴이'로 알려져 있다. 박씨는 고아로 열네살 때까지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서 자랐다. 그 이후 천주교직업훈련소에서 생활하던 중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고, 92년 프레스 기계에 손가락이 눌려 지체2급의 장애인이 됐다. 천주교 직업훈련소의 도움을 받아 직업훈련을 받고 15년정도 직장을 다니다 자신이 받은 도움을 세상에 되돌려줄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92년부터 '장애인 문제 해결사' 역할을 해왔다. 97년 경남 함안군의 복지시설 '로사의 집' 건립에서 부터 불합리하게 운영되는 각종 장애인 편의시설 및 법령 등을 개선하는데 앞장서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6월 한국일보 이달의 시민기자상, 2001년 장애인의날 안산시장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해결사'라는 별명이 결코 무색치 않을 정도로 그는 한가지 문제를 잡으면 해결이 될때까지 놓치 않는 장애인문제 해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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